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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스카라 Oct 18. 2024

다카마쓰는 처음이라

부부의 여행법-일본 다카마쓰

다카마쓰는 몰라도 사누키는 알잖아요


코로나가 터지기 전, 마음만 먹으면 내일 당장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믿던 시절, 마지막으로 들른 일본 여행지가 다카마쓰였습니다. 도쿄는 너무 잘 알고, 교토는 너무 뻔하고, 후쿠오카는 너무 심심하다고 생각했던 고인 물 일본 여행객에게 다카마쓰는 흥미가 당기는 소도시였죠.

다카마쓰 맨홀에 새겨진 포켓몬 야돈(ヤドン)

다카마쓰라는 이름이 낯선 분들도, 이 이름은 익숙하실 겁니다. '사누키' 네, 다카마쓰가 속한 카가와현의 옛 이름이 사누키입니다. 사누키 우동의 그 사누키요. 다카마쓰는 면의 나라 일본, 그중에서도 우동국으로 꼽히는 카가와현의 현청 소재지입니다. 


우동특별시 다카마쓰에 관해 들리는 소문은 무시무시했습니다. 편의점 숫자보다 우동집이 많다더라, 공항에 도착하면 식수대 대신 뜨거운 우동 국물이 나오는 국물대가 있다더라, 우동(うどん)과 발음이 닮았다는 이유로 포켓몬스터 야돈(ヤドン)이 맨홀에 그려져 있다더라 등등...



이렇게 첫 번째 다카마쓰 여행은 우동을 먹겠다는 의지만으로 시작됐습니다. 타베로그 라멘집 순위를 줄줄 꾀고 있는 면식범에게 다카마쓰는 우동만으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한 도시처럼 보였거든요. 

카가와현의 와이파이 표지판. 이곳의 공무원들은 진심입니다, 진심이에요.


우동, 우동, 오타이산, 우동, 우동, 오타이산, 우동, 우동....


다카마쓰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인천에서 진에어나 에어서울 직항을 타고 100분만 날아오면 다카마쓰 공항에 닿습니다. 연희동 우동 카덴의 우동을 먹기 위해 기다린 시간만 합쳐도 족히 1000분은 넘을 것 같은데, 이만하면 가성비 훌륭한 시간 투자입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공항 국물대에서 뜨끈한 우동 국물을 들이키며 생각했습니다. '잘 왔다. 잘 왔어. 여긴 찐이다.'


듣던 대로 다카마쓰의 우동은 훌륭했습니다. 짬짬이 오타이산을 들이부어 가며, 온몸의 혈관 길이만큼 면발을 흡입했습니다. 그중 가장 괜찮은 우동집이 어디냐고요? 하루키 작품 중에 스푸트니크가 카프카보다 못한 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면식 역시 일정 레벨을 넘어가면 무엇이 최고다 하는 것은 없습니다.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면식범의 간택을 기다릴 뿐입니다. 


단지, 다카마쓰 안에서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우동집은 몇 곳 있습니다. 면발도 면발이지만 타마고의 익힘이 기가 막혔던 치쿠세이, 관광객의 샤라웃을 한 몸에 받던 우동보, 그리고 우동집 사카에다입니다.


사카에다 우동 본점, 이 가격에 이런 우동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우동집 사카에다의 완벽했던 우동자 경험(Udon Experience)


우동집 사카에다의 가장 놀라운 점은 '어떻게 이 정도 레벨의 우동을 이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그보다 놀라운 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기다리는데도, 웨이팅 시간이 몇 분을 넘지 않을 수 있는가?'였습니다. 피크 시간, 사카에다의 우동을 먹기 위해 몰려드는 인원은 오타니 쇼헤이의 50호 홈런볼을 잡으려고 몰려드는 관중의 행렬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카에다가 원체 유명한 우동집이기도 하지만, 사카에다에서 겨우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카가와 현청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식사 시간이면 우동특별시 공무원들이 한 번에 들이닥칠 수밖에 없는 입지조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카에다 주인장에게 회전율 문제를 해결하는 건 탱글한 면발을 뽑아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였을 겁니다.


해답은 사카에다의 UX(우동자 경험, Udon Experience)에 있었습니다. 일본어를 못하는 사람이 처음 사카에다에 들르게 되면 당황하기 쉽습니다.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식판을 들고 옵션을 정해 결제하고, 심지어 자기가 먹을 면은 자기가 말아야 할 수 있는 구조거든요. 꽤나 불편해 보이지만, 1분만 가만히 서서 사람들 동선을 관찰해 보세요. '아~! 저케저케 이케이케~!' 싶으실 겁니다. 



직관적인 UX란 이런 것! 우동집 사카에다의 UX(Udon Experience) 플로우 


사카에다에서 우동을 주문하는 방법


1. 우선 식판을 들고 어떤 종류, 어떤 사이즈의 우동을 먹을지 정합니다

2. 우동에 몇 개의 튀김을 추가할 건지 결정하고 금액을 계산합니다

3. 우동을 받고, 미리 계산한 튀김을 골라 담습니다(튀김은 종류 상관없이 개당 150엔입니다) 

4. 우동바에서 취향에 맞게 우동국물, 토핑 등을 첨가하여 자리에 앉아 먹습니다

5. 우동을 다 먹은 뒤엔 정해진 반납대에 식기를 반납합니다 


사용자에게 일정 부분 책임을 지우지만, 그 책임이 거슬리기보단 꽤나 흥미로운 데다, 사용자의 노고에 대해 빠른 회전율과 저렴한 가격으로 보답하는 사카에다의 우동자경험은 가히 환상적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서비스 기획자이거나, 고객 회전율로 골머리를 썩는 자영업자라면 사카에다의 우동자경험은 반드시 경험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우동이 다인 줄 알았던 첫 번째 다카마쓰, 그땐 알지 못했지...


그렇게 면발과 사투를 벌이며, 중간중간에 미슐랭 그린가이드 쓰리스타(놀랍게도 세상엔 진짜 이런 게 있습니다)에 빛나는 단풍의 익힘 정도가 적절했던 리츠린 공원에 들러 단풍 구경도 하고, 물 위에 지어 올린 일본의 3대 수성인 다카마쓰 성에도 들어가 보고, 빌린 자전거로 항구 근처를 쏘다니다 '저기 저 큰 배를 타면 섬에도 갈 수 있다던데?' 하다가 첫 번째 다카마쓰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미슐랭 그린 가이드 쓰리스타에 빛나는 공원계의 모수 리쓰린 공원


우동은 훼이크고 다카마쓰에서 우동만 먹고 갔다가는 크게 후회한단 사실을 깨달은 건, 망할 놈의 코로나가 끝나고 한참 뒤였습니다. 


* 글에서 소개한 곳

1. 사카에다 우동 본점: https://maps.app.goo.gl/iYsG8TnL21TCwStm9

2. 치쿠세이 우동 본점: https://maps.app.goo.gl/AdMbiLCMd1VdSNWv8

3. 우동보 다카마쓰 본점: https://maps.app.goo.gl/DTB7nUDqVaUYi8S16

4. 리츠린 공원: https://maps.app.goo.gl/FVHUTn6NZfszknZ18

5. 다카마쓰성터: https://maps.app.goo.gl/uKcxo3dwGrbvwoW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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