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교토 가모가와강(鴨川) 산책로
오늘은 제가 작업한 책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그레고리 C. 엘리슨 2세가 쓰고, 김상만 목사님이 번역하신 『두려움 없는 대화』(학지사, 2025, https://www.hakjisa.co.kr/subpage.html?page=book_book_info&bidx=6300)입니다. 번역원고를 처음 인계받고 책을 만든 과정에 대해서는 따로 매거진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책은 강렬한 원서 디자인부터 번역서 본문 디자인까지 비화가 아주 많거든요. 저자인 그레고리 목사가 무척 시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문장을 다듬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역자인 김상만 목사님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두려움 없는 대화』의 저자 그레고리 목사는 에모리 대학교 캔들러 신학대학원에서 목회 돌봄과 상담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이 책에는 흑인 인권운동의 역사와 더불어 자신이 흑인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레고리 목사의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어요.
그는 고민에 대한 답으로 '두려움 없는 대화'라는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제안합니다. '두려움 없는 대화'는 각자 역할극을 하듯 이름표를 가지고, 완전히 처음 보는 5명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진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모두가 모두에게 긍정하는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하는 순간입니다. 현재 이 프로그램은 김상만 목사님 주도 하에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책의 한 구절에 대해서 나누고 싶습니다. 책의 주제는 아니지만, '어려운 질문' 중 하나가 제 가슴을 푹 찔렀거든요. 그건 바로,
"문제로 여겨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미국의 인권운동가인 듀보이스가 묻습니다. "문제로 여겨지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세상의 바닥으로 여겨지고, 결코 큰 사람이 되지 못할 거라며 세상에 홀로 남겨지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독자 여러분들은, 어떤 집단의 '문제'로 여겨지신 적이 있으신지요?
그때의 기분은 어떠셨는지요?
저는 어디를 가든 '문제'로 여겨지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저는 튀는 사람이었어요. '어딘가 다른 사람' '이해하지 못할 사람' '집단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좋지 못한 평가가 그림자에 따라다녔죠. 이런 성향이 아주 심했던 중학교 시절에는 급우로부터 말도 들어 봤어요. "너만 빼면, 우리 반 모두가 친한데. 너 때문에 단합이 안 돼."
그렇다고 제가 불량학생이라거나 사고를 쳤던 건 아니였어요. 다만 말이 없고, 책에 몰두했고,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이었죠. 그리고 글을 아주 많이 썼어요. 사람을 대하는 건 저에게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어요. 어렵다 보니, 거리를 두게 되고, 저는 점점 고립되면서 교사들에게도 어떤 '문제'가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 떄도 크게 다르진 않았던 것 같아요. 일부러 작은 출판사만 다녀서 티는 나지 않았지만, 집단에서 유독 '다른' 사람이었죠. 일은 성실하게 하지만, 집단과 융화되는 능력은 떨어지고, 지나치게 열정적이거나, 지나치게 냉소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아, 저를 보는 그 눈빛들!
아주 이질적인 무언가를 보는 듯한, 약간의 동정과 약간의 경멸과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섞인 두 개의 검은 눈동자를 볼 때면 저는 무척 외로워지곤 했습니다. 자신의 일부분이 끝없이 소멸해가는 느낌! 그런 기분이 들 때면, 저는 한국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에서 벗어나 하늘을 통해 다른 땅으로 가고 싶었죠.
그럴 때면, 도망치듯 교토로 갔습니다. 저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저는 교토를 참 좋아합니다. 1년에 3~4번씩도 간 적이 있지요. 그중에서도 가모가와(鴨川) 강변을 특히 좋아합니다. 맥주 한 캔을 들고 홀로 이 강변을 걷고 있노라면, 번잡한 생각을 안고 낯선 땅을 걷는 여행자의 외로움, 약간의 우울함, 그리고 많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지요. 흐르는 물 소리를 들으며 자박자박 걸으면, 자신의 '문제적' 모습이 수치스럽게 느껴지다가도, 갑자기 자신감에 차서 뻔뻔해지다가도, 우습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하지요.
왜 나는 이런 '문제적' 인간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눈치껏, 자기 자신을 죽이면서 남들처럼 살아가는 일이, 저는 도무지 되지가 않더라고요. 남들은 자연스럽게 숨을 쉬듯이 사회에 융화되는데, 저는 안간힘을 써도 집단의 '문제'가 되곤 했어요. 노력을 하면 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않는 대로 '이상한 사람' '동떨어진 사람' '이상주의자' '우리와는 좀 다른 사람' 취급을 받았지요.
대체 내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어요.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이 이토록 민폐인 것인지, 왜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인 건지, 나는 왜 '문제'인 건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요.
교토를 한참 걷다가 지치면, 늦은 밤 가모가와 강변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곤 했습니다. 저 멀리 음식점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맛있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밀려오고, 기분이 들뜬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종업원의 모습이 창문 사이로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하고, 저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이건 외로움이었지요.
사실, 저는 '문제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완전한 답을 찾지 못했어요.
그나마 40줄이 가까워 오면서, 뻔뻔함이 늘어났습니다.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데, 당신들이 뭐 어쩔 거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지요. 나에겐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당신들과 다른 일을 하는데, 그게 당신들에게 무슨 손해를 입히며, 당신들에게 어떤 불편을 주며, 그래서 뭐 어쩌란 거냐는 반향적이고 반사회적인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물론 그러면서도 번민은 남아서,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옳은지' '굳이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남을 필요가 있는지' 고민하다가 자신을 아주 미워하게 될 때도 많습니다.
'문제로 여겨진다는 것.'
작은 원통에 갇힌 기분이에요. 숨도 못 쉴 정도로 작은 감옥 말이지요.
교토를 이렇게 한번 걷고 오면, 저는 조금 더 자신감을 찾고 돌아옵니다. 아무래도 낯선 곳에서 홀로 떠돌아다니며 여행을 완수했다는 기쁨이 자존감을 올려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잡스러운 생각들이 가모가와 강변에 씻겨져 내려간 것인지도요.
최근의 저는 당당하게 살아남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남다른 독창성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남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현상을 보고, 기발한 답을 찾아내고, 이를 추진할 만한 힘이 저에게는 있어요.
또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일들에 도전하곤 합니다. 편집자로서 내가 만든 책에 대한 과정이나 소개를 올리고, 에세이스트가 되어서 책을 내고, 느닷없이 탱고 강사를 꿈꾸며 춤을 추는 일들이 아무래도 특이한 일입니다만, 어떤 사람은 저를 '멋있다'고 평가해 주기도 합니다!
맞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를 문제로 여기지만,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저를 알아봐 주기도 하더군요. '재밌는 사람' '대단한 사람' '신기한 일을 하는 사람' '열정적인 사람' '도전정신이 강한 사람'으로 평가해주는 지인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따뜻한 응원을 받을 때면, 저도 자신감이 생겨요. 누군가는 알아봐 주는구나, '좋은 문제적 인간'으로 여겨주는 구나, 그런 안도감.
저는 최근에도 회사에서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줄곧 하고 싶었던 일이지만, 스스로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시도하지 못했던 일이지요.
현재 제가 몸담은 출판사에서 내는 책들은 아주 훌륭합니다. 만들면서도 감탄하는 일이 많아요. 제가 작업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책 한 권이 만들어지기까지 사연이 참 많거든요.
가령 앞서 언급한 『두려움 없는 대화』의 경우, L디자이너님과 작업했어요. 초기에는 강렬한 원서 표지에 영향을 받아서 시행착오만 몇 번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머리에 꽃을 단 표지도 만들어 봤지만, 이게 좀 이질감이 있더군요. 고생 끝에 아주 멋진 표지가 나왔지요. 내지 디자인은 P실장님과 작업했는데, 아분이 아주 야성적이면서도 독특한 본문을 만들어주셨어요. 책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강렬한 디자인입니다.
집단에서 좀 '튀는' 문제가 되더라도, 저는 이런 시도를 계속 하고 싶고, 제 나름의 길을 개척하고 싶습니다. 이 과정에서 파이를 키우고, 모두와 함께 조각을 나누기도 하고요.
저는 문제인 사람이지만, 제 문제적 역량을 더 키워나가는 것. 뻔뻔하게 살아남는 것. 자기 자신을 솔직히 받아들이고, 문제가 되는 자신의 에너지를 좋은 방향으로 발산하는 것. 세상에는 적지만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도 있고, '문제적 인물'로 여겨지는 게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요.
어쩌면, 이게 제 문제적 삶의 답이지 않을까요?
박지아
편집자.에세이스트.
caki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