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조용한 점심시간

그래, 누가 먼저 일어날거야?

by 서향

많은 회사는 점심시간이 되면, 아니, 점심시간이 되기 전부터 좀 분주한 소리가 난다. 먹는 것에 진심인 한국 사람들답게 정각이 딱 되면 나가려고 준비하거나, 때로는 5분 일찍 나가서 줄 서는 식당에 빠르게 줄을 서려고 하는 것이다. 점심시간 시작 전의 고요함은 빠르게 나가려고 숨죽이는 직원들의 전투태세이기도 했다. 그리고 정각, 때로는 3~5분 일찍 분주하게 목표한 식당으로 달려 나갔다. 내가 이전에 다녔던 몇몇 회사에는 꼭 한 분 정도 먹는 것을 좋아하는 부장님이 계셨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시기도 하지만, 직원들에게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 하셨다. 그분들과 밥 약속을 한 날이면, 15분 일찍 나가자고 하시는 경우도 많았다. 가려고 하는 식당이 회사에서 좀 멀어서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경우였다. 이런 분들 덕분에 나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배웠다. 우렁쌈밥, 동태탕, 항정살 김치찌개, 불맛 나는 제육 볶음, 그리고 평양냉면까지.


최근 퇴사한 나의 회사는 점심시간이 시작된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했다. 점심시간 시작은 1시였는데, 1시를 넘기는 것을 모르는 척이라도 하듯 세상 조용했다.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분주함은 없고, 그냥 세상 죽은 듯 조용했다. 사무실에 흐르는 음악이 아니라면 세상이 멈췄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1시 3분쯤, 배고픔을 참지 못한 나와 같은 사람이 일어나거나, 또는 1시 5분쯤 임원진 중의 한 명이 놀란 듯이 '어머, 벌써 점심시간이에요. 여러분, 식사하세요!'라고 외치면 그제야 많은 사람이 점심시간이 된 줄 몰랐다는 듯, 부스럭거리면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때도 일어나지 않는 몇 명이 있다. 그들은 일이 바쁘다고 항상 말하지만, 속마음은 모르겠다.


요즘은 외식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 오는 직원이 많았다. 집에서 싸 오거나 냉동 도시락을 싸 오거나 다양했지만, 대부분의 공통점은 '전자레인지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에는 전자레인지가 1개밖에 없다. 한 사람이 전자레인지를 2분 정도 사용한다고 하면, 5~6명이 모두 사용하려면 점심시간이 10~15분은 훌쩍 지나간다. 그래서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서 1시가 지나도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에 이사 오기 전, 직원이 40명 가까이 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공식적으로 회사 업무에서 벗어나서 1시간 쉴 수 있는 점심시간인데, 왜 이리 다들 소극적인 것일까를 생각해 봤다. 점심시간에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직장인의 권리이고, 이 시간은 계약서상에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 시간에 일을 더한다고 해서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 회사가 '점심시간을 잊을 만큼 열심히 일하는 것' 또는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바쁜 것'을 덕목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추가로 '밥 한 끼쯤은 굶어도 되잖아?'라는 생각을 하는 대표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흐르고 있는 와중에 1시 정각에 점심 먹으러 쌩하고 달려 나가는 직원은 눈엣가시가 된다는 것을 다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점심시간 시작 시간에 일어나는 속도는 느리지만, 사무실로 복귀하는 시간은 빠르다. 정식으로는 2시까지가 점심시간이지만, 1시 50분만 되면 거의 다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다. 1시 55분 정도에 자리에 들어온다면, 지금이 점심시간인지, 아니면 업무 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온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도시락을 싸 오는 인원이 많아서 굳이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래도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휴식을 취하거나, 담소를 나누거나 하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3년 차 이상의 직원들이 그렇게 하니, 1년 이하의 직원들은 따라서 눈치를 보고 비슷하게 하는 것 같다. (나중에 다시 적을 일이 생기겠지만, 이 회사는 1년을 채우고 떠나는 직원들이 많아서 중간 연차가 0명이다.)


하루의 일과 중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워야 하는 점심시간마저 이렇게 경직된 분위기라니, 처음에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서, 그냥 '쉼'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대표 밑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그러려니 해버렸다는 것이다. 탕비실에 과자나 커피믹스가 왜 필요한 지 모르는데, 직원 휴게실이나 점심시간에 쉬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런 일은 평생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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