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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Aug 28. 2023

찐 인생 조언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스물몇 살 때의 나와 친구는 하는 일이 더럽게도 안 풀렸다. 연애도 일도 뭐 하나 속시원히 되는 게 없었다. 믿는 사람에게 사기당하고 일하고 돈 떼이고 그러면서도 주머니에 가진 것도 별로 없어서 꼴도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잘 될 거라고 말해주길 바랐지만 기대와 달리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친구와 나도 서로에게 그런 말은 하지 못했달까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고 강제로라도 원하는 말을 들어내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사주카페인지 타로카페인지 하는 것을 처음 찾아갔다. 


열심히 각을 재보던 점술가가 나를 보며 말했다. “너는 이제부터 잘 풀릴 거야. 잘 살 준비만 해” 오예. 나는 드디어 원하던 답을 얻었다. 실제로 그 이후 잘 풀린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취업도 됐고, 이런저런 고난에 쓰러져 피가 철철 터미네이터처럼 다시 일어나 살고 또 사는 사람이 되어갔다. 나의 순서가 끝나고 이어 같이 간 친구를 봐주는 점술가는 이렇게 말했다. “오 너는~~~ 인생이 참 평탄하다. 큰 고난도 없고 역경도 없고. 그냥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게 살겠어.” 그러자 친구가 의외의 답을 했다. “그럼 너무 재미없잖아요. 인생이 파도가 있어야 재밌죠.” 점술 보기를 끝내고 뭔가를 열심히 적으면서 마무리를 하던 점술가가 슬며시 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 평탄한 인생이 얼마나 복 받은 건 줄 알아! 재미가 없다? 

인생이 재미있어 보이려면 얼마나 생고생해야 되는지 아니.”

차마 손님에게 험한 말은 못 하는 표정이었지만 이미 눈으로 말하고 아니 외치고 있었다. 정신 차리게! 젏은이!!! 


그렇게 나는 술술 풀리는 인생을 바라며, 친구는 익사이팅하고 재미난 인생을 바라며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나는 약 네 번의 이직을 했다. 그리고 아는 사람에게 돈도 떼이고 애도 낳고… 어~ 그러니까 그런 술술 풀리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친구도 약 네 번의 전업을 했다(이직이 아니다). 그 삶이 재미있었는지 고단했었는지는 짐작만 할 뿐 자세히는 알 수 없어도 친구는 처음에는 서비스직 그다음엔 간호조무사 그다음엔 조선소에서 그림을 그리더니 어느 날 게임 회사에 들어가겠다고 선언을 하고 서른이 다 된 나이에 취업 준비를 새로 시작했다. 친구의 선언을 듣고 ‘그래 할 수 있어’라고 말해줬지만 그때의 그 점술가의 말을 떠올리며, ‘아, 그냥 평탄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원하던 익사이팅한 삶이 내심 험한 삶을 사는 거은 아닌지 오지랖 섞인 걱정도 됐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마음에 초치지 않고 오로지 응원하는 것뿐이라 생각해서 그것밖에 해줄 수 없었다. 2년 후, 친구가 이제는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게임 회사에 들어갔다! 게임업계가 아무리 호황이라도 친구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어쩌면 내가 했던 생각대로 그냥 평탄하게 살까 하고 살았다면 지금의 친구는 없을지도 모른다. 평탄한 인생은 재미없잖아 힘들어도 재밌게! 를 외치던 친구였으니까 가능한 것 아녔을까. 


어제와 같은 오늘이 반복되고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될 테지만 그래도 어제보다 조금은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하루를 꽉꽉 열심히 채웠을 친구의 일상을 생각한다. 평탄하면서도 익사이팅한 그런 원하던 인생을 친구는 살고 있다. 물론 그 길에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 없는 완전 남인 점술사 선생님이 한 말이 있었지만 완전한 타인이기에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그렇게 스치듯 지나는 사람에게도 조언을 얻고(받아들이던 아니든 간에) 그 과정에서 얻는 모든 것들을 자양분 삼아 살아간다. 나와 친구가 조언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달랐지만 서로 그 평탄하고도 익사이팅한 인생의 길 한가운데서 한 번씩 만나 같이 또 다르게 살아간다. 우리가 가는 길이 달라도 그 시절들을 기억하며 함께 하는 순간들이 많아졌으면.


*

한라산 정상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마침 회사도 그만두고 할 일도 없는데 제주도라도 가서 머리 좀 식히고 와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뭔가 그전에 안 해본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찾아보니 한라산 등정이 있었다. 그냥 생각하기엔 ‘한라산’이라는 익숙한 단어에 ‘등정’이 붙는 것인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산’이니까 정도로만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보다 보니 이상한 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한라산 정상까지 가려면 총 두 지점을 들려야 하고 그곳에는 시간 커트라인이 있었다. 1 지점에선 낮 12시, 2 지점에서는 낮 2시 반. 그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등산을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충의 거리와 시간을 계산해 보니 최소 8시간, 그러니까 1 지점까지 가려면 최소 아침 8시에는 한라산 출발지점에 도착해야 하고 1 지점을 재빠르게 찍은 다음 2 지점인 정상까지 날쌔게 2시간 반 만에 찍고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 한라산에 온 의미도 없이 중간 탈락되어 내려가야 하는 셈이 됐다. 고생스러움이 예상됐지만 계획을 진행하기로 했다. 등반 당일 아침 8시, 바쁘게 준비해서 겨우 출발 장소에 도착했다. 여행까지 와서 이게 뭔 고생이지 싶었지만 분주한 사람들 사이에서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곧… 탈진할 것 같은 기분이 몰려왔다. 분명 어렵지 않은 코스인데도 힘들었다. 아 힘들다 힘들다 하면 더 안되니까 더 파이팅 해서 가야지 하고 또 오르고 올랐다. 그래도 평지는 유지될 줄 알았는데 계단의 모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연 친화적인 돌 모양을 그대로 살린 계단들… 발바닥이 뚫리는 건 아닌지 등산화 안으로 돌들이 내 발을 뚫듯이 공격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찌어찌 1 지점까지는 올라갔는데 앞으로의 경사지를 보니 만만치 않았다. 정신이 혼미해지려는 순간 안내 방송이 나왔다 “열두 시입니다. 더 올라가실 분만 가시고 이제 마감하겠습니다” 앞길이 막막했지만 더 생각할 틈도 없이 전진, 전진. 계속 앞만 보고 걸었다. 그래야만 정상에 오를 것 같았기에 그저 내 발밑만 보고 걸었다. 이제 닿을 듯 백록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젠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바람이 앞에서 뒤에서 밀고 내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땅만 보고 가는 것도 지치고 힘들었다. 그 사이 나를 휙휙 지나가며 아이들이 놀리는 소리를 한소리씩 하고 지나갔다. 화낼 힘도 없어서 그냥 걷고 있었다. 그때 내 눈앞에 한 할아버지가 보였다. 힘겹기는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땅을 향해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같이 땅을 보고 있던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순간 할아버지가 이어서 욕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순간 할아버지가 외쳤다. “아가씨! 파이팅! 할 수 있다! 아우씨. 힘들어. 내 인생에 두 번은 없다. 으아아아아” 그 후로도 할아버지는 *팔*팔을 외치다가 나를 보고 계속 “아가씨 할 수 있어!”를 또 외쳤고 둘은 드디어 비록 물은 안 차있지만 백록담의 모습을 봤다. 둘은 동시에 ‘으아아아아’를 외쳤다. 그 순간 뒤에서 방송이 나왔다. “2시 반입니다. 하산하세요~. 하산 명령 이후에는 통제됩니다. 어서 하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하산이 시작되었다. 하산은 좀 쉽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지만 하산까지 여섯 시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총 열네 시간의 등산 중 이제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할아버지의 사자후. “아~~~ 내 인생에 두 번은 없어~!!! 아가씨 힘내자!!! 할 수 있다~~~” 그것이 오로지 나에게 할 말인지 어쩐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생각해도 재밌는 에피소드로 남아있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 때마다 저 말을 생각한다. 아~ 내 인생에 이 일이 두 번은 없어! 그러니까 이번에 해내야 해! 할 수 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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