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는 환갑잔치를 치르고 몇 년 뒤에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지만 그 시절에는 흔치는 않았어도 충분히 있는 일이어서 가족들 모두 받아들였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게 젊은 나이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의 풍경은 그때의 어린 나의 일기 속에 고스란히 적혀 있다. 그날의 풍경은 이렇다.
갑자기 전화 한 통이 왔고 엄마는 전화를 받으며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이불을 펴고 누우셨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엄마에게 아무 말이라도 이끌어 내려 노력했지만 엄마는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눈도 잘 깜빡거리지 않으면서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려셨다. 자식들의 삼시세끼 게다가 간식까지 손수 챙기던 엄마였는데 그날은 아무것도 아무 말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배고프다고 찡찡거리는 내게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줄 뿐. 눈물만 뚝뚝. 그런 엄마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오늘은 더 이상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거 같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는 항상 우리 가족 곁에 있었다. 모두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했고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웃음꽃이 터졌다. 마흔이 다 된 나도 가끔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기억이 안나도 그가 했던 말, 서있던 풍경, 함께 놀았던 기억, 그리고 얼굴이 선명히 기억난다.
엄마에게 할아버지는 더욱 특별했는데(어쩌면 당연하지만) 할아버지는 여러모로 그 시대에 사람들과는 많이 달랐다. 아들딸 차별하지 않았고 공부시켰으며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다. 그 시대에 맞지 않는 얼리어답터이기도 해서 하루는 가족들 몰래 오토바이를 사고선 엄마의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하교 길에 정문에 모여 있는 아이들을 보고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봤던 엄마는 오토바이와 함께 서 있는 할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의 부러움 섞인 환호성을 뒤로하고 울진 바다를 드라이브하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여러모로 재밌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꽃을 피우고 있을 때, 저 멀리 할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하셨다.
“망할 영감탱”
띠로리. 우리 모두에겐 인자하고 따뜻한 사랑의 성자 같은 할아버지였지만 할머니에겐 조금은 달랐나 보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영감탱이 좁은 시골 약국에서 혼자 일하다 보니 답답해서 그런지 그렇게 꼬장꼬장했어”
2차 충격. 꼬장꼬장과 할아버지는 함께 할 수 없는 단어인데 할머니 입에서 그 둘이 나오는 순간 그렇게 찰떡인 느낌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정말 말 안 듣는 남편이기도 했다. 늘 손주들에게 ‘할머니’ 몰래 간식을 사 오라고 시켰고, 그 간식들을 자신만의 비밀 창고에 숨겨 놓고 하나씩 드셨다. 그러다 할머니에게 걸려 혼쭐이 나셔서 모두 압수당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괘념치 않고 손주들에게 간식 셔틀을 계속 시키시던 분이었다. 앞서 말한 얼리어답터적인 행보도 할머니와 상의 없이 이루어진 것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입장과 역할에 따라, 그 시절의 공기에 따라 한 사람을 기억하는 게 이렇게 다르다. 비록 가족이라고 해도 기억은 오히려 선명하게 달랐다. 그래도 이렇게 비가 추적추적 오는 아침에는 나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 우리 아이도 보여 주고 싶다. 그 어린 시절 할아버지 차 타고 신나게 빵 사러 가던 꼬꼬마가 이렇게 컸다고. 보고 싶어요.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