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아니지만 최고야”

by 김경민

아이는 스리슬쩍 보면 순딩 순딩한 매력을 가졌지만 사실 굉장히 예민한 아이였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그런 기질을 보였고, 조리원을 퇴소하던 날 조리원 간호사님들께서는 나에게 신신당부를 하셨었다.

“00이는 얼핏 보면 순딩한 거 같지만 배가 고프면 정말 돌변해요. 그러니까 배는 안 고프게 계속 먹을 걸 주세요”

웃어야 되나 말아야 하나. 배고프면 헐크같이 변하는 아이. 또래보다 유달리 작게 태어난 아이들이 먹는 것이 유난한 집착을 보인다지만 우리 아이는 정말 그랬다. 방긋방긋 웃다가도 배가 고프면 간호사님들의 예언대로 헐크로 변해 엄마 아빠를 당황시켰다. 그 덕분에 배고플 일 없이 풍족하게 먹고 자란 아이는 쑥쑥이가 되어 또래보다 키도 훨씬 크고 튼튼한 아이가 되었다. 자라면서 크게 아픈 적도 없었다. 그런 아이에게 생애 최초 위기가 왔으니 그건 우리 부부의 코로나 확진이었다.

최근 유행하는 코로나 오미크론은 백신 미접종인 아이들을 통해서라는데 우리 집 쑥쑥이는 다행히(?) 피해 갔고 엄마 아빠인 우리 부부만 정통으로 코로나를 맞았다.

덕분에 쑥쑥이는 엄마 아빠와 일주일을 떨어져 지내게 되었는데, 마스크를 쓰고 엄마 아빠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일곱 밤 자고 와야 해~라고 전했지만 그 말 뜻을 다 이해하진 못한 표정이었다.


아이는 처음 3일간은 울었고, 남은 4일은 아주 즐겁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온 3일간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쓰려 온갖 짜증과 한풀이를 해댔다.

그렇게 폭풍 같은 열흘이 지낸 어젯밤. 아이가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책은 아니야”

예민한 기질에다가 뭔가를 말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정확한 문장이 될 때까지 말하는 습관을 가진은 쑥쑥이는 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해 보여 비슷한 이 말 저 말을 던져보았다.


나: 책? 체크? 최고?

쑥쑥이: 응. 최고. 우리 가족은 책은 아니지만 최고야. 최고 가족이야

나:!!!


정신을 차리고 아이에게 다시 대답을 한다


나: 그래, 우리 가족은 책은 아니지만 최고 가족이지. 쑥쑥이를 최고 사랑하는 쑥쑥이 가족이지

쑥쑥이: 맞아. 우리 가족은 책은 아니지만 최고야. 최고 가족이야. 사랑해~


아이는 어렸지만 유달리 예민했던 탓에 은근히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는 성격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 조차도 잘 들어본 적 없었고 스스로에게도 한 적 없는 “아니야. 할 수 있어. 다시 하면 되지. 최고 아니어도 다시 하면 돼”와 같은 용기를 주는 말을 뱉었어야 했었다. 아이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묘하게도 나에게도 돌아와 나에게도 용기를 주는 말이 되었다. 그렇게 애써 했던 말들이 알게 모르게 아이에게 용기와 극복하는 힘으로 돌아온 것 같아 왠지 감동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열흘 전보다 씩씩해진 쑥쑥이는 다시 말을 했다.


쑥쑥이: 그런데 쑥쑥이는 용감해. 아주 용감해.


그래. 우리 가족은 책은 아니지만 최고(로 쑥쑥이를 사랑하)고,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낸 쑥쑥이는 아주 용감해.

이게 아이가 열흘 간 얻은 결론인 듯했다.


아이니까 아무것도 모를 거야. 아이니까 뭐~라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아이는 누구보다 그 상황을 관계를 다 이해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어른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할 수 있는 어휘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그 마음속에서는 온전히 느끼고 있다. 언젠가는 그것들을 유려하게 말로 다 풀어내는 순간이 오겠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이렇게 스무고개 하듯 아이와의 말놀이를 이어갈 것 같다. 어렵기도 하지만 그 마음을 알아가는 게 한편으론 설레고 짠하고 감동적이기도 하다. 이래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조금만 천천히 커라~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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