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일곱 살에게 최고의 친구는 지금의 나보다 어린 서른네 살의 아빠
아이가 자주 보는 만화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은 한 여자아이와 그의 반려 고양이인데, 둘이 숨바꼭질을 하다 술래인 고양이가 아이 뒤에서 휙~ 하고 나타나 안아주며 외친다. “깜짝 안아주기!”
아이도 이것을 자주 봐서 그런지 이 '깜짝 안아주기' 장면을 나에게 따라 하곤 하는데, 할 때마다 정말 '깜짝' 놀라면서도 아이가 주는 행복에 한 번, 어쩜 이렇게 스스로 사랑받는 법을 잘 알까 싶어서 기특한 마음 한 번, 그 외에도 여러 감정이 든다. 아이는 평소에도 흔쾌히 엄마를 좋아한다고 말해 주고 자주 안아주는데 엄마로서는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물론 아이가 엄마, 아빠를 마음껏 좋아하는 건 어느 정도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임을 알기에 지금의 이 순간의 행복한 기억을 잘 저축해 두었다가 나중에 한 번씩 꺼내 봐야지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런 마음이 든 건 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도 떠올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는 깨발랄하기 짝이 없었던 나는 늘 친구가 많았다. 그렇다고 어딜 가나 친구를 몰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지만, 언제 어딜 가든 친구가 한 명씩은 꼭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가장 바란 건 엄마, 아빠랑 노는 것이었다.
특히 건축사였던 아빠는 늘 지방 출장이 많았는데, 내가 여섯, 일곱 살 무렵부터는 드디어 가족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그동안 몇 달에 한 번씩 몰아서 만났던 우리는 하루하루 사랑의 마음을 쌓아갔던 것 같다. 그 시절 아빠와 나는 늘 달리기를 했었는데, 있는 힘껏 다해 뛰는 나와 달리 아빠는 “준비~ 시작. 땅!” 이후에는 티 나게 나에게 져줬다. 그 사실이 너무 약 올랐던 나는 “열심히 하라고!!!”라고 했지만 아빠는 “알았어~ 알았어”라는 말만 남길뿐 늘 '핫핫핫핫' 웃으며 나에게 져줬다. ‘왜 재미없게 맨날 져주는 거야’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 한 번 이겨보겠다고 있는 힘껏 힘을 쥐어짜는 아이가 얼마나 예뻐 보였을까 싶다. 아빠의 호탕한 웃음을 이제는 내가 그리고 남편이 아이에게 짓고 있다.
이렇게 사이좋은 관계가 계속 지속됐으면 좋았겠지만, 아빠와의 사이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조금씩 멀어지더니, 어느샌가 더 이상 같이 달리기를 하지도, 서로를 보고 웃지도 않았다. 그러다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는 사이가 됐다. 나는 아빠가 돌아오면 방에 들어갔고 아빠는 아빠대로 방에 가서 티브이를 봤다. 나의 일곱 살 때의 최고의 친구였던 서른네 살의 아빠가, 마흔한 살이 되었고 나는 열네 살이 된 것뿐인데 그랬다.
그러다 우리가 제대로 다시 만난 건 작년부터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어도 아빠와 나는 그냥 평행선을 그리며 살아갈 뿐, 서로 접점이 없었다. 그냥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것만이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깊은 고민의 늪에 빠진 나는 그동안의 나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그게 무엇이든 글로 써내려고 했다. 그게 무엇이든 내가 살아내고 싶어 져서. 그러다 아빠의 인생에 대한 생각을 했고, 그동안 아빠와 아빠의 주변 인물들이 한 말을 재구성해 아빠의 일기를 대신 쓰기로 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난 이것을 소책자로 만들어 가족들에게 선물했다. 우리를 책을 통해 그동안 마음속에 있었던 말을 하나씩 꺼내기도 다시 묻어두기도 했다. 51년생, 태어나자마자 전쟁이 났고 스물일곱에 두 자식의 아빠가 된 나의 아빠. 그래서 일곱 살 딸에게 최고의 친구가 되기도 했고, 열네 살 딸에게 최악의 친구가 되기도 했다. 이제 만 일흔한 살의 아빠는 네 살 내 딸의 최고의 친구가 됐다. 돌고 도는 인생, 한 사람의 인생 안에서도 우리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그래도 앞으로도 최고의 친구가 되기를, 그리고 최고의 추억을 쌓아가기를… 나도 딸이랑 아빠에게 “깜짝 안아주기”라고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