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해질 무렵 호수 주차장에 인접한 빵집에 들러 다음 날 먹을 빵을 샀다. 주인아저씨한테 30분 정도 호수 구경을 하고 올 동안 주차를 해도 될지 물어보니 주인은 흔쾌히 허락했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데 1시간 30분이 걸린다며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나는 노을이 지는 시간을 어림잡아 계산해 왔으므로 30분만 걷고 돌아올 것이지만 그러고마 했다.
데크길에 들어서자 출렁다리 사이로 하늘이 불그름하게 물들고 있었다. 버드나무의 실루엣과 노을의 어우러진 풍경은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주었다.
직장에서의 3월은 직원들이 많이 바뀌는 시기라 늘 어수선하다. 일 년의 업무 계획서를 몰아쳐 계획하는 시기라 정신은 산만해지고 몸에는 잔뜩 힘이 들어간다. 눈은 충혈되고 뿌예지고 날파리증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일과 사람에 지칠 때 찾는 곳은 역시 자연, 자연만이 소란하지 않게 몸과 마음을 동시에 위로해 준다. 팍팍했던 일상으로 메말랐던 마음을 촉촉이 해주는 것은 역시 자연의 소리와 빛이다. 호수는 바다만큼 역동적이지 않아 가슴을 뻥 뚫리게 해주진 않지만 잔잔한 물결처럼 나지막한 위로를 준다. 바다가 무더운 여름날 소나기처럼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준다면, 호수는 가뭄의 봄비처럼 마음을 촉촉하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건조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주기적으로 물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걸었던 모든 길은 물을 옆에 둔 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물이 보이지 않는 길은 왠지 팍팍하다. 피로가 더 빨리 찾아오는 건 물론이다. 애초에 물이 없는 곳에서 자랐다면 모를까 물이 있는 곳에서 나고 자랐던 사람이 어른이 되어 물이 없는 곳에 오랫동안 살아간다면 정서까지 메말라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3월의 마지막 날, 호수와 호수를 둘러싼 풍경은 사계절이 혼재해 있는 듯했다. 굳이 계절을 비율로 따지자면 단연 봄빛이 가장 클 것이지만. 온 나라가 봄꽃축제로 시끌시끌 거려도 가장 늦게 봄꽃이 찾아오는 곳이 이곳 경기도 북부 아니던가. 그리하여, 봄소식을 다 듣고 마지막임을 알고 누릴라치면 벌써 여름이 와 있다. 그런 곳이 파주다.
나는 이곳에 호수가 조성된 후로 매년 이맘때, 버드나무를 보러 온다. 동네 호숫가에도 버드나무가 있지만, 물속에 사는 버드나무는 이 마장호수에 있다. 서너 해 전쯤 태풍이 지나간 후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물속으로 넘어졌는데, 그 부러진 가지는 몇 해째 썩지 않고 봄이면 어김없이 이파리를 돋아낸다.
버드나무는 가지를 꺾어 심으면 새롭게 다시 뻗어 잘 살아가는 나무라고 한다. 버드나무는 가지나 줄기가 잘 뻗어가고 잘 휘는 특징이 있어 이름도'벋'에서 유래해 버드나무라고 한다. 그런 특성을 가졌기에 물속에서도 가지를 뻗고 뿌리를 내려 잘 살아내는 것이리라. 물속에 자라는 버드나무는 마치 인고의 생애를 산 사람과도 같다. 나무의 매력은 모두 다르지만 물속에서 자라는 버드나무를 볼 때 느껴지는 감정은 그래서 각별하다.
살다 보면 너무 아름다운 순간을 만날 때, 그 순간 슬픔의 감정이 함께 올라오곤 하는데 그 아름다움의 유한함이 바로 지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다채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고맙고 행복하지만 그와 동시에 순간순간이 지금 한 번 뿐이기에 그 찰나에 느껴지는 슬픔 또한 어쩔 수 없다. 이런 느낌은 내가 나이가 들수록, 강아지를 키우면서부터 더 자주 들게 된 것 같다. 언제나 지금을 전부로 살아가는 강아지를 보면 말이다. 허무함과는 다른 감정, 슬프지만 아름다운 것, 아름다워서 더 슬픈 것, 내가 그것을 잡지 못하는 허망함... 어쩌면 삶의 비애와 더 가까울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죽는 순간까지 끝나지 않는 감정, 나는 어쩌면 그런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걷는지도 모른다.
물속에 뿌리를 내려 거기에 적응해 살아가는 버드나무는 단연 육지의 버드나무보다 수명이 짧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주는 그 아름다움의 깊이는 뭍에 사는 버드나무보다 강렬하다. 눈물이 날 만큼. 이른 봄 물속에서 여린 잎을 돋우는 버드나무, 강아지, 아이들에서 느껴지는 나의 감정은 모두 다르지만 왠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유한의 생명에게서 느껴지는 찬란한 아름다운 슬픔이랄까.
지는 노을, 버드나무, 수면에 비친 버드나무, 이런 것들을 감상하고 사진으로 남기고 어둑해져서 주차장에 돌아왔다.
지난겨울에 혼자 휴양림에 갔을 때다. 내가 사고가 생겼을 때 연락해야 할 연락처를 쓰고 사인을 하는 문서를 작성했는데 오늘은 작성하라는 말이 없다. 지침이 바뀐 건지 지난겨울에 내가 죽지 않고 이번에 또 와서 이번엔 안 써도 될 손님이란 걸 안 건지 아무튼 열쇠만 건네받았다. 안내자분은 내가 겨울에 갔을 땐 왠지 의심의 눈길로 혼자 오셨냐며, 위아래를 훑어보던 그 안내자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당시 퇴근 후 아이들 저녁밥까지 챙겨 먹이고 8시가 넘어서야 꾀죄죄한 몰골로 방문했기에 더 그랬을지 모른다. 당시 나는 그분을 안심시키려고 집에서 못 쉬어서 하루 푹 쉬려고 왔다고, 책도 읽고 잠도 실컷 자려고 왔다고 했었다. 그랬더니, 그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려면 다음엔 외따로 떨어져 있는 어느 방을 예약하시는 게 좋다며 조언까지 했었다. 친절하게도 그 안내자분은 이번엔 버릴 쓰레기가 없으면 쓰레기봉투를 안 사도 된다고 말해준다. 지난번에 쓰레기봉투를 구입하고 버릴 쓰레기가 없어 방에 그대로 두고 왔었다. 내가 묵은 이력이 두 가지 정보를 남긴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흐드러진 벚꽃 나무를 돌아 언덕 위 숙소에 입소했다.
그렇게 숲 속 휴양림에서의 고즈넉한 하룻밤은 안팎으로 부산했던 마음을 재충전하기에 충분했다
4월은 집 밖에 나서면 거저 선물을 받는 것 같고 세상이 온통 충전소다.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자연이 알아서 다채로움을 보여주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부지런히 나갈 일이다. 발이 가는 대로 어디든 걷고 볼 일이다.
'오리'와 '자라'의 쉼터가 된 마장호수 버드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