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천 가는 길에 대형 카페가 생기면서 차들이 자주 드나드는 길이 되었다. 다리 주변에 주차를 하고 비포장 길을 따라 한 바퀴 걸어오는데 약 2시간 30분이 걸린다. 완전히 평지라 어려운 길은 아니나 지루할 수 있는 길이다. 자전거가 있다면 자전거를 타기 좋은 길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그런지 걷는 사람은 없어도 자전거 타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다양한 새들, 갈대숲, 버드나무, 그리고 노을 지는 풍경을 보러 공릉천에 간다.
공릉천은 사계절 새들을 볼 수 있는 곳인데 계절마다 새들의 개체수와 종이 다르다. 겨울철 빈 논에서는 무리 지어 곡식 알갱이를 쪼아 먹는 기러기 떼를 볼 수 있고 하천에는 왜가리, 청둥오리, 저어새 등이 먹이를 찾거나 물과 뻘의 경계에 앉아 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새들이 내는 소리는 각양각색, 떼로 날아오르며 꽥꽥 거리기도 하고, 두어 마리가 쌍을 지어 공중을 돌아 다시 내려앉기도 한다. 운이 좋은 날엔 저어새가 먹이를 잡는 모습을 보거나 공릉천 하늘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독수리를 볼 수도 있다. 고라니는 천변 풀숲에서 갑자기 뛰어나오기도 한다.
요즘엔 십여 년 전 처음 공릉에 왔을 때처럼 다양한 종류의 새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줄어드는 새들의 개체수, 현저히 사라지는 키 큰 버드나무들, 시멘트가 발린 길과 더 줄어드는 새들의 개체수를 보면 안타깝다. 파주에서 처음 만났던 풍요로운 공릉천의 모습을 알기에 점점 스러져 가는 모습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 같다. 십여 년 전엔 셀 수 없이 많았던 백로를 몇 년 새 잘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그 외 다른 개체수의 감소도 급격해지는 것 같다. 게다가 넓은 다리까지 놓이면서 풍경이 뚝 잘렸다.
바람과 물결이 찍어낸 사진
오늘은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친구에게서 막 전화가 왔는데 친구는 불암산에 봄이 얼마나 왔는지 보러 간다고 했다. 파주는 서울보다 더 멀리에 봄이 있겠지만 어느 곳이든 3월은 땅의 부드러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달이다. 푹푹 스러지는 갈대가 그렇게 말해준다. 갈대는 뻘과 맞닿아 있다. 아직 이삭을 가지고 있어 가을 느낌이 나지만 길 쪽에 가까이 있는 갈대는 헝클어지고 이삭이 거의 없다. 갈대는 바람의 방향을 말해주고 햇빛의 세기를 알려 준다. 고라니의 따스한 보금자리가 되고, 작은 새들의 먹이가 되고 들쥐들의 서식처가 된다. 바람에 서걱거리는 갈대숲을 보며 느릿느릿 먹이를 찾아 걷는 기러기들을 보며 나도 그 보폭을 따라 걷는다. 공릉천 길은 걸림돌이 없으니 한눈팔고 걷기 딱 좋은 길이다. 뻘은 골판지 같기도 하고, 사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초콜릿을 켜켜이 쌓아 올린 초콜릿 무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려한 것이 너무 많아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근사한 풍경에선 막상 무엇을 보아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반면 담백한 풍경이 때론 더 풍부한 감상과 상상력을 낳기도 한다. 그리하여 밋밋한 풍경 속을 걷다 보면 내가 현재 느끼는 감각과 나에게 집중할 기회는 더 많이 생기는 것이다.
출근을 하루 앞두고 머릿속이 어지럽다. 혼란의 2월의 2주를 바쁘게 보냈지만 그것이 코앞에 닥친 상황을 해결해주진 못한다.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업무, 혼란의 지침 속에서 어떤 걸 고르고 어떤 걸 쳐내야 효과적으로 학교에 적용될 것인가. 사실 지나 보니 부닥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속 그래 왔으니까. 나는 코로나 3년째,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새로운 적응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있고, 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 모든 것은 다수의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판단이어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소외되는 아이들이 적은 쪽을 택해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소외되는 아이들은 생겨난다는 것, 그것은 또 다른 제도와 틀에서 또 다른 소외를 만들어낸다는 것... 우린 모두 그런 것을 알지만 무뎌진다는 것... 그래서 또 억울한 사람은 생겨난다는 것, 그것은 슬프다는 것... 그래도 그 소외를 겪는 누군가가 나로 인해 또 한 번이라도 소외의 경험을 덜 겪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내 직업에서의 또 다른 역할 중 하나라는 것.
발바닥 감각에 집중하며 걸었다. 왼발 굳은살이 아파올 때까지.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바람도 따라 걸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