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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Jul 22. 2019

상사의 지적질에는 이유가 없다.

상사들은 지적의 달인이다. 근거가 있고 없고를 떠나 지적을 잘한다. 업무 관련 지적은 물론이고, 부하 직원의 말투와 행동 등 온갖 지적을 잘한다. 상사들은 입이 근질거리나 보다. 일하는 내내 부하 직원들 지적할 거리만 찾나 보다. 지적은 상사들의 전매특허자, 특기다.

그렇다고 지적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된 자를 이끌어 주는 건 오히려 좋은 일이다. 부하 직원에게 잘못된 부분을 알려주는 지적은 결코 잘못된 게 아니다. ‘좀 더 성장하라’는 의미로 잘못된 업무수행 방식이나 근무 태도 등을 지적해 주는 건 선한 일이다. 이런 면에서 지적은 상사의 의무라고 할 수도 있다. 선의의 지적은 부하 직원 입장에서 감사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선의보다는 그저 눈엣가시를 제거하려고 지적하는 상사들이 있으니까. 자신의 기분에 따라 혹은 단순히 -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습관적으로 지적질하는 것은 확실히 잘못된 행동이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며 다행히 쓸데없는 지적질을 하는 상사를 만난 적은 없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첫 직장의 사장이 쓸데없는 지적질을 정말 잘했다. 그는 아무 때나 밑도 끝도 없이 꼬장을 부렸다. 기분이 안 좋은 날 잘못 걸리면 감정적인 지적을 마구 쏟아내서 숨이 막혔다. 내가 아무리 일을 잘해도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지적질을 해댔다. ‘걸리기만 해 봐라’ 작정하고 퍼붓는 지적질 스매싱을 전부 용케 받아내면 약이 올라서 그러는 건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업무와 상관없는 걸로 지적질해서 결국 나는 ‘깨갱’거린다. 내가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야 상황이 종료된다. 정말 화나고 억울했다. 반대로 운 좋게 좋은 상사를 만나기도 했다.

어떤 상사는 매우 친절한 빨간펜 선생님이었다. 업무 보고서나 기획서를 작성해 가면 항상 빨간펜을 든다. 검은펜은 절대 들지 않는다. 보고서나 기획서 내용을 본 후 부족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에 ‘찍’, 빨간펜으로 가차 없이 줄을 긋는다. 망설임 없이 죽죽 긋는다. - 내 실력 부족에 대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 만약 줄만 긋고 말았으면 기분이 안 좋았을 것이다.

“다시 써 와.”

이 말만 들었다면 내 실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받았을 것이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어디가 부족한지 알려주어야 고치지! 그걸 캐치하지 못하는 것도 내 실력이지만, 어쨌든 그 상사는 그러지 않았다. 뭐가 마음에 안 들고, 어디가 부족한지 친절하고 세세히 알려줬다. 알려준 부분을 고쳐서 가져가면 다시 빨간펜으로 부족한 부분을 표시해줬다.

당시 내가 맡은 업무 특성상, 글을 쓰는 업무였기에 글을 아무리 잘 써가도 - 그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 수정에 수정이 불가피하다. 토씨 하나까지 점검하고 수정해야 하니까. 하지만 글이라는 게,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의 글을 고치기 힘들다. 머릿속에 내용과 논리가 담겨 있어서 잘못된 부분을 보기 힘드니까. 상사는 내게 무한 인내와 관용을 베풀었다. 한 번도 화내지 않고 고치고 또 고쳐 주었다. 그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런 상사는 흔하지 않으니까.

많은 상사가 밑도 끝도 없이 지적질을 잘한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말도 없이 “다시 써와”, “다시 해”, “이게 뭐야. 내가 발로 써도 이것보다 잘 쓰겠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는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면 상관없다. 하지만 이런 상사는 대개 자신도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잘 모른다. 뭐가 이상한지 자신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애매모호한 말을 하는 것이다. 아니면 이유가 있어도 설명하기 귀찮거나 애초에 불친절한 사람인 거다. 그도 아니면 잠깐 설명해 주는 것조차 힘들 만큼 바쁠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부하 직원 입장에서는 아쉬울 따름이다.




시의적절한 지적은 부하 직원에게 도움이 된다. 흐트러진 집중력을 모아주고, 업무 능력이 높아지게 한다. 이 경우는 지적보다는 가르침이라고 해야 옳겠지만, 어쨌든 그런 지적은 필요하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는 지적은 둘 모두에게 해가 된다. 지적질하는 사람이나 지적받는 사람이나 스트레스받기는 마찬가지니까.

지적을 어떻게 하느냐는 상사의 능력이다. 감정을 마구 쏟아내며 지적한다면 그건 상사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그런 지적질은 아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내하며 관용을 베푸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렇게 지적하는 상사는 상사로서 자질이 있는 셈이다. 앵무새같이 “다시 써 와”라고만 말하는 상사는 빵점짜리 상사다.

쓸데없는 지적만 잘못된 건 아니다. 지적에 서툴거나 일부러 하지 않는 것도 좋지 않다. 부하 직원이 실수했는데 ‘허허’ 웃으며 “괜찮아”라고 넘어간다면, 제정신 박힌 직원이라면 정신 차리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약삭빠른 직원은 그걸 악용할 것이다. 지적이 너무 서툴러도 문제다.

일부러 지적을 하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건 나쁜 상사가 되기 싫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이나 하는 짓이다. 그러면 자신의 이미지는 살릴 수 있겠지만 직원의 성장을 막고, 말 안 듣는 직원을 만들어내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기에 무리한 바람이겠지만, 그래도 상사들은 친절한 선생님 역할을 어느 정도 해주고, 부하 직원들은 성실한 학생이 되면 좋지 않을까? 그러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양자 모두 그리고 회사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아무리 회사가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정글이라지만, 능력으로 평가받고 이해득실에 따라 니 편 내 편 가르는 곳이라지만, 진짜 야생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러니 사람 냄새가 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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