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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짓는남자 Apr 12. 2019

33년간 모태솔로의 신혼일기 #21

아내에게 주는 감동의 두 번째 선물

아내 생일에 잊지 못할 선물을 주어야겠다고 마음먹고 136일간 편지를 썼다. 아내와 사귀기 시작한 날부터 생일 전날까지 쓴 편지다. 편지지와 편지 봉투 색깔까지 신경 써서 준비했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성껏 썼다. 그리고 생일에 ‘짜잔’하고 깜짝 선물로 주었다. 깜짝 선물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하나 더 준비했다.

아내 몰래 또다시 편지를 썼다. 아내 생일부터 결혼 전날까지, 122일 동안 매일 편지를 썼다. 이번에는 생일 선물로 주었던 편지와는 다르게 전해야겠다고 계획했다. 책으로 만들자! 단순히 편지 봉투에 넣고, 상자에 담아서 주는 건 식상하다. 특별하게 주어야 한다. 그래야 감동이 더 클 테니까.




122일에 맞춰 122장의 편지지를 준비했다. 글씨를 쓰다가 틀릴 걸 대비해서 여분으로 몇 장 더 준비했다. 화이트로 지우거나 찍찍 그으면 보기 싫으니까. 틀리면 무조건 교체하고 다시~ 편지지는 통일성 있게 한 가지 색으로 준비했다. 분홍색 편지지로. 책을 예쁘게 만들려면 예쁜 색으로 준비해야지. 그리고 아내는 예쁘니까 예쁜 색으로 만들어서 주어야 한다. 결혼 전날을 제외하고는 매일매일 꼬박, 당일에 썼다. 전날은 처가에서 잤기 때문에 쓸 수가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내용은 별거 없었다. 생일 선물로 준 편지랑 똑같았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 ‘우리 결혼 언제 하냐’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내용이 추가됐다. ‘우리 드디어 결혼한다.’


편지 책을 만들면서 내가 다 설렜다. 아내가 이 선물을 받고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생일 선물을 받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안 물어봤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어서 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선물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까 싶었다. “나 이거 만들고 있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꾹 밀어 넣었다. 그럼 깜짝 선물에 실패하는 거니까. 근데 뭐, 나는 입이 늘 간질거리고 어설퍼서 아내 몰래 뭔가를 할 수 없다. 늘 티를 냈으니까. 이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안 들키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책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재료들



책으로 만들기 위해 책 만드는 재료를 샀다. 양장 표지로 만들 거니까, 합지와 합지를 덮을 천. 면지로 쓸 종이, 책 등을 잡아 줄 거즈, 목공용 풀, 표지를 수놓을 실 등 모든 재료 완비! 자, 재료도 준비했겠다. 편지도 다 썼겠다. 근데 언제 만들지?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아내에게 주어야 하는데 만들 시간이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결혼한 지 두 달 만에야 선물을 주었다. 아내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 만들어야 들키지 않을 텐데 매일  퇴근하고 곧장 집으로 와서 몰래 만들 시간이 없었다.



앞표지에 놓은 수 아닌 수



하루 만에 만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없다. 편지지를 하나로 모아 목공용 풀로 붙이고, 말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아내가 지인을 만나러 갔을 때 틈틈이 만들었다. 편지지를 책 크기로 균일하게 자르고, 한쪽 면에 본드를 바른 후 접착력을 더하기 위해 거즈를 붙였다. 그리고 하루 동안 건조. 풀이 다 마른 후 표지를 붙였다. 표지 작업은 신중해야 한다! 책 내지와 표지를 이어주고 고정해 줄 면지용 종이가 몇 장 없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재료를 정량으로만 샀다. 면지와 표지를 잘못 붙이면 난리 난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붙였다. 사실 한 번 잘못 붙였다... 다른 종이로 겨우 수습해서 완성했다. 표지에는 예쁜 문구를 자수로~ 하고 싶었으나 자수는 쉽나? 아니, 자수를 놓으려면 연습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시간이 없다! 자수를 대신해서 조금 굵은 실로 문구를 만들고, 작은 실로 고정했다. 이렇게 여러 공정을 거쳐 마침내 책 완성!





책을 만드는 내내 장인이 된 기분이었다! 책 만드는 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손이 꽤 많이 갔다. 당연하지, 여러 공정을 거쳐야 하니까. 손이 많이 가는 만큼 정성이 더해지고, 아내를 향한 나의 사랑이 더욱 깊이 뱄다.




드디어 선물을 절 날이 찾아왔다! 오랜 작업 끝에, 는 아니고 3일간의 정성과 노력으로 완성된 책을 아내에게 선물했다. 아내의 반응은? 책 선물 때와 비슷했다. 기대와 달리 큰 리액션은 없었다. 대신 신기해했다. 먼저 준 선물보다는 살짝 더 감동한 듯했다. 눈시울을 붉힌 걸 보니. 이후 아내는 생일 선물로 준 편지와 책으로 만든 편지를 지인이 올 때마다 자랑했다. 받은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지인들에게 자랑한다. 선물을 받았을 때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는데, 아직도 자랑하는 거 보니 감동이 꽤 컸나 보다.

근데 미안한 게 있다. 아내가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선물이 이것뿐이라는 것이다. 비싸고 더 좋은 선물을 주면 좋을 텐데, 내 능력이 안 되어 이런 선물밖에 못 주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아내가 아직 아끼고 자랑하는 걸 보니 뿌듯하긴 하다. 이제 곧 태어날 우리 아이가 크면 보여 줄 거라고 하니 비싼 선물은 아니지만, 그만큼 값어치는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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