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이별의 가벼움
앨범: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발매: 2022.04.18.
작곡: 조동익
작사: 조동희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9z9VVShSwE
불규칙적 통증처럼 한동안은 그럴 거야
가슴 한 켠이 답답하고 먹색일거야
하늘하늘 미소가 자꾸만 아른댈 거야
차가운 햇살이 추억을 더 아프게 아프게 할 거야
온몸에 스며든
너의 입자 모두 모두
저 바람이 데려갈 때까지
저 시간이 훔쳐 갈 때까지
그렇게 그렇게
다시 빈 몸이 될 때까지
불규칙적 통증처럼 한동안은 그럴 거야
가슴 한 켠이 답답하고 먹색일거야
온몸에 스며든
너의 향기 모두 모두
저 바람이 데려갈 때까지
저 시간이 훔쳐 갈 때까지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음 한동안은 그럴 거야 그럴 거야
우리는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2007년에 발매된 김광석의 《인생이야기》라는 앨범에는 주옥같은 김광석의 노래뿐만 아니라 자주 자신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중 세 번째 이야기에서 김광석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환갑 때 연애하고 싶습니다. 로맨스. 그냥 ‘ㄹ’ 자만 들어도 설레죠? 로맨스. 코웃음 치지 마십시요. 뭐 그때까지 정열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 바란다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니죠 로맨스는. 번개처럼 그렇게 번쩍해 가지고 정신 못 차려야 되는 거죠.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바램입니다. 환갑 때 로맨스.” 김광석은 60세인 환갑이 되어서도 사랑을 하고 싶어 했다. 나 역시 사랑을 하고 싶었고, 하기도 했다.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지금 여기 한 남녀가 있다. 두 남녀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소위 썸을 타는 기간을 보낸다. 그러다 누가 먼저 고백하고 상대가 그 고백을 받아주면 ‘오늘부터 1일’이 시작된다. 이렇게 사랑이 시작되면서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다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 감정이다 보니 두 남녀는 서로에게 다소 소홀해지는 시기도 찾아온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의 설레임과 짜릿함은 서서히 줄어든다. 사랑의 감정이 한창일 때 결혼할 수도 있고, 그 감정이 서서히 줄어드는 시점의 언저리에 결혼할 수도 있으며, 사랑의 감정이 거의 사라졌지만 책임감 때문에 결혼할 수도 있다. 어떤 커플은 사랑의 감정이 완전히 식어서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별을 맞이한다. 또는 너무 사랑하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서로를 위해 이별하는 커플도 있다. 김광석의 노래처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사랑은 여러 사건으로 이루어진 긴 시나리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사랑의 시나리오에 근거해서 사랑을 정의한다고 할 때 그 방식은 여러 가지로 나온다. 서로 사귀기로 한 1일부터 그 감정이 시들해지기 전까지만 사랑이라고 보기도 하고, 결혼까지 이어져야 사랑이라고 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나리오에 들어 있긴 하지만 이별을 사랑에 포함하지는 않는 편이다. 이별의 성격은 아픔이고 때로 나쁜 이슈로 이별하면 증오만 남기 때문이다.
이 곡은 이별을 사랑의 범위에 포함한다. 서로 열렬하게 사랑하던 연인은 아픈 이별을 맞이했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에는 아픔과 통증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그 아픔이 사라지는데 사랑한 만큼의 시간이 걸린다고들 한다. 그 아픔을 없애기 위해 다른 사람을 만나보기도 하고,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을 잊기 위해 술에 의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술은 사랑의 감정을 더 커지게 하므로 부작용만 일으킬 뿐이다. 때로는 아예 사랑의 기억을 망각하기 위해 고주망태가 될 정도로 마셔보기도 한다. 그러나 아침이면 심한 숙취로 몸에 통증이 오고 그 숙취가 사라지면 다시 마음의 통증이 되살아난다. 결국 과한 음주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이별을 잊고,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곡은 이에 대한 멋진 지침서이다. 먼저 이별의 아픔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불규칙적 통증처럼 한동안은 그럴 거야 / 가슴 한 켠이 답답하고 먹색일거야.’ 그녀를 잊어야 하면 어느 순간 불쑥 생각나기도 하니 이별의 느낌은 불규칙하다. 그런 불규칙한 통증은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한동안은 계속 그 패턴을 유지할 것이다. 얼마 동안 아픔이 계속될지 모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 고통은 더욱 커진다. 언제쯤이면 괜찮아질지 알 수만 있다면 희망이라도 보일 텐데, 그런 지식의 부재는 통증을 더 가중한다. 이별의 아픔에 대한 또 다른 증상으로는 가슴 한 켠에 뭔가 꽉 막혔다는 느낌인 답답함과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이다. 동시에 사랑하던 연인의 미소가 하늘하늘 아른거리며 떠나질 않는다.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이 이제는 내 곁에 없다는 냉정하리만큼 ‘차가운 햇살’ 같은 지금의 현실은 그때의 ‘추억을 더 아프게만’ 한다. 불규칙한 통증과 답답하고 타버린 마음, 아픈 추억으로 대변되는 이별의 고통을 해소하고 싶다. 이런 통증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여기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오랜 시간이 될 것이다.
내 온몸에는 이미 사랑하던 사람의 모든 입자가 스며들어 있다. 입자란 너무 작아서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물질을 말한다. 물질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어색할 정도로 작은 크기이고 눈에도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 입자이다. 이 입자는 사랑하던 사람의 모든 것이다. 사랑하던 사람의 몸, 정신, 감각 등 인간성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입자 형태를 하고 있다. 한때 서로 너무 사랑해 떨어지기 싫었고 잠시라도 떨어지면 견딜 수 없을 만큼 둘은 하나였다. 나와 하나였던 사람이 나를 떠나고 이제 이별을 맞이했다. 하지만 내 몸에는 아직 그의 흔적이 입자의 모양으로 온전히 남아 있다. 서로 하나였을 때는 그의 몸짓과 말, 미세한 감정까지 나의 감각으로 포착이 가능했지만 이제 입자 형태로 남은 그는 나의 감각을 완전히 초월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내 감각을 모조리 동원해도 그의 입자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나는 갑자기 닥친 이별 앞에 무능하다. 결국 나는 저 멀리에서 지켜보고 있던 ‘저 바람’과 ‘저 시간’에 의지할 뿐이다. 내 시선은 저 바람과 저 시간 쪽을 응시하며 나를 도와주길 간청한다. 내 몸 구석구석에 남은 그의 입자를 저 바람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고, 저 시간이 그를 내게서 완전히 훔쳐 가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그렇게’ 나는 ‘다시 빈 몸이 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린다.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나는 기다려야 한다. 이제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또 다른 사람도 과거의 그녀도 아니다. 내가 마침내 사랑해야 할 대상은 바로 이별 그 자체이다. ‘사랑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에서 앞에 있는 ‘사랑’은 ‘이별’을 가리킨다. 사랑의 시나리오에 이별도 포함되어 있다. 사랑과 이별은 반대말이 아니다. 사랑과 이별은 한 시나리오에 대등하게 등장하여 같은 지위를 가진 개념이다. 이별마저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이별의 통증도 거뜬히 받아들일 준비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더욱이 그 통증을 내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내 안에 들여놓아서 감당할 수 있을 크기인 소위 인간만한 크기(human-sized)로 작게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감정에 관해서는 인간이 억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다소 인위적이다.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을 영어로 표현하면 ‘Try not to love’이다. 다소 역설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노력은 이성의 영역이고 사랑은 감정의 영역이다. 같은 의미에서 사랑에 빠져 있는 두 사람이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도 일면 부자연스럽다. 사랑 자체가 자연스러운 감정의 교류인데, 이런 교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이어서 이별 또한 사랑의 감정이다.
이별의 아픈 감정 역시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바람과 시간에게 나를 맡긴다. 사랑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이별의 통증을 없애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별의 통증을 없애려는 노력은 그 통증을 더 크게 부각시켜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따라서 이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 작동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이나 이별에 대한 나의 태도는 ‘한동안’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저 바람이 데려갈 때까지. 저 시간이 훔쳐 갈 때까지’ 자신을 버려두는 ‘무위(無爲)’의 미학을 즐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