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비 Oct 14. 2023

<밤의 공원>

상반된 두 광기를 모두 안고 가는 밤의 공원

앨범: 환상의 나라

발매: 2021.07.28.

작곡: 최정훈, 김도형

작사: 최정훈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b3qhvhcEgiY


비가 왔었나 봐

이젠 느낄 수 있어요

신비로워

처음 마주한 사랑은     


푸르른 그 빛을 휘둘러

여름으로!

그 풀빛 아래 사랑은

완벽하리

아름다운 밤이에요     


밤의 공원으로 오세요

그 어린 광기를 달래러요

차가운 달빛이 사랑하긴 좋아요     


오 그때 내 마음은

아침이 오면은

초라할 작은 불빛

또 내일은 해가 뜬대요

서둘러 떠나요 이 밤에 취해

(Dream until tomorrow)     


서둘러 도망친 이곳은

밤의 공원

그대와 나의 비밀을

눈감아줄

너그러운 밤이 사는 곳     


가끔 저 달이 무서워요

곧 나가떨어질 것 같아 어떡해

겉도는 이 사랑도 영원할 순 없다고     


오 그때 내 마음은

아침이 오면은

초라할 작은 불빛

또 내일은 해가 뜬대요

서둘러 떠나요 이 밤에 취해     


난 사랑을 알아요

어둠 속에 피는

격정을 아는 불빛

또 내일은 해가 뜬대도

영원할 거예요 아름다워요

(Dream until tomorrow)     


초록을 거머쥔 우리는

여름으로!     


푸르던 그 빛을 휘둘러

여름으로!     


함부로 겨눠보던 미래와

웃음 짓던 그대와 나

보기 좋게 빗나간 우리들의 아침도     


영원에 걸었던 약속은

껴안는 법도 모르는 채

뒤척이다 마주할 창백한 아침이여    

출처: https://pixabay.com/illustrations/couple-romantic-silhouette-lovers-560783/


상반된 두 광기를 모두 안고 가는 밤의 공원


밤 공원의 두 가지 역할


이 곡은 여름밤 공원에서 두 연인이 서로의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곡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잔나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작업실 앞엔 봉우재 어린이 공원이라는 곳이 있어요. 10년 가까이 해 질 녘이면 그곳에 나가 한숨 짓다 돌아오곤 했는데, 그에 관한 곡을 쓰고 싶었어요. 때마침 눈에 들어왔던 여름밤 격정의 연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예의 바르게도 잔나비는 이 곡의 모티브를 준 연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나 역시 지금 이 글을 쓰는 데 모티브를 준 잔나비에게 감사드린다. 그러한 연인들의 모습이 젊은 시절의 나를 제외한 그들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잔나비가 그 공원에서 본 커플 중에는 젊은 시절의 나도 포함되었을지 모른다. 


이 공원은 연인들만의 공원은 아니었다. 잔나비를 위한 공간이기도 했다. 잔나비는 인디(indie) 밴드로 시작했다. indie라는 단어는 independent(독립)에서 유래되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독립은 음악을 제작하고 홍보하는 대기업의 통제로부터의 독립이다. 즉, 인디 밴드는 제작자의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의 돈으로 직접 앨범을 제작하고 홍보하는 등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밴드이다. 이들은 대개 앨범이나 홍보에 큰돈을 쏟아부을 수 없다. 따라서 앨범을 거창하고 화려하게 제작하지 못하고 소박하게 만들어 소량으로 찍어내며, 홍보 역시 소박하게 이루어진다. 


인디 밴드인 잔나비 역시 음악을 시작했을 당시 경제적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음악적 어려움도 겪었을 것이다. 작사와 작곡, 편곡 등 음악적 예술성을 표출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을 것이다. 예술성이라는 것이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무던한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잔나비가 2014년 4월 28일에 데뷔했으니 그 훨씬 전부터 이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지금까지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었던 힘은 ‘미침’이라고 생각한다. 이 ‘광기’가 없었다면 그런 어려움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은 예상했을 것이고 오히려 이들에게 가장 큰 도전은 음악 자체였을 것이다. 작은 작업실에서 그들은 얼마나 많은 좌절을 느꼈을까? 그때마다 찾는 곳이 바로 이 공원이었다. 밤의 공원은 잔나비의 ‘음악적 광기’를 달래주는 공간이었다. 비가 내려 촉촉하고 달빛과 가로등의 흐린 빛이 있는 이곳은 작업실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평온함을 잔나비에게 선사했다. 


여름밤의 이 공원이 잔나비에게는 음악적 광기를 달래주는 공간이었다면, 이곳을 찾은 연인들에게는 사랑의 격정을 표출하는 공간이 되었다. 똑같은 공간이 사람들마다 다르게 보이고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것이다. 잔나비가 음악에 취하고 연인들이 사랑에 취하듯, 주변에 술을 좋아하고 술에 취하는 사람들도 많다. 모처럼 친한 친구와 소주 한 잔 마시고 있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만, 그 친구는 술에 그렇게 진심이 아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마시다 보니 어느덧 한 병이던 소주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를 본 나는 술이 금방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 이 집의 술병이 좀 작게 나온 것 같다는 농담을 던지면서 ‘술이 반밖에 안 남았다’라고 말한다. 내 말에 친구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면서 ‘술이 반이나 남았다’라고 받아친다. 똑같이 반이 남은 소주병을 보고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 반응이 나온다. 똑같은 공원이 잔나비와 연인들에게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공간인 것처럼 말이다. 


뜨거운 밤의 공원 모습


이제 밤의 공원으로 다시 들어가 보자. ‘비가 왔었는지’ 공원의 촉촉함이 느껴진다. 사랑을 막 시작하여 ‘처음 마주한 사랑’이라는 감정의 ‘신비로움’에 휩싸인 연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공원의 가로등 불빛은 초록과 어울려 ‘푸르른 빛’을 띤다. 이 연인들에게 그 ‘풀빛 아래의 사랑은 완벽하리만큼 아름다운 밤이다’. 


잔나비는 사람들에게 이런 분위기가 가득한 밤의 공간으로 오라고 권한다. ‘그 어린 사랑의 광기’를 달래러 이곳으로 오라고 한다. 뜨거운 사랑을 식혀줄 ‘차가운 달빛’이 서로를 껴안고 있는 연인들을 휘감고 있다. 온 세상을 밝혀주는 아침의 밝은 햇살에 비하면 ‘그때의 내 마음은 초라할 작은 불빛’이다. 사랑의 뜨거운 마음은 그 자체만으로 위대하다. 


현실 공간에서 표출할 수 없는 이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위해 ‘서둘러 도망치듯’ 해서 이곳 ‘밤의 공원’에 온다. ‘이곳은 그대와 나의 비밀을 눈감아줄 너그러운 밤이 사는 곳’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받쳐주는 것 없이 홀로 떠 있는 ‘저 달이 곧 나가떨어질 것 같아 무섭다’. 연인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위태로워 보이는 달에 비유한다. 확실한 미래의 약속이 아직 없는 이 사랑은 홀로 떠 있는 달을 닮았다. 달이 나가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은  사랑이 영원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걱정을 닮았다. 하지만 달은 해가 뜨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 자리에 여전히 있다. 뜨거운 밤이 되면 다시 모습을 드러내어 그 자태를 자랑한다.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위태롭긴 하지만 사실은 둘의 진정성 있는 사랑의 마음 자체가 쐐기 역할을 해 두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겉돌지 않게 고정해 준다. 


밤의 공원에서 피는 사랑은 ‘어둠 속에 피는 격정을 아는 불빛’이다. 이 불빛은 또 내일 해가 뜨면 사라지지만, 불빛 또한 자연의 법칙을 닮아 달빛처럼 내일 다시 채워질 것이고 영원히 이를 반복할 것이다. 이 순환 자체가 바로 아름다움이다. 밤의 공원에서 피어난 사랑은 달빛이라는 자연을 닮았으니 영원히 빛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도 좋다. 게다가 이들은 ‘초록을 거머쥐고 있으니’ 이 사랑의 주체는 두 연인이다.


불안한 ‘미래’의 시간 앞에 우리의 사랑이 어떻게 될지 ‘함부로 겨눠보고’ 평가해 보기도 한다. 이 공원에서의 사랑은 밤에 진행되는 사랑이다. 밤이 저물고 결국 아침이 밝으면 그 사랑은 사라진다. ‘영원한 사랑에 걸었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서로 껴안는 법도 모르는 채 뒤척이다 아침을 맞이’하게 되는 서투른 사랑은 상처받기 쉽다. 우리의 사랑을 질투하는 아침을 창백하게 마주할 뿐이다.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사랑


밤은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의 법칙에 놓여 있다. 밤은 잠시 모습을 감출 뿐 다시 등장한다. 사랑이란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하지 않는 선택의 감정이 아니다. 사랑은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본능이 작동하는 뇌 부위에서 진행된다. 결국 사랑도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 


오늘도 밤의 공원은 달빛과 불빛과 초록을 준비해두고 연인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대들은 오늘 밤 그곳으로 발을 디뎌보라. 그러면 음악적 광기를 식히려 이 밤의 공원에 찾아온 잔나비의 한숨 소리를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