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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비 Oct 15. 2023

<초록을거머쥔우리는>

초록의 봄을 손으로 거머쥐고 얻은 신체화된 지식

앨범: 잔나비 소곡집 Ⅱ: 초록을거머쥔우리는

발매: 2022.05.10.

작곡: 최정훈

작사: 최정훈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vMbBoSBEsgw


오월 하늘엔 휘파람이 분대요

눈여겨 둔 볕에 누우면

팔베개도 스르르르

그 애의 몸짓은 계절을 묘사해요

자꾸만 나풀나풀대는데

단번에 봄인 걸 알았어요     


이런 내 마음은

부르지도 못할 노래만 잔뜩 담았네

마땅한 할 일도 갈 곳도 모른 채로

꼭 그렇게 서 있었네

(when I see her smile. oh distant light)     


저는요 사랑이 아프지 않았음 해요

기다림은 순진한 속마음

오늘도 거리에 서 있어요     


이런 내 마음은

부르지도 못할 노래만 잔뜩 담았네

마땅한 할 일도 갈 곳도 모른 채로

꼭 그렇게 서 있었네     


달아나는 빛 초록을 거머쥐고

그 많던 내 모습 기억되리 우     


오월의 하늘은

푸르던 날들로 내몰린 젊은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해 본 사람들처럼

꼭 그렇게 웃어줬네

(When I see her smile oh distant light)

출처: https://pixabay.com/photos/trees-park-nature-landscape-grass-3076834/


초록의 봄을 손으로 거머쥐고 얻은 신체화된 지식


봄에 대한 신체화된 지식


‘초록을 거머쥔 우리는’. 이 곡의 제목부터 매우 신비롭다. ‘초록’은 상태이지 사물이 아니므로 손으로 거머쥘 수 없다. 그런데 잔나비는 초록을 거머쥔다고 한다. 이 곡에서 말하는 ‘초록’은 봄에 피어나는  ‘풀이나 잔디’를 가리킨다. 풀이나 잔디를 거머쥔다는 것은 논리상 말이 된다. 역으로 봄에 피어난 ‘풀이나 잔디’가 ‘봄’을 상징하기도 한다. ‘초록’은 결국 ‘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초록을 거머쥐는 것이 신비롭듯이, 봄을 거머쥔다는 것도 신비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수수께끼가 아직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봄을 거머쥔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 ‘거머쥔다’는 것은 무언가를 손으로 감아쥔다거나 완전히 장악한다는 뜻이다. 이 노래가 봄을 장악하겠다는 분위기의 곡은 물론 아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쥔다는 말에는 인식과 지식의 뉘앙스가 있다. 잘 모르는 대상을 손에 쥐고 꼼꼼히 살펴보면 그 정체성이 파악된다. 그런 면에서 봄을 거머쥔다는 것은 봄을 인식하고 봄에 대한 지식을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거머쥐어서 얻은 지식은 ‘신체화된 지식’이다. 결국 이 곡의 제목은 ‘우리가 몸을 작동시켜 봄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는 것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마음을 비운 편안함의 봄날 한강공원


이 곡의 주인공은 5월의 어느 봄날 한강공원 풀밭에 발을 딛는다. 5월의 하늘에서 봄바람이 분다. 봄바람은 아이가 마냥 신나서 부르는 경쾌한 휘파람 소리를 닮았다. 미리 ‘눈여겨 둔 볕에 눕는다’. 한강공원에 들어오면서 볕이 잘 드는 풀밭에 대자를 하고 눕는다. ‘팔배개’를 하니 졸음이 오듯이 ‘스르르르’하고 온몸에 긴장이 쫙 풀린다. 팔베개를 한 ‘그 애의 편안해 보이는 얼굴과 몸짓’에서 봄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모든 긴장이 풀리니 몸과 마음이 가벼워 마치 그 애의 몸짓처럼 봄바람에 ‘자꾸만 나풀나풀댄다’. 


한강공원의 봄 풍경과 하나가 된 그 애의 모습에는 긴장감이 없다. 긴장감이 없다는 것은 인간의 두 속성인 ‘마음’과 ‘몸’ 중에서 마음이 없고 몸만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란 감성보다는 이성을 의미한다. 이 마음을 몸과 상반되는 개념으로 둔다면 몸에 없는 성질을 가진 것이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음은 이성과 논리, 합리, 언어 등을 담당한다. 이 애는 마음을 비웠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욕심을 버린다는 뜻이다.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이기심을 버린다는 것이다. 이기심이란 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자리인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만 돌아가기를 바라고 나는 손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기적인 마음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한정된 자원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계산하여 나에게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머리를 쓰는 마음이 이기심이다. 


공허하지 않은 몸생각과 몸희망


인간은 마음과 몸이 동시에 존재해야 하는데, 앞에서 긴장감이 없다는 것은 욕심과 이기심을 버린 상태, 즉 마음이 없고 몸만 있는 상태라는 논리를 폈다. 


‘저는요 사랑이 아프지 않았음 해요’처럼 희망을 표현하는 부분이 나온다. 몸만으로는 희망이 표출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마음으로만 품은 희망 역시 허무하다. 구체화되지 않은 환상일 뿐이다. 이런 마음이 가진 희망에 몸의 의미가 첨가되어야 실제로 만지는 맛이 날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의 말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마음이 아프다’라는 말보다는 ‘마음이 긁힌다’가 다친 내 마음을 더 생생하게 묘사한다. 언젠가 나뭇가지에 팔을 긁힌 경험이 있다. 그 긁힌 부위에 연고를 바르면서 상처를 눈으로 보기도 하고 손으로 만지기도 하므로 그 아픔이 생생할 수밖에 없다. ‘아픔’에는 촉각만 있지만 ‘긁힘’에는 시각과 촉각이라는 두 가지 감각이 활성화된다. 그래서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상처 입은 그 마음에 더 와닿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과 몸을 동시에 참여시킬 수 있을까? 바로 마음이 하는 이성과 사고, 논리의 작용을 멈춰 세우고 그 일을 몸에게 넘기는 것이 한 방법이다. 마음의 일을 넘겨받은 몸은 생각도 하고 희망도 품을 수 있다. 마침내 이런 생각과 희망은 ‘몸생각’과 ‘몸희망’이 되는 것이다. 이제 생각과 희망은 더 이상 공허하지 않고 신체화되어 몸의 맛과 색깔을 갖추어 사람들에게 생동감을 주게 되고 더욱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신체화된 마음의 효율성


‘이런 내 마음은 부르지도 못할 노래만 잔뜩 담았다’. 이 마음은 아직 신체화되지 않은 마음이다. 이 마음속에 담긴 노래는 몸을 통해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이다. 몸을 통해 활성화되지 못한 마음이다 보니 ‘마땅한 할 일도 갈 곳도 모른 채로 꼭 그렇게 서 있었다’. 아프지 않은 사랑을 원하면서 그런 사랑을 순진하게 기다린다. 그 ‘속마음’에도 아직 움직임이 없어 ‘오늘도 거리에 서 있다’. 


이런 내 마음과 속마음은 이제 몸으로 눈을 돌려서 몸에 의지한다. 몸이 내 마음과 속마음을 다 받아준다. 내 손은 ‘달아나는 빛 초록을 거머쥔다’. 봄의 초록빛은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품고 있는 소중한 빛이다. 그러나 짧은 봄날, 초록빛은 손에 잘 잡히질 않고 달아나고 있다. 그럼에도 그 초록을 거머쥔 나는 ‘그 많던 내 모습을 기억할’ 수 있게 된다. 머리와 마음으로 하는 기억이 아니라, 손이라는 몸을 참여시켜 추상적 지식을 기억하게 된다. 이런 기억은 ‘몸기억’이고 ‘근육기억’이다. 절대로 망각되지 않는 기억이며, 필요할 때마다 자발적이고 자연스럽게 발현되어 일을 처리해 내는 기억이다. 이 얼마나 효율적인 기억인가? 억지로 머리를 짜내지 않아도 편안히 나를 위해 일을 처리해 주니 말이다. 신체화된 마음과 신체화된 기억만이 가질 수 있는 효율성이다. 이제는 부르지 못한 노래도 불러서 사람들에게 음악적 감동을 주고, ‘기다렸던 아프지 않은 사랑’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것은 단지 마음의 결과물만도 몸의 결과물만도 아니다. 마침내 마음과 몸이 결합해 나온 결실인 것이다.  


이런 결실을 눈으로 확인한 ‘젊은 우리’는 의지를 발휘하지 않아도 희망의 빛을 발산하는 ‘푸르던 날들로 내몰리게’ 된다. 그 초록의 날에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해 본 사람’이 된다. ‘오월의 하늘은’ 이런 젊은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오월의 하늘은 얼마나 흐뭇할까? 


젊은 우리의 마음을 신체화시켜서 멋진 효율성을 달성하는 모습은 꼭 오월의 하늘에서 작용하고 있는 자연성을 닮았다. 이들을 지켜보면서 오월의 하늘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오월의 하늘은 꼭 그렇게 웃어줬다’. 


우리 곁에는 일 년 내내 하늘과 자연이 있다. 한강공원이 아니어도 좋다. 움직임을 제공하는 자연의 공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 초록빛이 꼭 아니어도 좋다.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 빛이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단풍 빛이든, 눈 내리는 겨울의 하얀 빛이든 자연의 모든 빛을 너끈히 거머쥘 수 있는 젊은 우리는 사계절 언제든지 영원한 사랑을 시도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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