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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호 May 13. 2024

중학생 아이와 어린 왕자를 읽고
나눈 대화

슬픔이라는 감정

중학교 2학년 아이와 어린 왕자를 읽고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처음 어린 왕자를 읽게 된 것도 중학생 때였다. 어린 왕자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은 사기당한 기분 정도였다. 물론 내가 성숙하지 못한 아이였을 수 있지만, 어른들도 그렇고 미디어에서도 어린 왕자를 좋은 작품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추천했는데, 그때의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때의 나에게 어린 왕자를 추천해 주던 그 어른들보다 훨씬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 되어 그때의 나와 같은 아이와 어린 왕자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니 감회가 새롭다.


아이들에게 어린 왕자를 읽고 어떤 장면이 기억에 남는지 물으니, 남학생 한 명이 어린 왕자가 지구를 떠나기 전, 비행사와 대화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가 기억에 남는다는 장면은,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라며 비행사에게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본인은 살면서 보이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는 부분도 중요하다고 하니, 자신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말이라 기억에 남았고, 책을 읽는 동안 진짜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그러면 보이지 않는 것 중 중요하다고 여길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질문을 했다. 아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도 보이지는 않지만, 중요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재미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면서 우리가 느끼는 소소한 감정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우리는 그 감정에서 행복도 느끼고 아픔도 느끼니 말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또 질문을 했다. 

"슬픔이란 감정도 우리에게 중요할까?"


아이의 대답은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슬픈 것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데, 왜 나에게 중요한지 물었다. 아이는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필요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 말이 맞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없다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며 슬퍼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살면서 타인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아이들은 좋건 싫건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아픔에 슬퍼하지 않는다면, 타인 또한 나의 상처와 아픔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니...... 세상은 참 각박해질 것이다.


그래서 기쁨 못지않게, 슬픔이란 감정 또한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고, 슬플 때 슬퍼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여학생에게 최근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며 슬퍼했던 경험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아동학대 사건을 보며 많이 슬펐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 타인의 아픔을 진심으로 슬퍼할 줄 안다면 아동 학대처나 끔찍한 일은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이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슬픔'이라는 감정이 참 귀한 감정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린 왕자는 참 신기한 책이다. 30년 넘게 읽은 책인데, 항상 새로운 문장이 눈에 띈다.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에게 어린 왕자를 추천한다. 내가 중학생 때 나에게 어린 왕자를 권했던 그때의 그 어른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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