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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가 배우는 법

by Book끄적쟁이

커버사진 출처: Jtbc


뇌가 흘러내리는 느낌


"시간 다 됐어. 이제 그만해."

"잠깐만, 이것까지만 볼게"

.

.

.

(10분 후)

"그만하라고~"

"딱 한 편만"

.

.

.

(다시 10분 후)

"그만하라고!!!"

"......"


요즘 마인크래프트 동영상에 빠져있는 아들과 매일매일이 전쟁이다.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면 1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주는데 늘 그렇듯 약속시간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험한 말이 나오기 직전에야 가까스로 동작을 멈춘다. 동영상을 보는 동안 내 목소리는 '노이즈캔슬링'되어버리는 모양이다. 놀랄만한 집중력이다. 겉으론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속으로는 '나도 저런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내와 아들이 잠을 청하러 들어간 늦은 밤, 덮어두었던 노트북을 펼친다.

'새로운 글을 써야 되는데...'

꽤 많은 책을 읽고 밑줄도 그었으며, 인사이트가 있는 부분은 '작가의 서랍'에 타이핑해 두고 다시 읽어도 본다. 그래도 새 글을 시작하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러워 자꾸만 미루게 된다. 대신 수십 번씩 앱을 눌러 조회수가 늘었는지, 구독자가 생겼는지 , 댓글은 없는지 확인한다. 여지없이 찾아오는 실망감...

실망감을 달래기 위해 반사적으로 유튜브 쇼츠 영상을 누른다. 피식대학이, 장원영이, 수지가 번갈아 등장하며 나를 위로한다. 딱 한 편만 보려고 했던 건데, 핸드폰 속 시간은 이미 1시간이 흘렀다. 흠칫 놀랐지만 멈출 수가 없다. 부전자전이었다.

'딱 한편만'

나의 엄지는 쉴 새 없이 위아래로 움직이기 바쁘다. 가까스로 멈춘 건 3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다. 실망을 달래려다 더 큰 실망이 나를 덮쳤다. '요새 내가 왜 이러지.' 마치 뇌가 흘러내리는 느낌이다. 도무지 내 말을 안 듣는다.


플라스틱 뇌


망할 놈의 뇌에 대해 알기 위해 뇌과학 책 한 권을 펼쳐든다.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최근 읽었던 뇌과학 책에서 항상 강조했던 '가소성'이 이 책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영어로 plasticity. 플라스틱 같은 특성, 즉 열과 힘을 가하면 원하는 형태로 변화되는 공통점이 있단다. 머리에 열을 가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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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외부에서 들어오는 입력 정보에 따라 유연하게 변형된다는 의미였다. 얼마나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냐면, 7살에 눈이 멀었지만 보이지도 않는 평면과 구체의 부피를 맘껏 가지고 논 수학자도 있고, 우뇌가 기능을 잃었음에도 논리 영역을 관장하는 좌뇌만으로 창의성과 재능을 뽐낸 화가도 있다고 한다. 이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말랑말랑한 회백질 덩어리에 나는 쇼츠만 들이붓고 있다. 덕분에 자극과 쾌락을 추구하는 영역을 향해 시냅스가 시원한 8차선 고속도로를 깔았다. 반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려고 앉으면 당최 집중이 안되고 잠이 쏟아지는 걸 보면 그쪽으로 나있던 길은 부서지고 싱크홀이 뚫린 것 같다. 공사 중...


타불라 라사


책을 읽다 보니 다시금 아까 전 아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지금 아들은 타불라 라사, 즉 백지상태가 아니다. 심지어 갓 태어난 아기조차 비어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 진화된 뇌 회로(온갖 이미지와 소리, 움직임을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암호화하는 능력)를 유전학적으로 물려받은 데다 그 디폴트 값을 개선하는 알고리즘도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선하는 방법으로 사용되는 '배움'은 인간 고유의 재능이다. '배움'은 인간의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 가속장치이다. 그래서 배우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유전적 진화에 비해 훨씬 효과가 빠르다.


게다가 AI와 달리, 인간만이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데이터 효율성이 높고, 서로서로 배우고, 새로운 걸 한 번만에 배우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배운 내용을 일반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허나 이러한 가소성은 무한한 게 아니다. 특히 언어의 가소성은 '민감기'를 지나 나이가 들면, 새롭게 배우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자주 쓰면 고속도로가, 방치하면 잡초만 자란다.


그런데 아들이 동영상과 게임에 빠져 버렸다. 뭐 딱히 장래에 의사, 변호사를 만들어야겠다는 부푼 꿈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책 읽기, 영어를 해두면 장래에 무슨 일을 하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어릴 때부터 부지런히 시켰다. 그래서 7살 때 (일러스트가 첨가된) 해리포터를 혼자서 읽었고, 9살인 현재는 넷플릭스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영어 음성으로 보고, '윔피키드' 원서 속 표현이 재밌다며 낄낄댈 정도로 익숙하게 읽는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런 모습을 보며 내심 뿌듯했는데 동영상과 게임에 눈을 뜬 이후로는 변했다. 글만 있는 책은 질색을 한다. 영어 듣기, 읽기 시간에도 딴짓하며 때우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잘못된 방향으로 고속도로가 깔리고 있는 느낌이다. 비상상황이다.


고정관념, 선입견, 성급한 일반화?


늦은 밤 내내 쇼츠를 쏟아냈던 핸드폰이 뜨겁다. 당연하다. 3시간을 쉬지 않고 일했으니까. 사람의 머리도 마찬가지이다. 한정된 용량에 모든 걸 욱여넣으면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다. 사전 추정에 의지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추정이 많을수록 학습 속도 또한 빨라진다(물론 그 추정들이 옳아야겠지만). 아무리 고정관념, 선입견, 성급한 일반화라고 폄하해도 이는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걸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것. 결국 배움이란 '외부 세계를 받아들일 내부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한 편의 글이 완성되는 과정도 그랬던 것 같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단 한 문장이라도 출발을 시키고 그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어 고민해야 아이디어란 놈도 떠오르더라. 일상에서 그냥 흘려버렸을 수도 있는 일들이 하나 둘 거름망에 걸린다. 관계없어 보이는 일이 연결된다, 커넥팅 닷. 결국 일기장에나 쓸법한 지질한 현실의 일부를 움켜쥐어 독자가 공감할 보편적 주제로 일반화시키는 것이 열쇠다. 뇌가 배운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폭우 속 저지대로 향하는 계단을 계층하강과 연결 짓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 사회를 부산행 KTX에 빗댈 수 있는 능력. 거기에 '대박 콘텐츠'의 씨앗이 있다. 아니 하다못해 쇼츠를 보더라도 남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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