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사진 출처: 만화 '몬스터'
요한이 나치시대부터 동서분열에 이르기까지 결코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독일 과거사가 낳은 괴물이자 희생자(?)라면, 비슷한 테크트리(일본 식민시대와 남북분단)를 겪은 한반도의 북쪽에는 김광일이 있다. 그도 요한을 비롯한 여타 사이코패스와 마찬가지로 사회규범을 지키지 못하고, 기만적이다. 타인의 안전을 무시하고 무책임하며, 자책할 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자들이 동독이나 북한과 같은 특수환경에서만 조제되고 유통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단순히 '유전자'만의 문제라 볼 순 없다. 정신의학자 파비오 마치아르디는 말한다.
"사이코패스라는 정신의학적 진단명은 없다.
사이코패스와 가장 가까운 건 인격장애, 그러니까 반사회적 인격장애이다."
캐나다의 정신과 의사 로버트 헤어가 개발한 사이코패스 진단표(PCL-R)라는 것이 있다.
40점 만점에 30점 이상인 경우 '사이코패스'로 분류하는 데, 지금껏 테스트 대상 여성의 약 1퍼센트와 남성의 3퍼센트 정도가 이에 해당했다(평균 2%).
진단표에서는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네 가지 요인으로 분류한다.
대인관계 요인: 피상성, 과대망상증, 사기성
정서 요인: 가책의 부재, 공감의 부재, 행동에 대한 무책임
행동 요인: 충동성, 목표의 부재, 낮은 신뢰도
반사회 요인: 성급함, 청소년 비행 전력, 전과
대부분의 진단이 그러하듯 사이코패스 진단에도 '경계'가 존재한다. 29~20점 정도 나오는 건 괜찮을 걸까? 물론 이들 중에도 범죄자들은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사회에서 무리 없이 아니,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이가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란 책으로 유명한 제임스 팰런이다.
팰런은 '경계성' 사이코패스다. 뇌과학자로서 살인자의 뇌 스캔 사진을 연구하는 도중에 대조군으로 이용하던 자기 가족사진들 중 유사한 사진을 발견했는데 그게 자신이었다. 그는 PCL-R 검사에서도
피상적이고, 과대망상증이 있고, 기만적이며, (대인관계 특성 O)
가책도 공감도 하지 않으며, (정서 특성 O)
충동적이고 무책임한(행동 특성 O)
사람이라고 진단되었다.
하지만 그는
분노를 조절할 줄 알고, 폭력적이지 않으며 전과도 없었다.(반사회적 특성 X)
스스로 자신을 일컬어 '친사회적 사이코패스'라 한다.
왜 그는 요한이나 광일이와 달랐을까? 그는 '세 다리 이론'에서 답을 찾았다.
세 다리 이론은 팰론이 직접 언급한 이론으로,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첫째가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측두엽의 유별난 저기능이고
둘째가 전사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이다.
위의 2가지가 유전적 요인이라면 마지막은 환경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 신체적, 성적 학대이다. 팰런의 연구에 따르면, 독재자를 포함해 모든 사이코패스가 어릴 때부터 '정신병자'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하나같이 학대를 받았고, 생물학적 부모를 한쪽 이상 잃은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공격성을 띈 유전자를 가진 아이였기에 자주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게 되고, 자연스레 동일 유전자를 공유하는 공격적인 부모에게서 미움과 학대를 받을 확률이 높다. 이때 '공격적 유전자'는 학대라는 촉매제를 만나 더욱 흉포한 특성으로 발현된다. 이게 바로 악이 대물림되는 본성과 양육의 악순환이다. 팰런은 자신이 범죄자로 자라지 않은 이유로 학대받지 않고 자란 어린 시절을 꼽는다. 아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아챈 그의 부모는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그를 잘 이끌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운이 좋은(?) 사이코패스였던 것이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곰곰이 생각해 보자. 사이코패스는 인류에게 필요한 존재인가?
유영철, 이춘재, 조두순, 정유정...
이름만 들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그들의 끔찍한 범죄행각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사이코패스 유전자는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일까. 생존한 유리한 점이 없었다면 진작에 진화 과정에서 제거되거나 그 수가 줄었어야 하는데 말이다.
제임스 팰런은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사회에서 제거해선 안된다고, 그렇게 해버리면 인류가 멸종할 수도 있다고 과감하게 주장한다.
"사이코패스들은 평화로운 시기에는 포식자나 기회주의적 기생충처럼 보이지만 위험한 시기에는 궁지에서 벗어나 번식을 계속하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이 공감에 서툴고 공격성이 강한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팰런이라고 끔찍한 사이코패스를 용서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마땅히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 다만 PCL-R로 20점 언저리의 사람들은 사회에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대담하고 활기차고 인류의 생동감과 적응력을 지켜주는 사람들 말이다. 특히 팰런의 경우처럼, 생애 초기에 그들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한다. 저기능 뇌와 전사 유전자를 가졌더라도 학대라는 '마지막 다리'만 덧붙이지 않으면, 자신의 두 다리로 일어서 사회에 이로움을 제공하는 훌륭한 리더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