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순이의 나타사랑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맛있는 음식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포르투갈 여행 중에 가장 자주 먹었던 것, 그리고 어딜 가나 쉽게 눈에 띄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나타'.
에그타르트를 포르투갈어로 나타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 먹어본 에그타르트와는 다른 맛이다.
우리나라 제과점에서 판매하는 에그타르트가 작고 파스스하게 부서지는 간식거리 과자 맛이라면 따뜻하고 큼직한 포르투갈의 나타는 식사대용으로 먹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포르투갈의 빵집, 카페, 슈퍼, 호텔 조식 등 나타는 어디에나 있었다. 먹음직스럽게 생긴 나타 모양의 냉장고 마그넷 기념품까지 있으니 가히 나타의 원조국가답다.
가장 비싼 나타가 우리 돈으로 개당 2000원이 채 안되니 가격도 꽤 착한 편.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나와서 바로 발견기념비로 향했다.
벨렝지구 근처 가볼 만하다는 곳을 두루 둘러볼 생각이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정문에서 발견기념비가 멀찍이 보인다. 공원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 대략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
발견 기념비는 시퍼렇게 넘실대는 테주강 바로 코앞에 있었다.
가까이서 본 기념비는 생각보다 크다.
기념비 앞 맨질한 돌바닥에는 타일로 표현한 거대한 나침반 그림이 있다. 나침반 가운데에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고 지도 주위로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발견한 항구를 표시해 둔 것 같다.
돌바닥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기껏해야 20세기 중반에 지어진 남의 나라 발견기념비를 왜 굳이 발품을 팔아 보러 왔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건축물의 역사성이나 예술성을 감상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눈앞에 있는 거대한 기념비를 고개 치받아 쳐다보았다.
뱃머리 모양의 기념비에는 얼추 10명도 넘어 보이는 사람들의 조각상이 복닥하게 서있다.
한결같이 테주강을 내려다보는, 결연해 보이는 모습이다.
맨 앞이 항해왕 엔히크 왕자, 그다음이 인도를 발견한 바스쿠 다 가마, 마젤란 해협을 발견한 마젤란, 희망봉을 발견한 누구 등의 순서라고 한다.
포르투갈 제국시대를 연 영웅들이 그들의 식민지가 될 땅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는 곳 앞에서, 다름 아닌 동양인들이 그들의 기념비적인 시대를 추억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 정서적으로 맞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발견 기념관 다음 코스는 바스쿠 다가마의 위대한 일정을 기념하는 벨렝탑이었다만 생략했다.
갑자기 어둑해지더니 점점이 비가 뿌린다. 오늘도 피해 갈 수 없는 변화무쌍한 날씨.
비는 고만고만한데 바람이 제법 드세다.
강바람이라 더 드센가 싶다.
강가를 벗어나니 다행히 비바람이 조금씩 잦아들어서 우산 없이도 걸을만하다.
목적지는 '파스테이스 더 벨랭'.
포르투갈의 원조 나타 맛집이라고 한다.
천천히 10여 분쯤 걸었을까.
나타 가게 앞은 흩뿌리는 비에도 불구하고 긴 줄이 구불구불 하다못해 아예 인도를 가득 메우고 있다.
악천후에 줄 서서 먹을 만큼의 빵맛, 포르투갈의 원조 나타는 과연 어떤 맛일까.
테이크 아웃을 하는 줄과 매장에서 먹는 줄이 따로 있었다. 매장에서 먹는 줄에 섰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마주쳤던 한 떼의 학생들도 눈에 띈다.
어마어마하게 붐비는 줄이었는데 생각보다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빠르다. 매장이 크고 회전율이 높나 보다 생각했다. 그만큼 재빨리 먹고 나와야 된다는 뜻일 수도 있다.
대기하고 있던 가게 입구의 벽은 아줄레주 타일공예로 장식이 되어있다. 더러 깨지고 금 간 곳도 보인다. 리스본 2일 차가 되니 아줄레주 타일도 흔한 주방타일처럼 보인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풍기는 소변냄새. 화장실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라기보다는 노상방뇨의 흔적 같다. 공중 화장실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냄새보다는 냄새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더 신기했다.
깨알 같은 글씨가 적힌 거대한 메뉴판이 벽에 붙어있다. 나타 외에도 빵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식사용으로 먹을 수 있는 빵과 다양한 디저트는 물론이고 마실 것도 다양하게 있다.
고체는 당연히 나타, 액체를 무엇으로 할지 한참 고민했다. 행복한 고민이다.
생각보다 빨리 자리가 생겼다.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동그란 탁자 앞에 앉아서 숨을 돌리니 기념비 앞에서의 뾰족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핫 초콜릿 한 잔, 그리고 당장 먹을 나타 두 개와 포장해 갈 나타 다섯 개 들이 한 세트를 주문했다. 원조 나타집 나타는 호텔 조식에 나온 나타보다 더 두툼하고 크다. 살짝 탄 듯한 커스터드 크림의 노릇한 색깔이 먹음직스럽다. 우리나라 제과점 나타랑은 크기에서부터 비교불가다.
한 입 숨벙 베어 먹었다.
겉이 파사사삭 부서지는데 안은 부드럽다. 무엇보다 따끈하고 달고 맛있다. 달걀노른자가 들어갔으니 영양성분도 나쁘지 않을 터. 춥고 배도 고플 때라 더 맛있었을 것이다.
슈거 파우더와 시나몬 가루도 번갈아 뿌려 먹어봤는데 단 맛에 단 맛을 더하는 느낌이지 맛의 확연한 차이는 모르겠다. 에그타르트가 이런 맛이었구나.
가성비 꽝의 비싼 과자가 아닌, 따뜻하고 큼직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다. 한 개만 먹었는데도 배가 제법 부르다.
체형이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옷을 입는 것처럼 입맛도 나이의 영향을 받는다.
평소 빵을 좋아하지 않는 내 입에도 나타는 맛있었다. 하지만 달고 기름진 맛에 물려서 더는 먹고 싶지 않았다.
반면 스스로를 '빵순이'라 칭하는 딸의 나타 사랑은 여행 내내 한결 같았다.
포장해서 가져간 다섯 개 들이 나타 세트는 그다음 날 오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정도면 질릴 만도 하련만, 또 다른 유명 나타 가게인 '파브리카 다 나타'에서는 6개를 사면 2개를 더 얹어준다는 말에 혹해서 무려 나타 8개 들이 상자를 들고 나오지를 않나...
밥그릇만큼이나 큰 시푸르죽죽딩딩한 시금치 나타와 불그죽죽한 햄치즈 나타를 아침식사 대용으로 사오기까지.
귀국하는 날 아침, 딸의 나타 사랑은 그 대미를 장식했다.
비까지 뿌리는 바쁜 아침에 짬을 내어, 전날 동선이 꼬여 미처 못 가본 나타 맛집을 기어이 찾아가서 나타 두 개를 사 갖고 왔으니 말이다.
우산 받쳐 들고 왕복 30여분을 걸어서 사온 '마지막 나타'. 포르투 공항에서 무척 아쉬워하며 남김없이 먹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