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을 수 없는 부동산 이야기, 답답한 정치인 이야기, 여자로서 사회생활을 하며 겪는, 힘든 이야기, 변해가는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특히 변해가는 주변 여자 친구들에 대해 길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 더욱 자세하게는, 삼십 대 중반을 향해가며 조용해지고, 활기를 잃어가고, 사는 것이 점점 재미없어져 가는 듯 보이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음식은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번졌다. 왜냐하면 친구 P와 나는 음식을 통해서 구원되는 삶의 순간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P와 나는 살면서 남들이 겪지 않아도 될 -혹은 예상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겪었으면서도 숨기고 있을지 모를- 그런 힘든 일들을,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겪었다. 우리는 주변의 아끼는 사람들을, 속절없이 하늘로 떠나보냈다. 일을 하고 살림을 하며 바쁘게 살아가다가도, 어느 찰나 그 기억들이 떠올라서 가슴이 먹먹해질 때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지난주 갔었던 음식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인터넷에 유행 중인 빵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곳의 맛있는 음식들에 관한 대화는 우리를 이 땅에 살아 숨 쉬도록 허락하는 듯했다. 한 인간이 과연 너무나도 소중했던 누군가를 가슴에 묻고도, 이렇게 계속 살아남아도 되는 걸까? 의구심이 차오를 때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다독였다.
“아무래도 맛있는 음식이 혈액에 부족하네, 우리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힘내서 일단 살자. 좀 새콤달콤~한 음식을 먹으면, 한 입 먹을 때마다, 한 숟가락씩 발랄해 질지 몰라”.
P도 알고 나도 알았다. 언뜻 뇌로는 그럴 리가 없을 것 같지만, 그럴 힘이 정말로 음식에는 있다는 것을. 정말 죽고 싶어 지는 찰나가 있는 것이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야속하게 배는 고팠고, 살기 위해 무언가를 먹어야만 했다. 그리고 우리는 대학교 때 서로를 처음 봤을 때의 모습처럼, 서로를 해맑은 얼굴로 마주하며 발랄한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많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나를 보고, 서로를 보고, 힘을 내는 것이다. 힘들 때 예쁘고 맛있는 음식과 마실거리는 순간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묘약이자, 구원이었다.
그렇다면, 나와 P처럼 A도 음식으로 순간의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A는 나와 P와 대학시절 동기였고, 스무 살 때부터 함께였다. 우리는 함께 깔깔거리며 캠퍼스를 누볐고, 함께 저렴한 학식을 먹고, 함께 싸구려 대패 삼겹살에 소주를, 그리고 돈이 없을 때면 (대체로 그랬다)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 순대, 떡꼬치를 사서 나눠 먹는 일이 많았다. 우리만의 소울 푸드인 셈이었다. 우리는 가진 것도 없었고 보장된 취업처도 없었지만, 함께여서 즐거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늘 그리워하며 연락했고, 대학시절 우리의 순수함과 발랄함을 그리워했다. 적어도 우리 셋의 대화 안에서는 목소리 톤이 낮은 사람은 없었고, 없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였는지 모르겠다. A라는 친구는,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가 서너 톤 정도 다운되어서 일상의 언어들을 구사했다. 전화를 받을 때 ’여보세요‘하는 순간부터, 만나기 직전에 “어디야? 다와가?”라고 묻는 말투까지. 언어마다 그 언어에 맞게 기대되는 일정한 톤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 평균 톤보다 최소 세 톤 정도 낮은 언어를 구사했다. 그것은 처음에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눈치 보게 만들었다. 기운이 빠지고 힘이 없어 보이기도 했고, 기분이 상한 일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A야, 뭔가 오늘 힘든 일이 있었니? 기분이 안 좋아?..”
그런데 그녀는 기분이 안 좋거나 힘든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은 보통의 기분으로 평범히 말을 한 것이라고 했고. 그 표정과 말투에는 일말의 거짓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한결같이 그런 힘없고 톤 낮은 목소리를 구사하면서도 평범하게 모임에 나왔다. 즐거운 이야기를 하면 픽- 픽- 웃었고, 슬픈 이야기를 하면 아주 가끔 눈물을 보였다. A는 소위 우리 사회에서 일컫는 전도유망하다는 대기업 직장의 다정한 남편과, 32평 서울 아파트, 그리고 건강히 잘 자라고 있는 예쁜 딸아이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잘 사는 대기업 맞벌이 부부 대체로가 그러하듯, 외제차를 한 대 끌고, 주말에는 함께 외식을 했다. 일 년에 한두 번쯤은 해외여행을 가서 웃는 가족사진을 잔뜩 찍어오는 삶을 몇 년간 살아왔다. 그녀에게 고민이 있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말했다. 고민이라고 해봐야, 아이가 잠투정이 최근 조금 더 늘었다든가, 언젠가는 될 승진에서 조금 더 빨리 되고 싶다거나, 나이 먹으니 군살이 느네- 하는 것들이었다.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친구들 중 가장 무난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내가 아는 가까운 지인 중 최근에 가장 뭔가 느껴지는 에너지가 없고, 자신이 먼저 꺼내는 화젯거리가 적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느 날 뒷골이 서늘해지며, A를 이대로 내버려 두면 어딘가 고장 나버리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함께 지구에서 살아가다가, 그녀 혼자 갑자기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가버린 듯한 느낌도 들어서, 그녀를 빨리 내가 사는 지구로 다시 데려오고 싶었다. 그런 낯선 느낌은 살아가며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웠다.
그렇다면, P와 나는 A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p는 그녀도 혈액 속에 맛있는 음식이 부족하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최근에는 맛있는 음식 탐방에 흥미가 없었다.
우리는, 그녀가 오기 전까지 그녀를 위해 떡꼬치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왜냐면 우리는 순대를 직접 만들 감량이 안 되었고, 떡볶이는 반대로 시시했다. 대패 삼겹살은 집에서 해줄 만한 음식이 아니었고, 학식은 학생식당의 공기와 함께 먹었을 때만 예상했던 그 맛이 날 터였다. 그래서, 떡꼬치라고 생각했다. 새콤하고 달콤한 그 소스와 쫀득쫀득한 튀긴 떡이 함께 입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힘이 나지 않을까. 추억과 함께 미소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높은 목소리 톤으로 그때 우리가 대학교 앞에서 함께 먹은 그 맛이 그립다고, 꺅꺅 기뻐해주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 믿었고, 그녀를 위해 요리했다. 설탕 3큰술, 케첩 2큰술, 간장 1큰술, 고추장 1큰술.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나는 늘 양념을 섞으며 주문을 외운다. 웍에 기름을 올리고, 떡을 튀겨내고, 양념을 바른다.
<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괜찮아져라- 괜찮아져라-
발랄해져라- 유쾌해져라- !!! >
가장 늦은 퇴근 후, 모임 장소인 P의 집에 A가 도착했다.
“우리가 널 위해서 신박한 음식을 준비했어. 이 음식 안에는 기분이 좋아지고 스무 살처럼 순간적으로 발랄해지는 묘약이 들어있어. 새콤- 달콤- 할 준비됐지???? “
“풋- 야, 뭐야, 너네, 귀엽다. 진짜.”
오호라, 듣자 하니, 이미 대답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보이고, 목소리가 반톤 정도는 높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