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꼴 음식찾기 놀이

by 톨슈

음식에 애정이 큰 나는, 사람을 떠올릴 때도 어떤 음식들이 생각난다.


예를 들자면, 우리 아빠는 매운 불짬뽕 같다. 화끈하고 거침없는 성격에 다혈질이시다. 먹을 때면 나의 스트레스 해소제가 되지만, 좀 맘이 안 좋은 날에 먹자고 들면 늘 위가 놀래서 체하고 마는 음식. 그래도 끊을 수가 없다. 돌아서면 그 빠알간 국물이 생각나곤 하는데, 막상 눈앞에 있으면 한 그릇 다 소화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반대로 우리 엄마는 시원한 자루 소바 같다. 어딘지 모르게 차가운 말투와 인상의 사람이다. 그렇지만 여느 식당에 가도 자루소바는 정갈하고 담백한 기본 맛을 가지고 있다. 한여름이 아니라면 이가 시릴 듯 차가울 것 같아도, 파와 무와 김을 넣어 먹다 보면 어느새 미지근해지며 속이 든든해진다. 의지가 되는 음식이다.



딩가라는 닉네임을 가진 한 여자를 나는 죽전의 한 만두전골 집에서 처음 만났다. 뭐랄까, 첫인상이 굉장히 의외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경기도 한 자락의 도시에서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었다. 독서모임을 한 뒤에, 매번 부지런히 모임 후기를 네이버 카페에 남기는 사람이었다. 사람과 새로운 장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녀에게서 건네받을 첫인사는, 당연히 활달한 톤의 안녕하세요- 일 줄 알았던 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차분하고 새초롬했다. 또 한 가지 의외였던 것은 함께 만난 다른 사람들을 휘어잡는 조용한 카리스마였다. 그녀는 말을 크게 하지 않았지만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다. 어딘가 흔해 보이면서도, 흔하지 않은 느낌의 사람이네-라고 생각하면서 만두전골을 접시에 덜었다.

만두전골은 마치, 여러 사람이 모인 동아리 같은 음식이다.


수담 죽전 본점. 예전부터 엄청 유명한 만두전골집이라 이름은 익히 들어왔었다.

동그랗고 꽃 같은 모양의 만두들. 가지런히 주황빛 국물 안에 풍덩- 들어앉은 만두들이, 목욕하는 선녀들 마냥 어여쁘다. 중간에는 떡하니 칼국수. 만두 바위 뒤에 숨어있는 파와 양배추 조각들. 국물을 뒤적이니 기꺼이 모습을 드러내는 사랑스러운 버섯 친구들. 전골 옆으로는 깍두기 한 접시 김치 한 접시. 전골의 맛을 돋울 새콤달콤한 밑반찬 친구들이다.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들러보니 다들 땀을 훔쳐가며 행복한 얼굴로 입에 전골을 넣고 있다.

어마, 막 재료가 엄청 특별하진 않은 것 같은데, 그렇게 맛있나? - 과연 어떤 맛일까?




처음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느껴지던 어색한 공기가 전골을 한 스푼 입에 떠 넣자, 연기와 함께 위쪽으로 흩어진다. 살짝 긴장됐던 마음이 칼칼한 국물과 함께 풀린다. 맛있다. 깊고 진-한 국물 맛. 얆은 만두피와 만두 속 사이로 머금은 국물이 더없이 촉촉하다.


이 육수처럼, 이 모임에 잘 스며들 수 있을까? 나는 전골을 음미하며 고민한다. 만두 같은 사람, 만두 옆 칼국수 사리 같은 사람, 파와 무와 버섯 같은 사람들이 섞여 있는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이 전골 안에서 사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는, 과연 만두인 걸까? 나는 만두가 되고 싶은 걸까, 느타리버섯이 되고 싶은 걸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하면서 첫 모임을 마무리했다.




그로부터 어언 만 이년이 흐른 후. 나는 딩가라는 사람을 사십 번쯤은 만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정확한 기간이나 수치 같은 것은 애당초 모르겠다. 그리고 의미도 없다. 어떤 사람은 백 번을 만나도 마음에 와 닿지 않고, 어떤 사람은 다섯 번만 만나도 맘 속 깊이 들어온다. 딩가는, 스물 다섯 번쯤 만났을 때 마음을 빼앗기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 자리에 늘 있어서, 크게 싫은 일이 없어서, 계속 모임에서 마주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녀가 없다면 인생의 방 한 칸이 심심해지면 어찌하지, 조금 염려가 될 정도다.


딩가는, 마치 본인이 좋아하는 김치찜 같다. 한국인으로 자라났기에 김치찜은 늘 가까이 있었다. 내가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김치찜은 정기적으로 나의 식탁에 올라왔다. 엄마와 함께 살며 자주 먹을 때는 더욱 그 소중함을 몰랐지.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되었을 때, 나는 엄마가 해주는 김치찜과 똑같은 맛의 김치찜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말하자면, 딩가 같은 맛의 김치찜도 또 없다. 김치찜 같은 한국인의 흔한 소울 푸드야말로, 내 마음에 쏙 드는 김치찜이 되어 나에게 오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김치찜처럼 변주가 쉬운 음식도 없다. 돼지고기를 넣으면 돼지고기 김치찜이요, 소갈비를 넣으면 김치 갈비찜이요, 고등어를 넣으면 그 비릿한 감칠맛과 만나서 새로운 요리가 또 완성된다. 그녀 또한 그러하다. 기본 김치찜처럼 뚝배기 안에 잔잔히 담겨있는 그녀의 모습이 좋다. 그런데 그녀는 또 언제고 변신할 준비가 되어 있어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재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올 테면 와보라지- 다 받아들여서 00 딩가 김치찜으로 만들어주지! 이런 태세랄까.


그래도 가장 그녀스러운 김치찜의 모습은 고기의 기름기를 다 걷어낸 깔끔한 맛의 김치찜일 것이라 예상한다. 담박하고 달큼하고, 그리고 살짝 국물이 매워 보여도 누구나 편한 마음으로 도전할 만한. 나는 그녀를 떠올리며 ‘달큰하다‘ 라는 형용사를 가장 먼저 사전에 검색했는데, 경남의 방언이라고 나와서 깜짝 놀랐다. 그녀가 경남 사람이라는 것은 무시무시한 평행이론인 것만 같다. 아- 김치찜 먹고 싶다!






< 담박-하다 > 발음 [ 담ː바카다 ]

1.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2. 아무 맛이 없이 싱겁다.

3.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

4. 빛깔이 진하지 않고 산뜻하다.


< 달큰하다 > 형용사 방언 ‘달큼하다’의 방언 (경남). 감칠맛이 있게 꽤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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