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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톨슈 Oct 24. 2021

10. 영월 살기의 꿈을 가진 여자

다시 또 만나, 영월

 

 서울로 돌아왔다. 나는 똑같은 나이고 그저 두 시간 반 차를 몰아서 영월에서 서울로 옮겨왔을 뿐인데도 나의 기분, 나의 몸 상태, 저녁 시간이 모조리 다른 오늘이었다. 여행지인 영월에서의 나에서 서울 집에서의 나로 모드를 바꾸는데 채 하루도 걸리지 않는 나 자신이 나 조차도 신기했다. 영월 일주일 살기가 나에게 가져다준 것은 무엇일까?


 영월에 머무는 동안에는 유튜브를 한 편도 보지 않았다. 유튜브를 볼 시간에 나가서 영월 밤하늘의 별을 보았고, 흐르다가 끝내 얼어붙던 강들을 직접 내려다보았다.  지나가는 동물과 흔들리는 풀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월 관련 책이나 지도를 보고 또 보면서 다음 날 갈 곳을 기대해보았다. 다가올 내일의 여정들을 기대하며 여린 잎사귀 만지듯 하나하나 마음의 손으로 내일의 시간을 매만지는 순간을 가졌었다.


 영월에서 머물 때 느끼고 있던 소중한 감정과 기억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여유가 있는 시간에는 일단 노트북을 켜고 단 한두 문장이라도 적으려고 노력하거나 사진을 찍었다. 숙소에 따라서 노트북 콘센트와 앉을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자세가 나오지 않을 때에도 엎드려서도 쓰고 쭈그려 앉아서도 썼다. 마음의 눈으로도 풍경을 찍고 핸드폰 가득하게도 사진을 찍었다. 영월에 있다고 조금 더 자판을 두드리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내가 스스로 뿌듯했다.


영월의 강과 산이 바람이 나에게 응원을 보내주는 듯 느껴졌었다.


 매일 짐을 풀고 다시 싸는 것은 큰 일 중의 하나였다. 이번에는 예쁜 여행 사진을 남기고 싶기도 했고, 또 가을이었지만 갑자기 겨울 같은 날씨 덕에 두 계절의 옷을 아주 많이 준비했었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만 건강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일주일을 살아보는 것이 이번 영월 여행의 목표 중 하나였기에 여행 중이라도 자주 외식은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큰 아이스 박스 가득 야채들과 식재료들을 싣고 다녔다. 든든했다. 그것들을 차에서 꺼내 새로운 숙소의 냉장고에 넣고 오늘의 밥상을 차리고, 낮의 이동시간 동안 상하지 않기 위해서 잘 정리하고 재료가 남지 않게 요리를 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하루는 정신없이 빠르게 흘렀다. 오늘 해 먹을 것을 상상하고 모자란 채소는 시장에서 구해오고, 예쁜 곳에 가서 하루 한 산책을 하고. 그런 것들에 신경 쓰는 동안 시간은 총알같이 흘러갔는데 그 정신없음 속에서도 신비하게 안도감이 느껴졌었다.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을 찍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었다. 건강히 밥만 잘해 먹어도 하루가 알찼고 스스로가 대견했다. 새 숙소로 이동하면 콘센트 위치나 구비되어 있는 가구, 식기, 소품 등을 발견하는 것도 재밌는 일과 중 하나였었다. 숙소의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담고 흥이 돋으면 춤을 추면서 동영상으로 남겨 두고 깔깔거렸다.







 집에 오니까, 위에 말한 일들을 다 할 필요가 없다. 대신 일주일간 쌓인 업무와 일주일 살기를 마무리할 보고서 작성 등의 일이 한가득이다. 할 일이 많은데도 나는 다시 집에 오자마자 습관처럼 튼 TV 예능을 연거푸 보고 말았다. 아주 재밌어서가 아니라 자극적인 편집에 뒤가 궁금해서 결국 세 편을 연달아 봤다. 그다음에는 조금 쉬다가 한다면서 핸드폰을 들었다가 유튜브를 봤다.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어딘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으로 자연의 소리 음원을 검색해보았지만, 기계에서 나오는 자연의 소리는 마음을 챙기기에 충분치 않았다. 마음에 약을 주고 싶어. 오늘 써보고 싶은 새로운 글의 주제나 단어를 발견해 볼 겸 책을 펴고 책을 조금 읽었다. 그러다 보니 어찌어찌 거의 열두 시가 다 되었다. 졸음이 슬슬 몰려오고 글 한 편을 다 완성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있을지 자신이 없어진다. 도시에서는 이상하게 시간이 이렇게 간다. 앗, 망했다! 영월에서는 제법 바쁜 하루 와중에도 반편의 글이라도 썼었는데! 오자마자 서울의 나를 반성해 본다.


 영월에서는 온몸에 따뜻한 핫팩을 붙인냥 기분좋게 달뜨기도 하고, 마음이 솜사탕이 된 것처럼 몰랑몰랑해져서 이나서 많이 움직였었다. 여행의 힘일까, 사랑해 마지않는 영월지역의 힘일까? 고질병이었던 복통이 자주 오지 않기도 했고, 신기하게도 체력이 넘치고 기운이 었다. 사실 힘든 날도 있었지만 그럴 땐 여유롭게 낮잠을 잘 수 있었다.  청령포 찻집에서뜨끈한 바닥에 누워 잠이 들고 말았는데 웃으면서 푹 쉬고 가라던 친절한 사장님도 기억에 남는다.


 많이 걷고 많이 기록을 했다. 서울 집에 들어오니까 이상하게 다시 배가 아프다. 이것은 배란기이기 때문인지 감정적인 문제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 배는 정말 슈퍼 울트라 예민 보스임에 틀림없다. 정말로 서울 집에 들어오니까 배가 많이 아프다. 영월로 가고 싶은가 보다.



 다시 또 영월로 가고 싶다.



 마지막 날 아침에는 이렇게 계속 생각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나버렸다니 믿기지가 않는다고. 최소한 이주일 살기 정도는 해야지 가고 싶었던 곳을 반이라도 가고 더욱 여유라는 걸 누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차가 막혀서 계속 상상을 했다. 이게 돌아가는 길이 아니고 서울에서 영월로 내려가는 길이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다시 달콤한 일주일 살기를 해보고 싶다고. 다시 하면 더 잘 하고 더 좋을 것만 같았다. 시계를 뱅글뱅글 돌려서 일주일 전으로 돌리고 싶다.


 실현 불가능한 꿈같은 일을 반복해서 상상하는 버릇은 이십 대 이후로 관둔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계속 다시 영월에 살 일주일을 상상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영월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매일매일을 다시 한번 그려봤다. 어라, 그랬더니 여행이 끝났지만 다시 미소가 지어진다. 영월 사진을 뒤적이다가 친구에게 몇 개를 보내주었다. 사진 속의 내가 정말 행복해 보인다고 한다. 내가 봐도 아주 얼굴이 활짝 피었다.



영월에서의 일주일이 내 안의 무언가를 바꾸었나 보다. 지금은 서울 침대 위에서도 상상을 하고 웃을 수 있다. 미소를 머금고 여행을 정리하는 글을 마무리 한다. 거울을 보니까, 영월에서 생성된 밝은 기운이 한 겹 내 얼굴에 더해진 것 같다. 여행과 여유라는 맛있는 단어가 배를 간질인다. 서울에서도 다시 나를 위해 건강히 밥을 해먹고 힘을 내야지!


 가끔은 말도 안 되는 달콤한 상상과 꿈을 즐기는 여자, 영월 일주일 살기의 추억을 가진 여자. 나는 이제 그런 여자이다. 한 발 더 내가 좋아진다. 이번 여행의 약발이 떨어지면, 또 영월로 차를 몰아야지.  


사랑해, 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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