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타고 양재천에서 춤추기

떡볶이, 짜장면, 신화와 GOD, 월담소녀, 우리의 추억

by 톨슈


담을 넘어서 학교 밖으로 도망나가 보셨나요?


가랑이를 벌리고 무릎을 위쪽으로 올려 디뎠을 때, 팔로 벽돌을 슥- 짚고 밀어낼 때!

내 다리와 몸통이 마치 잘 삶아진 달걀처럼 부드럽고 미끈하게 담 위를 넘어갈 때,

그 때의 유쾌함을 아시냐고요.


긴 머리 여자라면 더하죠. 휘릭- 넘어가고 나서 착지를 할 때면 공중으로 날아오른 머리카락들이 중력을 못 이기고 다시 목덜미로 사라락- 내려 앉아요. 아! 무사히 잘 넘어왔다! 아아-, 기분 좋다!




이를테면 그런 거예요. 우리의 일상은 촘촘하고 답답한 규칙들로 가득 차 있어요. 살다 보면 영혼이 찬물에 젖은 냥 축 쳐질 때가 더러 있죠. 서른의 저는 와인잔을 기울여 순간을 넘기지만, 열다섯의 저는 담을 넘었어요.

월담은, 완벽한 일상 속 작은 구멍이 만들어냈던 달콤한 쾌락의 맛, 이랄까요.




청소년기에는 누구나 호르몬의 작용으로 반항심이 활성화되어요. 저로 말하자면, 조금 더했어요. 어릴 적부터 반항이란 글자가 피 안에 세포처럼 떠다니는 소녀였달까요.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 심정이라고, 학주가 담 넘지 말라시니, 더 넘고 싶더라구요. 후후. 한 때는 그것이 학교가는 재미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시작은, 초등학교 이 학년이었는지도 몰라요. 아파트 정문과 후문 사이의 담. 그 담을 넘으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5분은 단축할 수 있었거든요. 마치 라면 물 올려놓은 사람처럼, 담을 휙- 넘어서 빠르게 집으로 가고는 했죠. 표면적인 이유는, 집에 빨리 가서 엄마 보고 싶어서, 였고요. 실질적인 이유는, 그저 담을 넘고 싶었어요. 영 쩜 영영 영영 일초라도 하루 속 일탈의 순간이 필요했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담을 넘으면 기분이 좋았어요. 치마를 입고 넘는 것은, 또 그것대로 더 짜릿했어요. 어른들이 더 하지 말라고 하는 짓이었기 때문이었죠. 아, 오해하지 마세요. 그래도, 속치마는 잘 챙겨 입었답니다. 그래도 치마 입고 담을 넘으면서 혼자 흐뭇해했죠.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어떤 틀을 깨부수고 있기라도 한 냥, 게이 퍼레이드를 행진하고 있는 브라만 입은 여인네가 된 냥 말이에요. 짧은 오초 간, 무언가 해낸 것 같았죠.




그렇게 자라난 소녀는, 중학생이 되어도 담을 넘었고 고등학생이 되어도 담을 넘었어요. 등교하고 나면 갇혀 버리는 그 세계에서 단 몇 분만이라도 도망 나올 수만 있다면. 삐비 빅- 하고 하지 말라며 호각을 불어대는 학생주임 선생님의 눈을 피해서 무사히 탈출해야 하는 매일의 미션. 친구 셋과 담을 넘고 나서 가쁜 호흡을 내쉬며 함께 킥킥거릴 때의 행복감! 주 탈출 시간대는, 점심시간이었어요. 엄마의 도시락 반찬도 괜찮았지만, 그래도 제일 맛있는 건,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서 먹는 떡볶이와 짜장면이었어요. 중학교 때는 정말로 돈이 없었는데요. 친구들과 100원씩 야금야금 모아서 돈이 모이면, 담을 넘었어요. 깔깔거리며 전력질주로 동네 분식집에 들어서면, 아주머니는 사정 다 안다는 듯이 웃으면서, 5인분 같은 2인분을 내주셨죠.




크으- 그 달큼하고 맵싸한 떡볶이 끓는 냄새. 초록 접시에 쌓인 비닐 위로 후두 두두둑- 떨어져 담기는 영롱한 떡 가락들. 포크로 찍자면 뭉클-하면서 포크 안으로 감겨드는 밀떡들. 운 좋으면 입안에 함께 들어오는 대파의 미끄러운 조각들. 학교에서는 3교시 때쯤부터, 매일 같은 장면을 상상하곤 했던 것 같아요. 교복 치마 밑에 운동복 바지를 껴 입고서는, 담을 휘릭-하고 바람을 느끼며 넘어가는 상상. 떡볶이 집에 도착해서 호로록- 떡과 어묵을 입술 사이로 마구 미끄러트리는 상상. 그 상상만으로 지루한 오전 두 교시를 버텼죠.


입술과 입술사이로 자극이 느껴질 때, 인간은 참 행복하대요. 그때는 아직 키스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나이였으니, 떡볶이 외에 그 무얼 바랐을까요.




고등학교 때는 스케일이 좀 더 커졌더랬죠. 일단, 몸집이 더 커져서 빠른 속도로 먼 곳에 있는 떡볶이 집을 노릴 수 있었고요. 용돈의 규모도 좀 더 늘어났기에, 짜장면이라는 넘볼 수 없는 세계 또한 가끔 탐할 수 있었죠. 짜장면은 또 어떻게 먹었냐고요? 짜장면은 당연히 배달 아니겠습니까. 저는 적어도 풍류를 아는 십 대였죠. 그래서 담을 넘고 나면 졸졸 흐르는 양재천이 한눈에 보이던 정자로 갔어요. 촉박한 점심시간이라서 죽을 둥 살 둥 전력 질주해서 달려갔지만, 정자에 도착하면 구름 위의 신선인 듯 여유를 부렸죠. 리코더와 단소로 가락을 시작하여 신화와 지오디의 춤으로 흥을 드높였어요.


그러고 있다 보면 도착하는 짜장면. 슥-슥- 비벼서 허겁지겁- 입으로 넣자면, 정말로 입안에서 춘장과 양파와 고기와 면이 강강술래를 했어요. 흥이 난다 !!




파란 하늘 하늘색 풍선은

우리 맘속에 영원할 거야


너희들의 그 예쁜 마음을

우리가 항상 지켜줄 거야 예!!!!


파란 하늘 짜장면 냄새는

우리 콧속에 영원할거야

너희들의 그 짜장 소스는

입가에 남아 우릴 지켜줄 거야 예!




말도 안 되는 개사송을 목청 터져라 부르고 있자면, 파란 하늘과 짜장면이 지친 가슴을 따땃히 덮여주었어요.




어른이 되어서 떡볶이와 짜장면이 그 아무리 맛있다고 한들, 그때의 그 맛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저는 왜 이제는 담을 안 넘는 어른이 되었을까요. 까짓 담 한번 넘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겁을 먹고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의 존재를 의식할까요. 나는, 무엇이 그리 무서운 걸까요.


사실, 살면서 넘어야 할 보이지 않는 벽들이 점점 늘어가요. 저는 서른쯤 되면 이런 고민은 안 하는 건 줄 알았거든요. 담도 넘고 싶지 않을 줄 알았고, 떡볶이도 먹고 싶지 않을 줄 알았고, 잘 살고 있는지 고민도 그만하는 건 줄 알았죠.


그런데요, 여전히 담을 넘어서 떡볶이를 먹으러 가고 싶네요. 여전히 일탈과 인생의 구멍은 필요하네요.


아무래도 작은 인생의 불균형은,

삶을 무엇보다, 매력적으로 만들고 숨통을 트여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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