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키스의 맛을 기억하나요

개척하라

by 톨슈

“처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당신은 무엇이 생각나나요?


첫 포옹, 첫 키스, 첫 경험, 첫사랑, 첫 가족

첫 성공, 첫 좌절, 첫 학교, 첫회사,

첫 핸드폰, 첫 책, 첫 가방.

나의 첫 방, 처음 혼자 해 본 요리



사실,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단어에 우리는 처음을 붙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처음이라는 단어는 정말 설레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긴장되고 어려운 단어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우리는 그 모든 처음을 이겨내고 지금을 살고 있어요. 많은 처음을 버티어낸 어른이란 존재는 모두 다 대견하고 가련하지요.


살다가 가끔 아이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인생의 처음이 많았던 때가 그립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처음은 오직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봄에 가장 먼저 발견한 초록잎처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요. 첫 경험들은 투명한 소라게의 껍질처럼 소중하고 소중해요. 오늘은 그런 소중한 처음을 하나 꺼내보려고 합니다.


첫 키스를 하기 전에 전, 정말로 키스가 '밀크 딸기 초콜릿 맛'일 거라고 상상했어요. 좋아하는 사람과 키스를 하면, 그 순간이 너무나 황홀하고 달콤할 테니까, 틀림없이 그런 맛이 날 거라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귀여운 소녀였던지. 때마침 제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근육을 가진 남자가 곁에 나타났었죠.




첫 키스를 한 그는, 담배를 피웠었어요. 지금은 담배 피우는 남자를 좀 싫어해요. 하지만 그때는 그 친구가 담배를 피우는 것도 멋있어 보였더랬죠. 그런 나이였어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면을 모조리 내 눈앞에 가져다 놓고 싶었던 그런 나이. 그 때는,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TV에 흐르던 시대였던 것 같아요.


그와 제가 여러 번 데이트를 하며 손등을 조심스레 스치던 시작이 있었죠. 그 당시 그에게서 담배 내음이 나는지 안 나는지 따위는 미처 느낄 수도 없을 만큼, 저는 그를 좋아했고, 또 그를 좋아하는 자신에게로 몰두했어요. 그리고, 그 친구와 키스하는 걸 상상했어요. 잘은 모르지만, 좋아하던 츄파츕스의 초코 바닐라 맛이 나려나- 아니면, 딸기 바닐라 맛이 나려나? 이런 유치한 상상을 했어요. 아무래도 혀가 있으니까, 아몬드 초콜릿을 살살 굴려 녹여먹다가 아몬드만 남았을 때의 그런 맛이 나려나???


그런 야릇하고 마쉬멜로우 같은 상상을 매일 했죠. 그런데 첫 키스는 놀랍게도- 담배 맛이 조금 났어요. 매캐하고 씁쓰름하고 어른 남자 같은 맛. 좌우지간 달콤한지는 잘 모르겠는 맛. 후후.


정말 예상외의 그 맛에 깜짝 놀란 저는, 키스를 하다 말고 웃음을 터트렸어요. 동화 속 소녀 같은 나 자신의 상상력이 우습기도 했고요, 많이 당황해서 크게 웃어넘기려 했어요. 그도 저도 꽤나 무안했지만, 괜찮았어요. 사실은 술에도 좀 취해있었거든요.



그 뒤로 하나 깨달은 것이 있어요. 딸기 초콜릿 맛 키스는,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요. 그다음 그를 만나던 날, 저는 가방 속에 고이 넣어 두었던 딸기 초콜릿을 꺼내어 그에게 주었어요. 반틈은 그를 먹이고, 또 반틈은 제가 먹었죠. 그랬더니 당연하게도 우리의 키스는 정말로 딸기 초콜릿 맛이 났어요! 하면 할수록 초콜릿 맛이 다가오는 것만 같아서, 그다음부턴 키스를 멈출 수가 없었죠.





인생은 이렇게 개척해나가는 거구나, 인생의 달콤한 순간은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 내는 거구나-

첫 키스로 인생의 진리를 배우기 시작했다면, 매우 과장일까요?


같은 결의 핑크색을 지니고 있어서인지, 봄에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고 있자면 딸기 밀크 초콜릿이 떠오르고, 또 저의 첫 키스가 생각이 나요.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초콜릿이 견딜 수 없이 먹고 싶어 지곤 하죠.




그럴 땐, 참고 참다 ‘초코 딸기’를 만들어 먹어요.


먼저 정말 꼭지 끝-까지 빨간 딸기를 골라 사 와요. 그런 딸기를 만나기 위해서는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봄의 설렘도 마찬가지죠. 함부로 시작하면 안 되어요. 벚꽃이 살살 피어올라올 때, 그때는 아직은 일러요. 벚꽃이 만개했다면서 남부지방에 사는 친구들이 SNS에 피드를 올릴 때, 그때도 조금은 이르고요. 이윽고 대전에 사는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사진에 화려한 목련꽃이 바람에 휘날릴 때, 바로 그 때에요.


그때 사온 빨갛고 통통한 딸기 여섯 알을 가지런히 종이 포일에 놓아요. 그리고 밀크 초콜릿을 냉동실에서 꺼내어 중탕합니다.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되겠지만, 그러면 왜인지 전자레인지 천장에 살고 있는 요정들이 초콜릿의 달콤함을 많이 앗아가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수고롭지만 냄비에 물을 끓이고 그 안에 사랑스러운 하트 모양의 사기그릇을 넣습니다. 하얀 초콜릿 덩어리들을 넣고, 실리콘 스푼으로 살-살- 저어요.


마침내 뭉근해지고, 마침내 부드러워지고, 마침내 딸기에 마법을 씌울 준비를 그들이 마쳐요. 그러면 이쑤시개에 꽂은 딸기의 끝 세모 부분을 퐁당- 담가, 하얀 모자를 씌웁니다. 귀여워라. 만년설이 있는 동화에서 본 어떤 산 같기도 하고, 산타할아버지의 흰 앞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라 버린 것 같기도 한, 그런 모양의 딸기가 되었어요.


냠 - 상큼하고 달콤하고 아득히 행복한 맛!




저는 봄이 되면, 초코 딸기로 저의 처음을 기억하고 저의 첫 키스를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 서른 번은 기꺼이 맞은 봄을, 마치 처음 맞은 마냥, 행복해합니다. 여러분도 이 봄, 초코 딸기로 당신의 처음을 만끽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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