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성장통은 위기가 아닌 성찰과 깨달음의 순간
20대에는 욕망의 지배를, 30대에는 이해타산, 40대에는 분별력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그 나이를 지나면 지혜로운 경험의 지배를 받는다.
__ 발타자르 그라시안
커피 맛을 잘 아는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상큼한 과일 향도 느끼고, 달콤한 초콜릿 향이나 고소한 견과류 향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벌써 수십 년째 커피를 마셔왔는데도 그런 향을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오로지 쓴맛만 느꼈을 뿐이다.
콩국수에 소금을 넣어서 먹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렇게 하면 콩물의 구수한 맛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누구나 그 맛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 맛을 느끼려면 소금의 짠맛을 먼저 제대로 느껴야 한다. 그것을 모른 채 무작정 콩물부터 삼키면 그저 밋밋하고 밍밍할 뿐이다.
내가 커피 향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콩물의 구수함을 모르는 사람들 역시 아직 그 맛을 즐기는 연륜에 이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그 맛을 모른다고 해서 실망할 일은 아니다. 굳이 그것을 알아야 할 이유도 없지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저절로 알게 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험이 내공을 깊어지게 해서 알지 못했던 향과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콩가루 묻은 인절미의 찐득함과 고소함, 나무껍질을 씹는 것만 같아서 싫어했던 고사리를 비롯한 나물의 참맛을 나이 들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소중한 것을 알게 되는 때가 온다. 이른바 깨달음의 순간인 셈이다. 잘나가고 높은 곳에 있을 때보다 힘들고 낮은 곳에 있을 때,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그런 경우가 많다. 가장 힘들고 낮은 곳에 있을 때 비로소 진실한 나와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서 보는 나는 오만하고 자만할 수 있지만, 낮은 곳에 있는 나는 더는 잃을 것이 없기에 더없이 욕심 없고 겸손하며 진실하다. 또한, 오만과 자만은 자신을 과대평가하지만, 겸손과 진실함은 자신을 바로 보게 한다.
잘 익은 벼일수록 고개를 깊이 숙인다. 벼가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부족해서가 절대 아니다. 가득 찼기 때문이다. 설익은 벼는 고개를 절대 숙이는 법이 없다. 고개를 높이 치켜든 채 스스로 뽐내고 잘난 체할 뿐이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 안에 든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고개를 숙인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더 크게 성공하려고 일부러 고개 숙이는 것이 절대 아니다. 거기에는 힘든 삶을 이기며 사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진심이 담겨 있다. 산전수전 겪으면서 스스로 깨우친 삶의 이치이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삶은 밍밍하고 밋밋했다. 아무런 맛과 향도 느낄 수 없었을뿐더러 무엇 하나 두드러진 것 없이 평범했다. 무엇보다도 삶의 내공이 크게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 특히 성공한 이들의 말과 행동을 무작정 좇느라 바빴다.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젊고 잘나갈 때는 앞이 아닌 위만 쳐다보면서 달린다. 누군가가 앞을 가로막고 “이건 아니다”라고 해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며, 웬만해서는 질주를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이 항상 올라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인생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어렵고 힘들게 올라갔지만, 언젠가는 결국 내려와야만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다. 중요한 것은 올라갈 때는 그것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내려올 때쯤에야 그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대부분 사람이 중년이 되면 큰 변화를 겪는다. 무작정 앞만 보며 열심히 달려왔는데, 갑자기 잘 달려온 것인지, 앞으로도 이렇게 달리는 것이 가능한지, 이런 삶이 과연 내가 바라는 삶이었는지, 돈 버는 기계로만 살아온 것은 아닌지, 라는 실존적 불안과 의문이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쳐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년을 ‘사추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생의 봄에 해당하는 청소년기에 찾아오는 사춘기에 빗댄 말이다. 실제로 이때는 사춘기처럼 신체·정신·환경적 변화가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한다.
나 역시 중년의 성장통을 한창 겪는 중이다. 단단하리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언제부터인가 부쩍 약해졌고, ‘나를 위해서 살지 못했다’라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변한 입맛에 놀라기도 하고, 고전과 어른들의 말씀에서 뒤늦은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중년의 성장통은 위기가 아닌 성찰과 깨달음의 순간이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것을 비로소 보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을 솔직히 돌아봐야 한다. 내면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함으로써 자신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릇, 진정한 깨달음은 가장 절망적인 시간을 뚫고 나아가야만 얻을 수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