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자연인 소로의 삶과 정신이 깊은 깨달음을 주는 이유

by 마테호른


왜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서 그처럼 필사적이며, 그렇게 필사적으로 일하는 것일까?

어떤 이가 동료와 보조를 맞추지 않는 이유는 그가 그들과는 다른 사람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북소리가 어떤 박자를 갖고 있건 간에 자기가 듣는 음악에 보조를 맞추도록 내버려 두어라.

왜 그가 남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가?

__ 헨리 데이비드 소로




◆ 가난했지만, 정신만은 누구보다도 더 풍요로웠던 소로의 삶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였다. 즉, 인생의 본질에만 집중해서 인생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한 것으로,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라고 뉘우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물질세계의 풍요와 혜택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사는 행복한 인간의 모습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으로 알려진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다.


《월든》을 통해 우리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려고 했던 자연인 소로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28세 되던 해 월든 호숫가에 작은 통나무집을 한 채 지은 후 2년 2개월 동안 그곳에서 생활하며 문명사회의 풍요와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사람들의 욕심을 비판한 소로. 사실 그는 하버드 출신으로 마음만 먹으면 누구보다도 더 편안하고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득바득 성공하려는 세상과 사람들의 지나친 소유욕이 몹시 싫어서 죽는 날까지 그럴듯한 직업 한 번 가진 적 없이 임시교사, 목수 등의 직업을 전전하며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도 하버드의 ‘자랑스러운 졸업생 이름’에서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비록 생활은 가난했지만, 정신만은 누구보다도 더 풍요로웠기 때문이다.


소로의 그런 삶과 정신은 수많은 사람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법정 스님을 비롯해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 등등…. 특히 법정 스님은 《월든》을 머리맡에 항상 두고 지내며 그와 같은 무소유의 삶을 살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생전에 월든 호수를 몇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월든에 다녀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호숫가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그리움의 터, 그 월든에 다녀왔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근교에 있는 월든 호반은 10월 말 단풍이 한창이었다. 맑은 호수에 비친 현란한 단풍을 대하자 다섯 시간 남짓 달려온 찻길의 피로도 말끔히 가셨다. 《월든》을 읽으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쳤던 그 현장에 다다르니 정든 집 문전에 섰을 때처럼 설레었다. 늦가을 오후의 햇살을 받은 호수는 아주 평화로웠다.”

__ 법정 스님,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하지만 모든 사람이 소로나 법정 스님처럼 살 수는 없다. 물질 사회의 편안함과 그것이 주는 풍요로움에 익숙할 대로 익숙해졌을뿐더러 책임져야 할 일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다짐하곤 한다.

‘이 일만 해결하고 나면 나도 내 마음대로 살 거야.’


그 이유는 물질 사회의 불공정함과 차별, 어렵고 복잡한 인간관계에 지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즐겁고 행복하기보다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날이 훨씬 많다. 끊임없이 바쁜 일상과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막연한 기대, 성공에 대한 부담, 가족에 대한 책임감 등 어느 것 하나 마음을 무겁게 누르지 않는 것이 없다. 문제는 그것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 특히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거나 무책임하다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 역시 그랬다. 그러니 우리 역시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줄로 안다. 그 결과, 힘들어도 아득바득 살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과연 뭘 얻었을까.



◆ 최선을 다하되, 자기 일에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 방탄소년단의 ‘낙원’이라는 노래가 있다. 많은 이들이 그 노래에서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 노래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도 한다. 그 이유는 ‘멈춰서도 괜찮아. 아무 이유도 모르는 채 달릴 필요 없어. 꿈이 없어도 괜찮아. 잠시 행복을 느낄 네 순간이 있다면~’이라는 가사가 마치 자기 이야기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목적도 모른 채 무조건 앞만 보며 달리던 자신에게 그것은 더 없는 위로였던 셈이다.


물질과 성공 지향적인 삶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원초적인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뜻은 더욱더 아니다. 최선을 다하되, 자기 일에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많이 가졌다고 해서, 성공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를 향해 소로는 이렇게 충고한다.


“밥벌이를 그대의 직업으로 삼지 말고 취미로 삼아라.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려고 하지 마라. 진취성과 신념이 없기에 사람들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에서 노예처럼 사는 것이다.”



◆ 목적 없는 삶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어깨가 축 처진 채 집에 돌아오는 일이 간혹 있었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말씀이 별로 없으셨다. 철없던 그 시절에는 ‘그저 그런가 보다’라며 아무 생각 없이 내 일에만 신경 썼다. 하지만 이제 내가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고 보니,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때 아버지 역시 분명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거운 짐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싶었을 테지만, 어린 자식의 얼굴을 보고 매번 마음을 다잡았으리라. 그런 마음을 짐작도 하지 못한 채 무신경했던 내게 지금은 매우 화가 난다. 만일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버지, 너무 애쓰지 마세요.”


나이가 들수록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바람과는 달리 나이 들수록 고민의 무게가 점점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 현실이다. 책임질 일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마음의 평온함을 찾기가 더 쉽지 않다. 행복이 옆에 있어도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다.


너무 애쓰며, 아득바득 살 필요 없다. 성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기보다는 순간순간이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성공해도 행복하지 않으면 그것을 위해서 쓴 시간과 노력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성공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이루지 못한 모습을 생각해보라.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오직 거기에만 매달렸는데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허탈함을 넘어 비참함마저 들 것이다.




포스트 배너.jpg


keyword
이전 03화나이 들수록 힘을 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