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천, <냉면>
“도박에 져서 실패한 김에 국수(평양냉면) 한 양푼을 먹었다는 말이 우리 시골에 있다. … (중략) … 서울서 횡행하는 국수(냉면)는 유사품일 뿐이다. 그러니 평양냉면이나 메밀국수와는 친척 간이나 되나마나 하다.”
“평양에 온지 사 년이 되나 자별스럽게 기억에 남는 음식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 (중략) … 육수 그릇을 대하면 그 멀겋고 멋없는 꼴에 처음에는 구역질이 난다.”
‘냉면’이라는 말에 ‘평양’이 붙어서 ‘평양냉면’이라야 비로소 격에 맞는 말이 되듯이, 냉면은 평양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언제부터 이 냉면이 평양에 들어왔으며, 언제부터 냉면이 평안도 사람들의 입맛과 기호에 맞는 음식이 되었는지는 나 같은 무식쟁이로서는 알 수도 없거니와 알고 싶지도 않다.
어린 시절 우리가 냉면을 국수라고 하여 비로소 입에 대게 된 것을 기억하는 평안도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밥보다도 아니, 쌀로 만든 음식보다도 일찍 나는 이 국수 맛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등에 업힌 채 어른들의 냉면 그릇에 여남은 가닥 남은 국수오리(국숫발), 즉 메밀로 만든 이 음식을 서너 개 있을까 말까 한 이로 끊어서 삼킨 것이 아마도 내가 냉면을 입에 대본 첫 기억일 것이다. 하지만 젖 먹다 뽑은 작은 입으로 이 매끈거리는 국수오리를 감물고(입술을 감아 들여서 꼭 묾) 쭐쭐 빨아올리던 기억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누가 마을에 올 때 점심이나 밤참으로 반드시 이 국수를 먹던 것을 나는 겨우 기억할 따름이다.
잔칫날, 즉 약혼하고 편지 부치는 날과 예물 보내는 날, 장가가는 날, 며느리 데려오는 날, 시집가고 보내는 날, 장가 와서 묵고 가는 날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이 국수가 출동했다. 그밖에도 환갑날, 생일날, 제삿날, 장례식 날, 길사, 경사, 흉사에도 냉면이 나왔다.
특이한 것은 이 국수를 때로는 냉면으로, 때로는 온면으로 먹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정월 열나흘 작은 보름날에 이닦기엿, 귀밝이술과 함께 수명이 국수오리처럼 길어야 한다고 ‘명길이국수(국수가 길듯이 오래 살 수 있다는 뜻에서 해 먹던 국수)’라 이름 지어서까지 냉면 먹을 기회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평안도 사람의 단순하고 담백한 식도락을 추상(抽象, 여러 가지 사물이나 개념에서 공통되는 특성이나 속성 따위를 추출하여 파악함)할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속이 클클한(뱃속이 좀 빈 듯하고, 목이 텁텁하여 무엇을 시원하게 마시거나 먹고 싶은 생각이 있음) 때라든지, 화가 치밀어 오를 때 화풀이로 담배를 피운다든지, 술을 마신다든지 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럴 때 국수를 먹는 사람의 심리는 평안도 태생이 아니고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도박에 져서 실패한 김에 국수 한 양푼을 먹었다는 말이 우리 시골에 있다. 이렇게 될 때 이 국수는 확실히 술 대신이다.
나처럼 술잔이나 다소 할 줄 아는 사람도 속이 클클한 채 멍하니 방 안에 처박혀 있다가 불현듯 냉면 생각이 나서 관철동이나 모교 다리 옆을 찾아갈 때가 드물지 않다. 그럴 때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
“차나 마시러 갈까?” 하면,
“여보, 차는 무슨 차, 우리 냉면 먹으러 갑시다.”
하고, 앞장서서 냉면집을 찾았다.
모든 자유를 잃고, 음식 선택의 자유까지 잃었을 경우, 항상 애끊는 향수같이 엄습하여 마음을 괴롭히는 식욕의 대상은 우선 냉면이다. 그러고 보면 냉면이 우리에게 주는 은연함(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아니하고 어슴푸레하며 흐릿함)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 (이하 하략) …
─ 김남천, <냉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