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 석, <가재미>
“이 시집의 가치는 이 시편들이 울려 나오기를 토속학적 취미에서도, 방언 채취의 기호에서도 아닌 점에 있다. 외인(外人)의 첫눈을 끄으는 이 기괴한 의상(衣裳) 같은 것은 모든 이 시인의 피의 소곤거림이 언어의 외형을 취할 때에 마지못해 입은 옷인 것이다. 이 시집에서 감득할 수 있는 진실한 매력과 박력이 이 증좌(證左)다.”
─ 박용철,《조광》 1936년 12월호 ‘시단 일 년의 성과’ 중에서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루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 백 석, <국수> 중에서
“하기야도 내가 친하기로야 가재미가 빠질겝네. 회국수에 들어 일미이고 시케(식혜)에 들어 절미지.”
─ 1938년 6월 7일, 《동아일보》 기사 중에서
동해 가까운 거리로 와서 나는 가재미와 가장 친하다. 광어, 문어, 고등어, 평메(바닷물고기의 종류), 횃대(홍치. 주로 식해를 담아 먹는다)… 생선이 많지만 모두 한두 끼에 나를 물리게 하고 만다. 그저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재미만이 흰밥과 빨간 고추장과 함께 가난하고 쓸쓸한 내 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 나는 이 가재미를 처음 십 전 하나에 뼘가웃(손 한 뼘보다 조금 큰 것)식 되는 것 여섯 마리를 받아들고 왔다. 다음부터는 할머니가 두 두림(물고기를 한 줄에 10마리씩 두 줄로 엮어 20마리씩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두름’의 함경도 방언) 마흔 개에 이십오 전씩에 사 오시는 데 큰 가재미보다도 잔 것을 내가 좋아해서 무두(모두) 손길만큼 한 것들이다. 그동안 나는 한 달포 이 고을을 떠났다 와서 오랜만에 내 가재미를 찾아 생선장으로 갔더니 섭섭하게도 이 물선(物膳, 음식을 만드는 재료)은 보이지 않았다. 음력 8월 초상(초순)이 되어야 이 내 친한 것이 온다고 한다. 나는 어서 그때가 와서 우리들 흰밥과 고추장과 다 만나서 아침저녁 기뻐하게 되기만 기다린다. 그때엔 또 이십오 전에 두어 두림씩 해서 나와 같이 이 물선을 좋아하는 H한테도 보내어야겠다.
─ 백 석, <가재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