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만식, <애저찜>
채만식은 근대 우리 문학에 있어서 풍자 문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그의 글은 재미있다. 이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등장인물을 풍자함으로써 타락한’사회 현실을 풍자하는 빼어난 솜씨 때문이다. 그중 압권은 단연 그의 대표작인 《태평천하》이다.
구한말과 개화기, 일제 강점기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 만석꾼으로 신분 상승을 한 윤두수 일가 4대의 이야기를 그린 《태평천하》는 주인공 윤두수가 탐욕스럽게 자기 욕심만 채우며 가족의 부귀영화만을 꾀하는 모습을 우리 민족의 현실에 빗대어 비판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다.
오로지 자신의 욕망과 가족의 영화만을 생각하는 윤두수에게 일본 제국주의는 튼실한 보호자이자 든든한 방패막이다. 당연히 그는 일제 강점기야말로 ‘태평천하’라며 고마워한다. 당시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만, 채만식은 그들의 모습을 통해 시대와 그 시대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비판하고 풍자하고자 했다.
부유한 농촌 지주였던 아버지 덕분에 한때 서울과 도쿄에서 유학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는 집안 몰락 후 학업을 중단한 채 생계를 위해서 여기저기서 잠깐씩 일하며 수많은 작품을 쓴다. 문제는 그가 한때 친일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비록 해방 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했지만, 이는 그의 삶에 있어서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되고 말았다.
“남들은 나를 친일한 사람이라고 외면하고 손가락 짓을 하는 것을 보고 지금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 켜 말한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겨운 가난과 싸우며 처자식의 생계를 위해, 쌀 한 줌을 얻기 위해 친일의 노예가 되어 추악하고 더러운 짓을 한 민족의 죄인이다.”
─ 채만식, <민족의 죄인> 중에서
전문가들에 의하면, 우리 문학사에서 친일작품을 집필한 작가 중 친일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한 이는 그가 유일하다고 한다.
항상 감색 상의에 회색 바지를 단정히 입고 모자까지 쓰고 다녀서 ‘불란서(프랑스) 백작’으로 불렸던 채만식은 결벽증이 심해서 다른 집에 식사를 얻어먹으러 갈 때면 자신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따로 챙겼을 정도였다고 한다. 작품을 쓸 때도 원고지 매수를 항상 확인해서 담당 기자가 엄청 힘들어 했을 만큼 까다로웠다.
채만식이 1940년 《박문》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작품 중 수필 <애저찜>이 있다. 애저찜은 채만식의 고향인 전라북도의 10미 중 하나로 꼽히는 별미로 새끼 돼지를 푹 고아낸 보양식이다.
그는 광주에 갔다가 우연히 애저찜을 대접받았는데, 하필 그날 아침 여관집 마당에서 종종거리던 새끼 돼지 두 마리가 계속 눈에 밟혀 제대로 먹지를 못 한다. 영계로 만든 연계찜과 기타 등등을 떠올리며 이보다 잔인한 요리가 많다고 자기 합리화를 해보지만, 또 간밤에 본 애기 기생이 생각난다. 이에 그 어린 기생이 새끼 돼지처럼 시달리며 사는 것 아닐까 싶어 채만식은 결국 젓가락을 내려놓고 만다.
겨우 젖이 떨어졌을까 말까 한 도야지 새끼를 속만 긁어내고 통으로 푹신 고아 육개장 하듯이 펴서 국물을 먹는데,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입을 대기는 비로소 처음이고, 처음이라 그런지 좀 애색(마음이 애처롭고 안타까움)했다. 하기야 연계(軟鷄, ‘영계’의 원말)찜을 먹는 일을 생각하면 도야지 새끼를 통으로 삶아 먹는다고 별반 애색할 것은 없는 노릇이다. 또, 우리가 일상에서 흔연히 감식(甘食, 맛있게 먹음)하는 계란이며, 우유며, 어란(魚卵, 생선 알)이며, 하는 것도 다 따지고 보면 천하 잔인스런 짓이다. 하필 애저찜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원숭이를 꽁꽁 묶어 불에 달군 가마솥 위에 달아 매놓고는 줄을 누꿔(‘늦추다’의 경기도 사투리) 발바닥을 지지고 지지고 한다 치면 요놈이 약이 있는 대로 죄다 머리로 오른다든지 할 때에 청룡도로 목을 뎅겅 잘라가지고는 골을 뽑아 지져 먹는다는 원뇌탕(猿腦湯)이란 것에 비하면 애저찜쯤은 오히려 부처님의 요리라고 할 것이다.
… (중략) …
맛은 그러나 일종 별미에 속한다고 할 수가 있고, 그중에도 술안주로는 썩 되었고, 다만 너무 기름진 게 나 같은 체질에는 맞지 않을 성불렀다.
… (중략) …
아무튼, 다시 보장하거니와 술안주로는 천하일품이니, 일찍이 맛보지 못한 문단 주호(酒豪, 술을 잘 마시는 사람)는 모름지기 전남으로 한바탕 애저찜 원정을 가볼 것이다.
─ 채만식, <애저찜> 중에서
※ 위 글에 나오는 채만식의 <애저찜>은 다음 도서를 참조했습니다.
─ <녀름입니다, 녀름/ 루이앤휴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