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준, <달래>
“좀 더 기다려 보자구. 원래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들은 비난받기 마련 아닌가.”
… (중략) …
달래의 그 아릿한 향기 속에는 나의 아득한 소년기의 향수가 담겨 있다. 저 북녘 웅기만의 해안 지대는 눈만 녹으면 푸석푸석하는 모새(모래)땅이 숱한 달래로 깔려진다. 긴 겨울 동안 정지(부엌)에 갇혀 ‘수수알’만 삶으면서 옛날이야기나 들어야 했던 아가씨들은 눈 녹기를 기다려 바구니와 비녀처럼 생긴 나무꼬챙이를 들고 달래를 캐러 나서는 것이 첫 봄나들이였다.
멧새가 나는 밭이랑에서 새파란 달래 싹을 찾는 재미, 달래에만 정신이 팔려 열 이랑, 스무 이랑 넘는 줄도 모르고 달아만 나다 겨우내 보지 못했던 이웃 마을 아이들과 마주치는 재미, 머리를 땋아 늘인 것이 제법 치렁거리는 아가씨들은 할머니의 고담(古談, 옛날이야기)보다는 훨씬 더 상기되는 남의 집 총각 이야기에 꽃이 피기도 이런 때였으리라.
… (중략) …
달래는 맛도 좋다. 된장에 지녀도 향기롭고, 무채에 무치거나 김치를 담가도 별미다. 그때 서당에 들어서면 훈장님의 담배 연기보다도 여러 아이 입에서 나오는 달래 냄새가 훅 끼치곤 하던 것이 생각난다.
차진 지장밥(기장밥, 멥쌀에 기장 쌀을 섞어 지은 밥)에 누렇게 뜬 달래 김치는 봄 타는 입에 약보다 나은 것이건만─
─ 이태준, <달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