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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테호른 Jun 29. 2020

시인 노천명의 잃어버린 고향의 맛 ‘참외’

─ 노천명, <원두막>





◆  ‘사슴’의 시인 노천명, 친일과 6·25 부역 등으로 오명 남겨


흔히 ‘사슴’의 시인으로 불리는 노천명은 여성시인의 불모지였던 1930년대 우리 시단에 모더니즘 경향을 지니면서도 고향(황해도 장연)의 고유어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정서의 시를 발표하며 사실상 현대 한국 여성시의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일제 말기 친일시 파문과 6·25 당시의 부역 혐의로 6개월간의 감옥생활을 하는 등의 전력으로 인해 마흔여섯에 재생불능성 빈혈로 거리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천명(天命)’이란 이름은 여섯 살 때 심하게 홍역을 앓고 죽었다 살아나 얻은 것이라고 한다. 


흰 저고리를 즐겨 입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던 그녀는 ‘사슴’의 시인이었다. 사슴은 곧 그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 노천명, <사슴> 중에서


그녀는 고독을 사랑한 시인이기도 했다. 이에 그녀의 글에는 애수와 고독이 흥건히 스며있다. 


변변치 못한 화를 받던 날
어린애처럼 울고 나서
고독을 사랑하는 버릇을 지었습니다. 
번잡이 이처럼 싱그러울 때
고독은 단 하나의 친구라 할까요.

─ 노천명, <고독> 중에서 



▲ 노천명과 그녀의 작품집. 왼쪽부터 시집 《산호림》, 《별을 쳐다보며》, 《사슴의 노래》. (한국현대문학관 사진 제공)



◆  노천명의 삶을 관통했던 고독고향과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작품이 많은 이유 


1911년  황해도 장연의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노천명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누구보다도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글에 어린 시절에 관한 추억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여덟 살이던 1918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죽은 후 그녀의 가족은 서울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 후 진명여자고보에 진학한 노천명은 학업 성적이 우수했을 뿐만 아니라 육상 선수로도 활약할 만큼 운동에도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얼마가지 못했다. 이화여전에 입학할 즈음, 어머니가 죽고, 하나뿐인 언니와 형부마저 직장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가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그녀는 오롯이 혼자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녀의 삶을 관통한 고독 역시 거기서 비롯되었다. 


고독을 이기기 위해 그녀는 글쓰기에 몰두하며, 작가의 삶을 꿈꾼다. 그리고 이화여전을 졸업하던 해인 1934년 《조선중앙일보》학예부 기자로 입사하며, 이듬해 창간된 시원(詩苑)》에 <내 청춘(靑春)의 배는>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하며 작가의 꿈을 이룬다. 그로부터 3년 후에는  첫 시집《산호림(珊瑚林)》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녀는 평생 독신이었다. 보성전문학교 교수와 불꽃 같은 사랑을 하기도 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에게 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고독은 질긴 끈과도 같았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작품을 보면 고향과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작품이 유독 많다. 사람을 그리워했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던 시절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1949년 7월에 쓴 수필  <원두막> 역시 어린 시절에 관한 추억과 향수를 담은 작품이다. 여름날 달큰한 냄새를 풍기는 참외밭과 원두막을 본 그녀는 고향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깊은 향수에 잠긴다. 하지만 곧 원두막지기 노인의 “먹는 걱정이 그게 작은 걱정이 아니죠”라는 말에 현실로 돌아온다. 사실 촌부의 그 말은 우리 모두의 삶을 관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 (중략) …

뭐니 뭐니 해도 참외는 백사과(노르스름한 빛이 도는 흰 참외)가 그만이다. 

잘 익은 것은 벌써 칼을 댈 때부터 다르다. 유달리 고운 속을 한 잘 익은 백사과는 과장이 아니라 정말 입에서 슬슬 녹는다. 노랑참외, 개구리참외, 별종참외(감참외), 가지참외, 청참외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달리 사치스러운 맛을 제쳐놓고 그냥 먹은 듯싶고 시원한 것은 까맣게 익은 청참외가 최고다. 또 이 없는 할머니들이 숟가락으로 긁어 잡숫기에는 가지참외만 한 것이 없다. 노란 면에 파란 줄이 쭉쭉 간 그 빛깔 하며, 유난히 부드러워 보이는 촉감하며, 나는 어려서부터 집에 참외 선물이 들어오면 다른 것은 다 제쳐놓고 길쭉하고 예쁜 가지참외와 배꼽참외만 골라내서 번갈아 업고 다녔다.

그런데 웬일인지, 서울에서는 가지참외를 볼 수 없었다.

 … (중략) … 

가게에서 며칠씩 시들다 곯아서 익은 참외나 먹다가 이렇게 갓 따온 싱싱한 참외를 원두막에 앉아서 먹는 맛이 썩 괜찮다. 바쁜 도시 생활에 부대끼고, 정신없이 지내는 데 비해 농촌에서 이렇게 지내는 것도 퍽 좋을 듯해 노인을 향해 무심코 이런 말을 내뱉고 말았다. 

“여기서는 먹는 걱정 외에는 별걱정이 없어서 좋겠군요.”

“먹는 걱정이 그게 작은 걱정이 아니죠.”

갑자기 노인이 철인(哲人, 학식이 높고 사리에 바른 사람)처럼 보였다. 

─ 노천명, <원두막> 중에서 






※ 위 글에 나오는 노천명의 <원두막>은 다음 도서를 참조했습니다. 

     ─ <녀름입니다, 녀름/ 루이앤휴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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