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용, <봄을 기다리는 맘>
혹시 ‘김상용’이란 이름이 낯설다면 다음 시는 어떨까.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남으로 창을 내겠소> 라는 시다. 이 시의 저자가 바로 월파 김상용이다. 자연과 함께하고자 하는 그의 소박한 바람이 잘 드러난 이 시는 전체적으로 쉬운 시어를 사용해 전원생활을 표현하면서도 달관한 인생관을 간접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남(南)’이라는 밝고 건강한 이미지와 함께 잘 나타나 있는 이 시는 시인의 개인적인 소망으로도 볼 수 있지만, 1930년대의 시대적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시인 김현승은 <한국 현대시 해설>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창을 남쪽으로 내겠다는 제목부터가 생활의 건강하고 낙천적인 면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에 대한 굳은 신념을 나타내면서도, 역설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제2연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해학과 더불어 매우 시다운 표현을 하고 있다. 이 점이 이 시의 특별한 매력이다. 마지막 연은 의미의 함축성과 표현의 간결성 및 탄력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 도회 생활의 공허한 삶은 생각지도 않고 무슨 재미로 전원에 파묻혀 사느냐고 질문하는 친구에게 만족한 대답을 주려면 한 권의 책을 써도 모자랄지 모른다. 그것을 시는 ‘웃지요’라는 단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다. 얼마나 복잡하고 많은 회의, 번민, 사색, 해답, 결심이 하나로 압축된 자신의 생활관을 실증하는 웃음인지 모른다.”
김상용은 일본 릿쿄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모교인 보성고와 연희전문학교, 이화여자전문학교 등에서 영문학을 강의했다. 놀라운 것은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미 군정에 의해 강원도지사로 임명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며칠 만에 사임하고 다시 학교로 복귀했다.
김상용의 작품 중 <무하록>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의 또 다른 별칭인 ‘무하(無何)’에서 따온 것으로 1938년 8월 19일부터 8월 25일까지 6일에 걸쳐 총 6가지의 이야기를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가난한 서민들의 이야기로 읽는 사람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일례로, 며칠을 굶은 가난한 부모가 아이와 함께 식당을 찾아 설렁탕을 한 그릇만 시킨 후 자신은 속이 좋지 않다며 담배만 피우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의 연재소설 《무하선생 방랑기》에는 ‘동대문 밖 추탕’이 등장하기도 한다(《동아일보》 1934년 11월 16일). 지금도 남아 있는 서울의 추어탕 전문점들도 이 무렵 문을 열었다.
‘명월관 식 교자’인 신선로가 등장하는 <봄을 기다리는 맘> 역시 1935년 2월 23일 자 《동아일보》에 싣은 작품이다. 그는 역시 진미로 가득찬 음식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무엇을 먼저 먹을지 고민에 빠진다. 누구라도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이 눈앞에 가득 있으면 그런 고민에 빠질 것이다. 그러니 그런 고민쯤은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다만, 맛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내 봄은 명월관 교자 먹기일세. 가령 날이 저물고, 아침밥 기억은 오래된 역사의 한 페이지요, 호주머니 열일곱이 독촉장, 광고지, 먼지 부스러기의 피난처밖에 못 되고, 돈냥 있는 아는 놈은 일부러 피해 갈 때 마침 명월관 앞을 지나면, 이때 마비돼가는 뇌신경이 현기에 가까운 상상의 반역을 진압할 수가 있겠는가? 없을걸세. 두어 고팽이 ‘복도’를 지나 으슥한 뒷방으로 들어서거든, 썩 들어서자 첫눈에 뜨인 것이 신선로. 신선로에선 김이 무엿무엿 나는데, 신선로를 둘러 접시, 쟁반, 탕기 등 크고 작은 그릇들이 각기 진미를 받들고 옹위해 선 것이 아니라, 앉았단 말일세. 이것은 소위 교자라. 에헴, ‘안석’을 등지고 ‘베개’를 외고, 무엇을 먹을고 우선 총검열을 하겄다.”
─ 김상용, <봄을 기다리는 맘>
위 글에 나오는 월파 김상용의 이야기는 다음 도서를 참조했습니다.
─ <녀름입니다, 녀름/ 루이앤휴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