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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테호른 Jun 27. 2020

입 짧은 이효석의 입맛을 사로잡은 평양 별미

─ 이효석, <유경식보>

 



◆ 커피를 남달리 사랑했던 ‘모던보이’ 이효석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멋들어진 구절이다.


〈메밀꽃 필 무렵〉을 쓴 이효석은 로맨티시스트이자 연애지상주의였다. 스물네 살 때 여섯 살 연하의 미술 교사 이경원과 결혼한 그는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만큼 낭만적이고,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940년, 평양에 살던 그는 부인과 차남을 한꺼번에 잃는 불운을 겪는다. 당시 그가 소설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장덕조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충격과 슬픔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언제나 사람이 죄악에서 구원될까 ─ 가 아니라 고독에서 구원될까 ─ 하는 것이 제게는 하나의 종교적인 초려(焦慮)가 됩니다. 참으로 쓸쓸해서 못 견디겠습니다.”


소설가 김동리는 이효석을 일컬어 ‘소설을 배반한 소설가’라고 했다. 그만큼 그의 문장은 서정성이 넘치며 아름답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런 작품을 썼던 것은 아니다.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한 그는 진보적 문화예술단체인 ‘카프(KAPF,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로부터 ‘동반자 작가’로 불리었다. ‘동반자 작가’란 ‘카프’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더라도 그 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작가들을 말한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타고났던 그는 서서히 심미주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 계기가 된 작품이 바로〈북국사신〉이다. 〈북국사신〉을 계기로 그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구인회에 가입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서정미 넘치는 일련의 작품들이 비로소 탄생한다.      



▲ 젊은 시절의 이효석. 한때 그는 부인의 고향인 함경북도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평양의 자랑은 국수가 아니라 만두가 되어야 한다”라고 한 이유 


이효석은 ‘모던보이’였다. 빵과 버터를 즐겨 먹었고, 커피를 남달리 사랑했다. 쇼팽과 모차르트의 피아노곡 연주를 좋아했고, 서양 영화 감상을 즐겼다. 또한, 코피를 쏟아가며 글을 쓰면서도 겨울에 스키를 타러 갈 계획을 세웠는가 하면, 원두커피 한 잔을 즐기기 위해 10리 길을 걸어 다방에 가고, 재직하던 학교 교무실 한쪽 구석에서 베토벤에 심취하기도 했다. 또한, 밤이면 위스키를 마시며 클래식 기타를 연주했고, 기르던 고양이가 죽은 날에는 눈물을 흘리며 고양이의 영혼을 위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빼어난 능력과 작품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의 그의 삶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아내와 차남을 잃은 후 실의에 빠져 건강을 해친 끝에 뇌척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늘 병약했다. 그래서 바다를 자주 찾았고, 강렬한 태양과 파도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바다를 사랑했다. 그의 작품에 바다에 관한 글이 유독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1939년 6월, 문학잡지《여성》에 발표한 <유경식보>는 평양에서 4년을 살면서 느낀 평양 음식에 관해 쓴 글이다. 여기서 평양의 자랑은 국수가 아니라 만두가 되어야 한다며, 평양냉면에 대해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김치와 어죽만큼은 별미라며 극찬하기도 했다.




평양에 온 지 사 년이 되었으나 자별하게(남다르고 특별함) 기억에 남는 음식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생활의 전반 규모에 그 무슨 전통의 아름다움이 있으려니 해서 몹시 눈을 살피나 종시(終是, 끝내) 그런 것이 찾아지지 않습니다.

… (중략) …

평양의 자랑은 국수가 아니고 만두여야 할 것 같습니다. 또 한 친구는 이른 봄에 여러 번이나 간장병과 떡 주발(놋쇠로 만든 밥그릇), 김치 그릇을 날라다 주었는데, 그 김치 맛이 참으로 일미(一味, 첫째가는 좋은 맛)여서 어느 때나 구미가 돌지 않을 때면 번번이 생각나곤 합니다. 봄이건만 까딱 변하지 않는 김치의 맛, 시원한 그 맛은 재찬삼미(再讚三味, 두 번 칭찬하고 세 번 맛볼 만큼 맛있음)해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대체로 평양의 김치는 두 가지 격식이 있어 고추 양념을 진하게 하는 것과 엷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거의 소금만으로 절여서 동치미같이 희고 깨끗하고 시원한 것, 이것이 그 일미의 김치인데, 한 해(어느 해) 겨울 몇 사람의 친구와 함께 휩쓸려 밤늦도록 타령을 하다가 곤드레만드레 취한 김에 밤늦게 그 친구 집을 습격해서 처음 맛본 것이 바로 그 김치였습니다. 다해서 두 칸밖에 안 되는 방에 각각 부인과 일가 아이들이 누워 있었던 까닭에 친구는 방으로 우리를 끌어들이지 못하고 대문 옆 노대(露臺, 지붕이 없이 판자만 깔아서 만든 자리)에 벌벌 떠는 우리를 앉히고 부인을 깨워 일으키더니 대접한다는 것이 찬 김치에 만 밥, 소위 짠지밥 ─ 김치와 짠지는 다르지만, 평양에서는 일률로 짠지라고 일컫습니다 ─ 이었습니다. 겨울에 되레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더니 찬 하늘 아래에서 벌벌 떨면서 먹은 김치의 맛은 취중의 행사였다고는 해도 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 (중략) …

어죽 또한 으뜸입니다. ‘물고기 죽’이란 말이지만, 실상은 물고기보다도 닭고기가 주재료가 되는 듯합니다. 닭과 물고기로 쑨 흰죽을 고추장에 버무려 먹습니다. 여름 한 철의 진미로서 아마도 천렵의 풍습의 유물로 끼쳐진 것인 모양입니다. 제철에 들어가 강 놀이가 시작되면 반월도(半月島, 평양 대동강가에 있는 섬)를 중심으로 섬과 배 위에 어죽 놀이의 패가 군데군데에 벌어집니다. 물속에서 첨벙거리다가 나와 피곤한 판에 먹는 죽의 맛이란 결코 소홀히 볼 것이 아닙니다. 동해안 바닷가에서 홍합죽이라는 것을 먹은 적이 있는데 그 조개로 쑨 죽과 맛이 흡사합니다. 피곤함을 덜어주는 것이 구미(口味, 입맛) 없는 여름 음식으로는 이 죽들이 확실히 공이 큰듯합니다.

─ 이효석, <유경 식보> 중에서




※ 유경 ─ 평양의 다른 이름

※ 식보(食補) ─ 좋은 음식을 먹어서 원기를 보충함




※ 위 글에 나오는 이효석의 <유경식보>는 다음 도서를 참조했습니다.

    <녀름입니다, 녀름/ 루이앤휴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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