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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ger Ly Nov 01. 2020

타밀 라이스 (12)

2014.11.22

"Here is what I would like for you to know:

In America, it is traditional to destroy the black body -it is heritage."

-Ta-Nehisi Coates





2014년 11월 22일.

오하이오 주 클리브랜드.


내 이름은 타미르. 나는 12살이다. 나는 엄마와 누나와 형이랑 같이 산다. 내가 좋아하는 건 축구, 농구, 수영, 미술, 만들기. 특히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학교 끝나고 미술 수업을 들으러 학교 뒤에 있는 리크레이션 센터에 간다. 그곳에서 그림도 그리고 도자기도 만들고 코바늘 뜨개질도 한다. 저번에는 자수를 놓아서 엄마에게 선물해 주었다. 사람들을 말한다. 내가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맞는 말이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인데 키가 1미터 70센티미터나 되고 몸무게는 거의 90킬로그램이다. 나보다 더 큰 형아들도 운동에서 이길 때도 있다. 내가 봐도 나는 12살 같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난 12살이 맞고 내 이름이 타밀 라이스라는 건 바뀌지 않는다.


나에겐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뛰어난 청각이다. 내 귀는 정말 대단하다. 저 멀리에서 어떤 사람이 전화를 하고 있으면 난 그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고 그 사람과 통화하는 전화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나는 신이 나에게 선물을 주신 건지, 벌을 주신 건지 모르겠다. 가끔 듣고 싶지 않은 게 들리거나 곤충이 날아가는 작은 소리도 너무 잘 들려서 귀를 뽑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 비밀은 엄마나 누나한테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엄마에겐 이미 신경 써야 할 많은 문제가 있고 나까지 엄마한테 문제가 되면 안 되니까. 누나는, 나의 수호천사 같은 우리 누나는 엄마랑 친하기 때문에 누나한테도 비밀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 엄청난 비밀은 나 혼자 내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사실 오늘은 토요일이고 정말 신나는 일이 있는 날이다. 학교 뒤 공원 정자에서 만나서 놀기로 한 친구가 콜트 M1911 모형 총을 갖고 나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비비탄이 나오는 에어 소프트 45 칼리버 권총이다. 내가 엄마 휴대폰을 빌려주면 친구는 나에게 총을 갖고 놀게 해준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총을 갖고 노는 걸 싫어하신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총을 갖고 있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장난감 총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오늘 친구가 갖고 나오는 진짜 "진짜" 같은 총은 더더욱 만져본 적도 없다. 엄마 몰래 잠깐만 갖고 노는 건 괜찮겠지? 정말 기대된다.


나는 엄마 옷장 서랍에서 엄마 휴대폰을 몰래 가지고 나왔다. 친구가 형사처럼 재킷에서 총을 꺼내서 입으로 피-융 피-융 소리를 내며 나에게 걸어왔다. 장난감 총은 원래 총구 끝부분이 오렌지색으로 되어있어야 하는데 친구 총은 진짜처럼 검은색이다. 친구가 오렌지색 안전 팁을 한 번 뺐다가 다시 낄 수 없어서 그대로 뒀다고 했다. 오렌지 팁이 없으니 더 진짜 같아서 나는 더 좋았다. 친구는 우리 엄마 휴대폰을 어떤 가게에 가져가서 잠금장치를 풀어갖고 온다고 했다. 친구는 진짜 총처럼 보여서 의심받을 수 있으니 가지고 놀 때 조심하라는 말을 하며 내게 총을 건네주고 사라졌다.


정말 근사하다. 총의 그립이 부드럽게 내 손안에 감기듯 들어와 손바닥 안쪽에 안착한다. 검지를 방아쇠에 갖다 대니 차가운 메탈의 느낌이 손가락 끝에 짜릿하게 느껴진다. 나는 경찰관도 되었다가 형사도 되었다가 정의를 위해 싸우는 고독한 크리미널도 되어본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도로 쪽으로 내려와, 바지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총 쏘는 시늉을 해본다. 사람들의 깜짝깜짝 놀라는 표정이 정말 재밌다. 팔을 쭉 뻗어 피-융 하고 한 방을 쏜 다음 장전하는 기분, 왼손 손바닥에 탄창을 탁-하고 내리치는 기분, 보이지 않게 숨겨놨던 총을 갑자기 꺼내 들어 세상에 내보이면 나 역시 총과 함께 세상에 짠-하고 멋지게 튀어나오는 듯한 기분. 이 각기 다른 기분들은 뭐랄까, 하나같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만 같았다. 총은 보잘것없는 나를 대단하게 만들어줬다. 총은 나의 약한 모습을 감춰주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묘하고 미스터리한 물건이 내 손안에 있었다.


나는 총에 온 신경을 쏟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내 귀는 내 마음과 상관없이 어떤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니 아저씨는 내가 아까 있던 정자에 앉아있다. 아저씨는 911에 신고를 해서 통화를 하고 있다. 왜 911에 신고를 하고 있지? 혹시 내가 진짜 총을 들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무슨 일이십니까?"

"아, 제가 지금 웨스트 블러바드 고속철 환승역 공원에 앉아있는데요, 여기 총을 들고 있는 남자가 있어요. 아마도 가짜 총인 것 같아요. 근데 이 남자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자꾸 총을 겨눕니다. 바지에서 꺼냈다가 집어넣었다가 하면서 자꾸 총을 쏘려고 하는데, 가짜 총인 것 같긴 한데, 어쨌든 너무 무서워요."

"지금 그 남자는 뭘 하고 있나요?"

"지금은 그네에 앉아있는데, 여전히 계속 바지에서 총을 꺼냈다가 집어넣었다가 하면서 사람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어요. 아마도 청소년, 어린아이 같긴 한데.. 그래도.."

"아는 사람인가요?"

"아니요. 모르는 사람이에요. 근데 자꾸 바지에서 꺼냈다가 집어넣었다가 그러고 있어요. 총이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전 지금 가봐야 하는데 어쨌든 이 공원에 저 사람이 있어요."

"알겠습니다. 경찰을 보내겠습니다."


곧 경찰이 올 거라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아저씨가 자리를 뜨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다시 정자로 가서 친구를 기다렸다. 엄마가 알면 나를 혼낼 것이 뻔했다. 가짜 총이니까 경찰한테 잡혀가지는 않겠지만 내가 총을 가지고 논 걸 엄마가 아시면 나는 오늘 저녁밥을 얻어먹지 못할 수도 있다. 주말 외출도 금지될 것이다. 빨리 총을 돌려주고 집에 가야 한다. 어서 친구가 왔으면 좋겠다.


경찰차 한 대가 저기서 달려온다. 친구는 어디 있는 거지? 경찰 아저씨가 911 구급 대원과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 웨스트 블러바드 공원에 거의 도착해갑니다. 용의자 확인 다시 한번 부탁합니다."

"네, 군복 문양의 모자를 쓴 흑인 남자입니다. 회색 재킷에 검은색 소매 옷을 입고 있고요. 총을 계속 꺼냈다가 집어넣었다가 하면서 사람을 겨냥하고 있답니다."

"알겠습니다."


경찰차가 달려오면서 보조석에 앉은 경찰 아저씨가 열린 창문으로 나를 향해 소리쳤다. "네 손을 보여줘!" 나는 일어서 있다가 가짜 총이란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 911에 신고한 아저씨가 내 총은 가짜일 거라고 얘기했으니 경찰 아저씨도 알고 있을 거였다. 경찰차가 내 앞에서 멈춰 서기가 무섭게 차 문이 열리면서 “탕 탕” 하는 소리가 내 귀에 폭발음처럼 들렸다. 뭐지?


갑자기 배가 아팠다.


내 배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내가 엄마에게 만들어준 꽃 모양 자수처럼, 내 옷에 꽃처럼 빨갛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내가 왜? 문득 911 구급 대원이 경찰에게 모든 것을 전달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가짜 총일지도 모른다는 것, 내가 청소년으로 보인다는 것. 그 구급 대원 누나는 이 두 가지를 경찰에게 말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911 누나가 그 두 가지만 전달해 줬어도 나는 살 수 있었을 텐데. 아저씨는 왜 911에 신고하셨을까. 아저씨가 나에게 총을 갖고 놀지 말라고 한마디만 해주셨다면 나는 아저씨 말씀을 잘 들었을 텐데. 나는 엄마 말을 왜 안 들었을까. 엄마 말을 들었다면 난 살 수 있었을 텐데.


경찰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총 발사, 총 발사. 남자 한 명 쓰러졌습니다. 20대로 보이는 흑인 남자. 그리고 검은색 권총, 아, 검은색 소총 한 자루 보입니다. 어서 구급차 보내주십시오."


저기 멀리서  뛰어오는 우리 누나 발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내 이름을 부르는 누나의 목소리도 들린다.

"밀! 밀!”






2014 11 22 토요일 오후 3:30, 오하이오  클리브랜드  공원에서 초등학생 타미르 라이스 (12) 장난감 총을 갖고 놀다가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911 신고자가 가짜 총인  같다는 것과 어린아이라는 것을 말했음에도 구급 대원은 이를 경찰에게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찰 티모씨 로맨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확인도 하지 않은  차에서 내리면서 동시에 라이스를 향해 총을 쐈다. 로맨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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