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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ger Ly Nov 01. 2020

조던 데이비스 (17)

2012.11.23

"Darkness cannot drive out darkness;

only light can do that. Hate cannot drive out hate;

only love can do that."

-Martin Luther King, Jr.



2012년 11월 23일. 

플로리다 주 잭슨빌.


"토미, 토미. 괜찮니?"

토미가 눈을 뜬다. 대화를 시작하고 벌써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다. 이 아이는 그의 이름을 들으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지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정신을 잃는다. 그의 이름. 내 아들. 조던 데이비스. 이 아이가 그때의 기억,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운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의식을 놓아버리는 것은 일종의 살기 위한 발버둥이 아닌가. 이 아이는 살고 싶어 한다. 


이 아이는 살아야 한다. 


나는 토미 옆으로 가서 앉는다. 토미는 차마 내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난 이 아이에게 슬픔의 무게 같은 건 잴 필요가 없다고 말해준다. 너의 슬픔과 나의 슬픔, 친구를 잃은 슬픔과 자식을 잃은 슬픔의 깊음을 비교할 필요가 있을까. 너와 나, 우린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애도하는 중이다. 그것뿐이다. 


나는 토미의 옆얼굴을 바라본다. 17세 내 아들 조던처럼 이 아이의 얼굴도 앳되고 사랑스럽다. 평생 내가 안고 가야 하는 기억, 이 아이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아이 덕분에 덜 외롭다는 걸 이 아이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조던의 마지막을 함께 해준 이 아이. 조던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이 아이. 나도 이 아이가 외롭지 않게 그 아픈 기억의 길을 함께 걸어가 주고 싶다. 우리 같이 걸어가 보자. 그게 어디든. 


"토미, 힘들겠지만, 아줌마한테 얘기해줄 수 있니? 그날,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던이 어떻게 떠났는지."

토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너의 의식보다 너의 몸이 먼저 반응할 정도로 그 기억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지 알면서 조던에 대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해줘, 토미.


"아줌마."

"그래, 토미. 아줌마가 들을게.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모두 다 얘기해도 괜찮아. 아줌마가 무엇이든 다 들을게. 다 들어줄게."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는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조던에 대한 것이라면 그것이 날카로운 칼이든 뾰족한 창이든 나는 기꺼이 맞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아줌마. 조던은 너무 허무하게 갔어요. 너무도 허무하게. 저는 화가 나요. 왜 조던이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가요. 이해하고 싶지 않아요. 용서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속이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워져요. 숨이 안 쉬어져요. 무서워요"

"토미. 아줌마가 여기 있어. 무서워하지 마. 조던도 토미를 지켜주고 있어. 알지, 토미?"

토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린다. 이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가슴이 아려온다. 하지만 나는 이 아이가 그 기억을 마주해야만, 이 아픈 과정을 거쳐야만, 그 기억에 잠식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조던, 아니 토미. 천천히, 천천히 기억해보자. 서두르지 말고. 힘들면 멈춰도 돼. 나중에 토미가 할 수 있을 때 다시 이어가면 되니까. 알았지? 그날 그 남자 기억나지? 너네가 주유소에 있었을 때 그 옆에 주차하고 있던 그 남자 말이야. 그 남자 본 것부터 아줌마한테 얘기해줄 수 있어?"


토미는 숨을 크게 한 번 내쉬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추수감사절이 시작되는 금요일이었고 그날 조던은 친구들 세 명과 함께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껌과 담배를 사러 주유소에 들렸었다. 아직 어른도 아니지만 어린아이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 17세. 온갖 싱그러운 유혹이 주위에 무성하지만 어느 것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그런 나이였다. 어른이 채 안된 아이들에게 자동차는 유일하게 자유가 허락되는 공간이었다. 클럽처럼 음악을 크게 틀어도 부모의 잔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런 공간. 친구들과 왁자지껄 농담 따먹기를 하고 욕을 하고 수다를 떨며 놀아도 아무도 핀잔주지 않는 그런 공간, 몰래 담배를 피우고 껌을 씹고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 그런 공간. 그런 공간이 그들에겐 자동차였다. 그런데 그 공간이 주던 자유가 그날 한순간에 파괴되었다. 자유가 파괴되던 그 순간 조던도 함께 파괴되었다. 


"제가 운전을 했고 테빈이 보조석에 앉았고, 보조석 뒤에는 조던이 앉았고 그 옆은 리랜드가 앉았어요. 제가 주유소 가게 안으로 껌이랑 담배를 사러 들어갔었어요, 그 남자랑 시비가 붙은 건 제가 주유소 가게로 들어간 다음부터에요. 친구들과 경찰한테 대충 상황을 전해 들었지만, 전 여전히 왜 그 남자가 총을 쐈는지 이해가 안돼요. 조던이 뭘 그렇게 크게 잘못한 건가요."


"그래, 토미. 아줌마도 그렇게 생각해.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애들 음악소리가 너무 크다고 총을 쏠 수가 있어. 너희들을 죽이려고 완전히 작정한 사람처럼.'

내 속에서 갑자기 분노가 일었다. 조던을 생각할 때마다 그 남자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를 죽인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조던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냉정하게 논리적으로 법적으로 그 남자를 파괴하고 싶었다.


"처음에 그 남자는 조던과 애들한테 정중하게 음악 소리를 낮춰달라고 부탁했대요. 그래서 테빈이 음악 소리를 낮췄는데, 조던이 다시 소리를 높였대요. 그러면서 그 남자에게 버릇없게 대들었나 봐요. 조던은 그런 아이였잖아요. 거칠긴 하지만 할 말은 하는. 그래서 그 남자는 자기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대요. 그때 제가 주유소 가게에서 나와 아무것도 모른 채 운전석에 타서 아이들이랑 이야기하다가 힐끗 옆 차를 봤는데 창문이 내려가더라고요. 그리고 그 남자의 눈빛이 보였어요. 지금도 그 눈빛은 잊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갑자기 총알이 마구마구 날아왔어요. 저는 전쟁에 나가본 적도 없지만 그 소리가 마치 전쟁터와 같았어요. 폭발음이 굉장했어요. 귀가 한동안 멍멍할 정도로요. 총알이 차 여기저기에 막 날아와서 박혔어요. 저는 어서 거기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그 자리에서 다 같이 죽을 것 같았어요. 저는 후진해서 미친 듯이 액셀을 밟았어요. 우리가 도망가는데도 총알은 우리를 따라오는 것만 같았어요. 제 머리 뒤에서 총알이 날아와 앞유리를 뚫고 지나갔어요. 제가 그 순간 머리를 조금만 움직였어도 저는 죽었을 거예요. 주유소를 빠져나와 근처 플라자 주차장에 차를 급하게 세우고 제가 다들 괜찮냐고 아이들한테 물어봤어요. 조수석에 테빈은 괜찮다고 말했어요. 제 뒷자리에 앉은 리랜드도 총에 맞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옆에 조던이 대답을 안 하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거예요. 조던이, 조던이..."


토미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한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는다. 더 이어가자. 더. 여기서 멈추면 안 돼. 


"그래서, 토미. 조던이 왜? 아줌마는 조던의 마지막을 못 봤잖아. 알고 싶어. 조던이 마지막으로 아줌마한테 한 말이 뭔지 알아? 아줌마한테 추수감사절 잘 보내라는 말이랑 친구들이랑 쇼핑 가서 자기는 너무 행복하다는 말이었어. 아줌마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이 그거였어. 조던이 죽기 전 했던 마지막 말, 마지막 모습. 우리 토미가 아줌마한테 좀 전해줘..."


토미는 숨을 몰아쉬며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조던은, 피범벅이었어요. 다리랑 가슴에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어요. 조던은 숨 쉬기가 버거운지 머리를 뒤쪽으로 젖히고 입을 벌리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어요. 조던의 얼굴이 점점 고통으로 일그러졌어요. 저는 죽어가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그냥 느낌으로 알았어요. 조던이 죽어간다는 것을요. 조던은 곧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어요.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조던의 이름만 외쳤어요. 그리고 조던은 마지막으로 뭔가를 중얼거렸어요. 소리가 너무 작아 들리지가 않았어요. 아마도 조던은..."


토미는 말을 더 이으려다가 눈물을 쏟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 거기까지 하면 됐어. 

"토미, 잘했어, 잘했어. 고마워. 토미는 토미가 힘들어하는 그 기억, 조던에 대한 슬프고 아픈 기억을 아줌마와 함께 걸어가 준 거야. 정말 고맙고, 정말 자랑스러워." 나는 토미를 안아 아이의 등을 쓸어준다. 

토미도 나를 끌어안으며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조던. 네 친구가 이렇게 서럽게 우는구나. 들리니? 엄마가 우리 아들한테 약속할게. 엄마가 토미는 꼭 지켜내겠다고. 


토미가 갑자기 내 어깨에 축 늘어진다. 토미가 아니, 조던이 나를 부른다.


"엄마."




나는 이 아이가 그만 그 사납고 성난 폭풍우 같던 기억의 문을 닫고 새로운 문을 활짝 열고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나 또한 새로운 문을 열고 새로운 길을 걸어갈 것이다. 조던을 위해, 토미를 위해, 조던의 친구들을 위해. 조던과 같은 힘없는 아이들을 위해.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총에 맞아 죽는 일이 없도록, 엄마는 싸울게, 조던. 






2012년 11월 23일, 플로리다 주 잭슨빌의 한 주유소에서 마이클 던 (45)이라는 한 백인 남자가 조던 데이비스(17)와 3명의 친구들이 타고 있던 차에서 흘러나오는 '깡패'음악이 시끄럽다며 그들의 차를 향해 총을 발사했고 조던 데이비스가 사망했다. 마이클 던은 글로브 박스에서 총을 꺼내 데이비스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으며, 운전석에 앉아있던 조던의 친구 토미 스톤스가 총을 피해 차를 후진하여 주유소에서 빠져나가려고 하자 자신의 차에서 내려 빠져나가는 차를 향해 총을 여러 차례 발사했다. 다리, 폐 대동맥에 총상을 입은 조던 데이비스는 결국 숨졌다. 


주유소 가게에 들어가서 와인과 스낵을 사고 있던 여자 친구가 총성을 듣고 급히 밖으로 나오자 마이클 던스는 여자 친구를 태우고 재빨리 그 자리를 떠났다. 경찰에 알리지 않고 호텔에 가서 피자를 시켜먹고 잠을 잔 후, 그다음 날 아침 10:30 쯤 자신의 별장에서 체포되었다. 마이클 던은 조던 데이비스가 먼저 총을 꺼내 자신을 쏘려고 했다며 플로리다 Stand your ground 법을 따른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여자 친구가 마이클 던으로부터 총에 대해서 들은 말이 없다고 진술함에 따라 마이클 던은 2014년 10월 1일 살인죄로 유죄 선고를 받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살게 되었다. 2016년 11월 17일 마이클 던의 변호사가 항소를 제기했지만 기각되었다. 조던 데이비스가 타고 있던 차에서 어떤 흉기나 총기도 발견되지 않았다. 


조던 데이비스의 어머니 루시 맥베쓰는 2018년 조지아주 6번째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총기규제법을 옹호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후원하는 재단을 설립하는 등 더 안전하고 더 나은 세상에서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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