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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Dec 27. 2016

살아가면서 우리는 그러한 인연을 알아차려야만 한다

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

                  

<당신이 사는 달>(권대웅/ 김영사on/ 2014년)

내게 의외의 기쁨을 주었던 그가 한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우리가 헤어지면 네가 잘 지내는지 어떻게 알 수 있지?" 물었을 때 그가 답했다. "알 수 있을 거야." 그 다짐처럼, 과거의 연인이었던 그는 이따금 나의 꿈에 찾아와 안부를 보여주었고 나는 안도했다.

아직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의 영혼은 이따금 내 꿈에 찾아와 그리운 당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만 울어라. 이제 아프지 않아서 좋다."라고도 하시고, 얼마 전에는 정자에 서 있는 아버지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자 "너, 어디 가냐?"라는 호통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게 하셨다.

한번도 하늘나라가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던 나는 이제 아버지가 있어 그곳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곳엔 아버지 와,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 두 형들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그랬던 것처럼 오순도순 한집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이생에서 한바탕의 불화와 애증을 겪었으니 이제는 다정하게 지내고들 계실 것도 같다.

갈수록 죽음과 이별, 재회의 구분을 모호하게 느낀다. 죽음과 이별이 크게 다르지 않고, 이별과 재회, 죽음과 재회의 사이 역시 멀지 않다. 참으로 서로 사랑했던 우리는 잠시 떨어져 있다 얼마 후면 다시 만날 것이다. 어쩌면 내일일지도 모른다. 권대웅 시인은 <당신이 사는 달>에서 이렇게 말한다.

"종교가 있고 없음을 떠나서, 죽음 너머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확신한다. 육체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았던 삶이, 시간이, 그 많던 기쁨과 슬픔들이 에너지로 이 공간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방울로 빛으로 바람으로, 빛과 빗방울, 눈송이로 와서 서로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에너지들이 살며 오가는 것. 그것이 내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일은 그곳에서 오는 것이다."(190쪽)

더 이상 얼굴을 볼 수 없다 하여,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하여, 더 이상 체취를 맡을 수 없고 체온을 느낄 수 없다 하여 그가 내게서,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고 하지 말자. 우리가 사랑했고 또 함께 살아간 시간과 기쁨과 슬픔은 ‘영원히 모양을 바꾸면서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로 올라가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그처럼 노래했던 것의 정체는 '물'. 비, 우박, 눈송이, 이슬 등의 모양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물은 개천과 강을 따라 바다까지 여행한 후 햇빛을 받아 수증기가 되고, 대기를 떠돌다 구름이 된다. 그리고 다시 앞서의 과정을 순환한다. 그러나 모든 물이 먼 바다까지 나가는 것은 아니라서 어떤 물은 땅속에 스몄다가 풀과 꽃의 갈증을 채우기도 하고, 키 큰 나무의 수맥을 따라 수십 미터를 오르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빗방울이 수증기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으면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

또 호수나 강, 바다의 밑바닥에 가라앉아버린 물도 있는데 이 경우에 하늘로 올라가는 데는 몇 천 년이, 극지방의 얼음 위에 떨어진 눈송이가 하늘로 올라가는 데는 수십만 년이 걸린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기어코 하늘로 올라간다. 우리가 흘린 눈물이 수증기가 되는 데는 얼마가 걸릴까. 그 눈물은 누구와 만날까.

우리가 사랑했고 함께 살아간 시간과 기쁨과 슬픔들이 이 공간에 머무르고 있다. 형체를 달리하며 나타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그러한 인연을 알아차려야 한다. 날마다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지켜보는 집 앞의 나무, 여름 한때 우두커니 서 있다 사라진 해바라기, 우산 없이 흠뻑 맞았던 소나기, 그러다 문득 만난 무지개, 귓가에서 울어대듯 시끄러운 매미들이 왜 내 곁에 왔는지 알아야 한다." (41쪽)

※ 본 연재는 <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유선경/ 샘터/ 2016년)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살아가면서 우리는 그러한 인연을 알아차려야만 한다 ]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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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유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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