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애인에게

by 인터파크 북DB

마지막 섹스가 끝나면 너무나 깊고 명백한 피로와 동시에 평화가 몰려왔다. 그제야 우리는 깊은 숨을 내쉬며 서로를 향해 웃을 수 있었다.


시작과 끝이 명료한 그 시절 나와 그의 세계가,


우리들의 세계가,


발끝까지 내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불과 몇 초 사이인 세계가


나는 정말 좋았다.


보통의 남자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떤 여자는 남자와 자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혼곤한 쾌락 속에서 내 몸의 빈 구멍을 완전히 메워주는 사람을 만날 때래야, 생이 부여한 짙은 어둠을 이기고 사랑 쪽으로, 빛 쪽으로 조금씩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짓눌린 무의식은 절대 언어로 발설될 수도, 규명할 수도 없었다. 처음부터 나는 목까지 채워져 있던 그의 타탄체크 무늬 셔츠를 벗기고 싶었다.


남자에게만 발기할 수 있는 성기가 있는 게 아니다. 여자의 성기도 발기한다. 다만 그것은 커지고 작아지는 원근법의 세계에 속해 있지 않다. 그것은 완벽한 촉각의 세계에 편입되어 있어, 젖거나 말라가는 감촉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눈을 부릅뜨고 무엇이 더 크고 작은 지를 끊임없이 비교해 서열을 세우고 순위를 정하는 남자들의 방식이 아니라, 눈을 감고 나서야 더 깊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여자의 발기는 감상적이며 서정적이다.


"나는 섹스가 게임이란 말이 싫었어."


성주가 내 귀에 속삭였다.


"아니, 난 좋아."


나는 성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섹스는 그냥 게임이야."


그의 엉덩이가 점점 더 단단히 조여지며 깊숙이 들어왔다. 나는 눈을 뜨고 그의 젖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눈이 마주치면, 그는 내 눈꺼풀 위에 입을 맞췄다. 나는 점점 다가오는 그의 이마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넘겼다.


"좋아!"


여자를 바라보며 '좋아?'라고 되묻는 게 아니라, 도취된 얼굴로 자신을 향해 '좋아!'라고 외치는 아시아 남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침묵 속에서 피스톤 운동에만 집중하는 남자들에 익숙했던 나는 그의 낮은 신음과 음탕한 말들이 좋았다. 그가 나를 침대 끝까지 밀어붙일 때마다, 침대 헤드의 포도넝쿨 장식을 울리는 삐꺽대는 소리가 좋았다.


그가 나를 끝이 보이지 않는 저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주길 언제나 바랐다.


모든 게 끝나면 성주는 욕실로 달려가는 대신, 땀에 젖은 내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가 무방비 상태의 나를 보며 가장 환하게 웃을 때가 그때였다. 내가 성주를 끝내 잊지 못한다면, 그건 바로 그 순간에 성주가 보여준 향수로 가득 찬 미소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주는 섹스 이전보다 섹스 이후에 더 다정해지는 연인이었다.


섹스가 끝나면 그는 한결 느긋해진 얼굴로 '후후후' 내 이마에 바람을 불어 주었다. 그것은 결코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한 몸짓이 아니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욕망이 사라진 자리엔 말할 수 없이 따스한 온기와 다정이 깃들었다. 그가 내 몸에 부는 바람은 뜨겁게 달궈진 연인의 몸을 식히기 위한 한 남자의 잊지 못할 몸짓이었다.


그가 '후후후' 입으로 불었던 바람. 아무래도 산들바람이나 하늬바람, 소슬바람과는 달랐던 그 바람을 기억하는 한, 나는 그에게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랑하는 온전한 순간에 두려움에 떨며 이별을 생각하는 건 그래서였다. 사랑과 이별이 동시에 내 몸 안에 스며들던 최초의 시작은 성주가 내 몸에 바람을 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언제나 바람은 이마에서 목덜미를 내려와 쇄골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땀에 젖은 내 가슴과 배꼽 아래까지 시원하게 밀려왔다. 나는 침실 옆에 커다란 전신 거울을 걸어놓고, 그가 만들어내는 바람소리에 따라 내 머리카락이 움직이는 방향을 가늠해보고 싶었다. 사랑을 나눈 후, 내 몸이 그의 숨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기억해두고 싶었다. 나는 잊고 싶지 않았다. 지친 살갗에 와 닿던 그의 숨결과 숨소리를 말이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애인의 애인에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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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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