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칼럼

20세기 최대 연쇄살인은 '한국'에서 벌어졌다

by 인터파크 북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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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연쇄살인은 한국에서 벌어졌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한국인이다. 긴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첫 총성은 해질녘에 퍼졌고, 마지막 폭발음은 동틀 때 세상을 흔들었다. 62명이 죽었고, 33명이 다쳤다.


사건은 1982년 4월 26일 경남 의령에서 발생했다. 범인은 현직 경찰, ‘우 순경’이었다. 그는 예비군 무기고를 털어 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채 네 마을을 돌며 사람을 죽였다. 그가 거쳐간 마을은 피바다가 됐다.


여러 총기난사범처럼 우 순경도 현장에서 자살했다. 수류탄으로 자폭했다. 그의 피로 마침표가 찍힌 이 사건은 세계 최대 연쇄살인으로 기록됐다. 끔찍하고 아픈 기록은 2011년 핀란드 총기난사 범인 브레이비크에 의해 깨졌다.


21세기 초까지 ‘연쇄살인 세계기록’을 보유했던 나라에 살면서도 우리는 잘 모른다. 우 순경이 왜 무서운 일을 저질렀는지, 누가 그의 가슴속에 분노의 불을 붙였는지,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 동거녀와 말다툼 끝에 격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게 지금까지 통하는 ‘정설 아닌 정설’이다.


우 순경이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시골로 좌천돼 불만이 많았다는 사연이 잔가지처럼 전해진다. 그가 술을 마시면 난폭해지고, 감정 조절을 못하는 인격장애인이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이들 정설과 잔가지 사연에는 공통점이 있다. 범죄의 모든 책임을 개인의 성격, 인성, 감정 조절 실패로 돌린다는 점이다. 살인, 그것도 100명 가까운 사상자를 낸 당사자니 우 순경이 용서받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범죄의 원인과 배경을 묻고 따지는 건, 용서 여부와 상관없이 중요한 일이다. 인류 역사에서 범죄 없는 시절은 없었다. ‘범죄와의 전쟁’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전쟁이다. 이 전쟁에 나서는 우리의 자세는 정말이지 형편없이 부실하다.


세상을 흔드는 범죄가 벌어지고 범인이 체포되면, 우리는 여전히 거의 모든 책임을 범인의 성격, 인성, 감정 조절 실패 탓으로 돌린다. 원인을 찾는 수고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일까? 사람들의 요구와 분노는 하나로 모아진다.


"범인 얼굴 공개해! 살인마에게 무슨 인권이 있어!"


체포된 범인은 세상에 별 위협이 안 된다. 얼굴 공개한다고 범죄가 예방되거나, 안전한 사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물어야 하는 질문은 따로 있다.


"왜 죽였을까?"
"살인범의 마음에 악마가 있다면, 그 악마를 혹시 우리가 키운 건 아닐까?"


우 순경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는 세상을 놀라게 한 연쇄살인범이 등장했다. 지존파, 유영철, 강호순 등. 사건 때마다 모든 언론이 이들을 다뤘지만 정작 우리는 이들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다. 언제나 ‘사이코패스’라는 말로 정리하고 넘어갔다. 많이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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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하지 않은 질문... "왜 죽였을까?"


일본 사회를 놀라게 한 ‘니시구치 아키라 연쇄살인 사건’을 작가 샤키 류조가 논픽션 소설로 풀어낸 <복수는 나의 것>(모비딕/ 2016년)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별 사건이 다 벌어지는 한국인데, 왜 이런 논픽션 범죄 소설은 없을까?'


니시구치 아키라는 1963년 10월 18일부터 1964년 1월 3일 체포될 때까지 5명을 살해했다. 그는 첫 번째 살인(두 명 살해)사건 이후 바로 지명수배 됐으나, 무려 78일간 일본 전역을 도주하며 세 명을 더 살해했다. 일본 경찰은 12만 명을 동원해 그를 뒤쫓고, 역사상 최대 규모의 체포 작전을 펼쳤으나 검거에 실패했다.

니시구치 아키라는 경찰에 쫓기는 와중에도 희대의 사기를 치고(심지어 법원 로비에서도!), 변호사를 사칭해 사람들에게 돈을 뜯어낸다. 두뇌 회전이 기발하고, 언변이 뛰어난 살인범이다. 이런 상황을 알면, 그를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가 탄생한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작가 사키 류조는 이 책을 1976년, 그러니까 사건 발생 13년 뒤에 발간했다. 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는 이 책을 바탕으로 1979년 영화를 만들었다. 사키 류조는 연쇄살인 발생 10년 뒤에야 취재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사건이 발생했던 1963년의 일본 사회와 인간 군상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사실 <복수는 나의 것>은 '니시구치 아키라는 왜 그렇게 죄책감도 없이 사람을 죽였을까'라는 결정적 의문에 답을 주지 않는다. 읽는 내내 살인범의 마음이 궁금했으나, 끝내 나오지 않는다. 허무할 줄 알았으나 오히려 그 반대다. 묵직한 감동의 밀물에 몸이 천천히 잠기는 기분이 들었다.

'감정은 배제, 사실에 충실.'

샤키 류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원칙을 지킨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샤키 류조는 '작가 후기'를 통해 고백했다.

"저는 아무리 해도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면 그를 만난 사람, 그에게 속거나 죽임을 당한 사람 측에서 묘사할 수밖에 없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그래서 저는 철저하게 조사하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작가의 말대로, <복수는 나의 것>에는 니시구치 아키라를 만났거나 알고 지낸 사람들의 구체적인 육성이 많이 담겨 있다. 흉악범이면서도 고도의 지능범인 ‘희대의 캐릭터’ 니시구치 아키라는 그런 노고를 통해 만들어졌다. 작품에 자기 주관적 생각을 넣고 싶은 욕망은 끝까지 억제한 작가 덕분이다. 주관보다 사실을 추구한 그 정신이 오래가는 책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든 원천이지 싶다.

<복수는 나의 것>에 영감을 준 작품은 트루먼 커포티가 쓴 <인 콜드 블러드>다. 둘 다 끔찍한 범죄 사건을 생생하게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 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 한국에서도 나왔으면 한다. 끔찍한 사건은 한국에서도 벌어지니까 말이다.

한 시절 세계기록이었던 62명이 죽은 사건의 원인이 고작(?) 동거녀와의 말다툼 때문이었다고? 이걸 그냥 믿으라고? 역사는 때로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나?

난 정말 궁금하다. 우 순경은 청와대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유영철은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강호순은 왜 그랬는지…. 그들의 얼굴보다 마음의 불길, 그들을 둘러쌌던 세상과 사람이 궁금하다.


위 글은 인터파크 북DB 기사 [20세기 최대 연쇄살인은 ‘한국’에서 벌어졌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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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니스트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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