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둥이 베개 옆에 두고 잠자기. 지리산 피아골로 내려온 뒤 꼭 지키는 원칙이다. 지리산의 검은 밤과 고요는 좋지만, 지독히 무서운 것도 사실이다. 두려움 없게 생긴(?) 내 얼굴을 보면 절대 믿지 못하겠지만, 내 방에만 몽둥이가 세 개다.
원래 소심하고 겁이 많아서가 아니다. 백수지만 지난 1년 동안 살인사건 관련 기획기사를 네 개 진행했다. 사람 잡는 끔찍한 이야기가 6하원칙에 따라 자세히 나열된 사건기록을 깊은 산, 검은 밤에 읽어보시라. 당신도 몽둥이 없이는 잠들지 못하리라.
하지만 지리산에서의 공포가 절정에 이른 순간은 기록이 아닌 소설을 읽을 때였다. 트루먼 커포티가 쓴 <인 콜드 블러드>. 놀라운 독서 경험이었다. 오싹한 기분으로 잠 못 이루게 하지만, 간신히 잠들어 눈을 뜨면 책부터 펼치게 만드는 소설이다. 이 책에는 ’논픽션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소설인데, 픽션이 아니라니. 커포티가 개척한 장르다.
<인 콜드 블러드>는 미국 캐자스 주 시골마을 홀컴에서 실제로 발생한 일가족 네 명 살인사건을 소설로 재구성한 책이다. 커포티가 무려 6년 동안 피해자 이웃, 수사관, 변호사, 범인 두 명을 취재해 쓴 역작이다.
커포티를 이 사건에 붙들어 맨 매혹적인(?) 인물은 바로 범인 중 한 명인 페리 스미스다. 페리는 예민하고 소심하며, 우수에 젖어 고독하게 기타를 연주하는 청년이다. 그가 일면식도 없고, 그래서 원한관계도 없는 농부 가족 네 명을 끔찍한 방법으로 죽인다. 그 집에서 사라진 돈은 고작 50달러. 소심한 청년이 고작 50달러 때문에 가족을 몰살하다니. 도대체 왜?
커포티는 페리 스미스의 삶을 따라간다. 사실 페리의 과거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수많은 범죄 뉴스의 끄트머리에서 우리는 늘 짧게 확인하곤 한다. 범인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는 진부한 소식. 하지만 커포티는 그 진부한 뉴스를 생생하게 바꿔낸다. 페리의 과거는, 그의 엄마는 이러했다.
"그에게는 엄마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고, 얻은 것이라고는 엄마에 대한 ’경멸’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술 때문에 엄마의 얼굴은 망가졌고, 한때 강건하고 늘씬했던 체로키 여인의 몸매는 부어올랐으며, ’영혼은 쉬어버렸고’ 혀는 뾰족해져서 사악한 말만 해댔다. 자존심까지 모두 녹아 없어져버렸고, 나머지 정상적인 부분은, 줄 수 있는 것은 다 남자들에게 줘버렸다. 부두 노동자가 되었든 전차 운전사가 되었든 이름도 묻지 않았고 상대를 가리지도 않았으며 대가를 받지도 않았다."
커포티가 페리에게 ’글쓰기 소재’ 이상의 감정을 느낀 건, 페리의 삶에서 자신의 과거를 봤기 때문이다. 커포티 역시 불우한 성장기를 거쳤다.
<인 콜드 블러드>가 나에게서 숙면를 빼앗고 공포만을 안긴 건 아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계속 요즘 내가 취재하는 이웃 남자를 생각했다. 상습강간범 서진환. 2012년 8월 전자발찌를 찬 채 경찰이 보는 앞에서 두 아이의 엄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해 무기수가 된 남자.
서진환은 구례 출신이다. 지금 내가 사는 집에서 차로 10분만 가면 그가 나고 자란 집이 나온다. 그의 집, 그가 다닌 학교, 그가 친구들과 놀던 골목길 어디에서든 큰 산 지리산이 보인다. 하지만 그는 큰 인물이 되지 못했다. 큰 사고를 쳤다. 그의 친구, 친척, 학교 생활기록부, 심지어 경찰의 수사기록이 비슷하게 증언한다.
"말이 없고 우울한, 심성이 착한 아이였음."
말이 없던 우울한 아이는 어쩌다 경찰 앞에서 사람을 죽이는 어른이 됐을까. 서진환 옆에는 ’문제인물’ 아버지가 지리산처럼 우뚝 서 있다. 그의 아버지는 술, 도박을 좋아했다. 구례에서 서진환과 함께 유년을 보낸 한 사람이 말했다.
"엄마를 무척 사랑했고, 그래서 많이 힘들어 했어요. 아버지가 엄마를 자주 때린다고. 왜 엄마는 도망가지도 않고 맞고 사느냐고 종종 이야기했어요."
서진환의 오래된 집으로 가 그의 아버지를 직접 만났다. 아버지는 자신의 과거를 인정하지 않았고, 아들에게 아무런 책임감이 없었으며, 무기수가 된 아들의 처지를 연민하지도 않았다. 뭔가 감이 왔다.
<인 콜드 블러드> 때문에 꿈이 생겼다. 서진환을 직접 만날 생각이다. 그의 친구, 형제들을 더 만나볼 계획이다. <인 콜드 블러드>를 읽을 땐 살이 떨렸지만, 이제는 가슴이 떨린다. 공포가 아닌 다른 감정 때문에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요즘, 날마다 서진환을 생각한다. 당연히 나는 커포티가 아니다. 하지만 커포티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서진환에게서 내 과거와 아버지를 본다. ’그에게서 나를 보고, 나에게서 그를 발견하기’. 글쓰기의 시작과 끝은 바로 그런 것 아니겠는가.
글 : 칼럼니스트 박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