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칼럼

우리 오늘 잠깐 '멍 때리기' 어때요?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by 인터파크 북DB

* 순수하고 기발한 아이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메시지, 아이 그림을 명화처럼 감상하며 ‘아이 그림 읽어주는 여자’ 권정은의 해설을 들어봅니다.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 내 자신, 그리고 세상과 다시 나누는 이야기. 이 연재는 권정은 ‘Art Centre 아이’ 원장의 책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 편집자 말


어느 날 고2 윤영이가 그린 낙서화를 보게 되었다. 자신을 그린 듯한 여자의 커다란 두 눈에는 눈동자 대신 텔레비전 조정화면에 뜨는 컬러 바(Color Bar)들이 그려져 있었다.


"앗! 눈이 왜 컬러 바야?"
"제가 '멍 때리고' 있는 눈이에요."
"???"
"선생님! 전 취미가 '멍 때리기'인가 봐요. 중간고사 기간인데도 공부 안 하고 멍 때리고 있다가 문득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그냥 그려본 거예요. 하도 멍 때리니까 눈에서 '삐~'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서요. TV에서도 컬러 바 나올 때 '삐~' 하는 소리가 나잖아요. TV가 멍 때리고 있을 때요. 그래서 제 눈도 컬러 바예요."


와! 이렇게 훌륭한 표현과 비유라니! 윤영이가 그린 컬러 바로 가득 찬 두 눈은 정말로 뇌가 이완할 때 나온다는 뇌파인 세타파가 넘쳐 흘러나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눈에서 나는 '삐~' 소리와 함께 말이다.


201606271149061.jpg '멍 때리는 눈' 정윤영 작품


멍 때리기는 우리 일상 중 잠깐 행하는 명상의 친척쯤 되는 일이다.


뇌는 긴장할 때 주로 베타파가 나오는데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 때 나오는 베타파는 초당 14~100Hz라고 한다. 그런데 이 긴장된 뇌가 연속적으로 쉬지 못하고 긴장이 누적되면 점차 정상적인 판단능력 따위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초조함 같은 여러 가지 증상으로 나타난다. 명상은 그런 긴장 상태로부터 마음을 이완시키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완전히 이완되는 수면상태와는 달리 이완시키되 집중하고, 집중하되 이완시키는 작업이다. 이완과 긴장을 함께하므로 초당 8~14Hz의 뇌파가 나오고 이것을 알파파라고 한다. 그런데 명상을 할 때는 알파파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끔 세타파도 나온다. 세타파는 보통 '멍 때릴' 때 나타나는 뇌파로 그보다 좀 더 느슨한 4~8Hz이다. 이것은 주로 선잠이 들거나 졸고 있을 때 나타나는 의식과 꿈의 경계이다. 완전히 잠이 든 상태에서는 델타파가 나온다.


'멍 때리기'는 준비과정 없이 그저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또는 일하다가 창밖을 바라보면서 곧바로 할 수 있는 손쉬운 뇌의 이완 방법이 된다. '멍 때리기'는 목마른 우리 뇌에 시원하고 맑은 물 한 모금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정신과에서는 잡념이나 걱정, 불안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 끊어가기' 훈련을 시킨다. 한마디로 '멍 때리기' 훈련이다. 그러면 나쁜 호르몬이 줄어 혈압이나 맥박은 물론이고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아지며 면역력이 높아지는 효과까지 가져온다고 한다. 이 얼마나 '꿩 먹고 알 먹기'인 좋은 습관인가.


그러므로 '늘 열심히 살아야지' 하며 뇌를 바쁘게 움직이려고만 하지는 말자. 늘 열심히 살자고 자신을 채근하면서 앞만 보고 뛰는 것은 입에 영양가 높은 음식만 잔뜩 쑤셔 넣고 목이 메는 지경인 것과 같다.


때로는 건강한 집중을 위해 생각을 바람처럼 흘러가게 내버려두자. 바람에 몸을 맡기고 일렁이는 나무들은 아름답다. 나뭇잎도 가만히 서 있을 때보다 바람에 출렁이며 흔들거릴 때 햇살에 더욱 눈부시게 빛나지 않은가.


20160627114923208.jpg '멍 때리는 나' 정윤영 작품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멍 때리기'를 한다.


윤영이의 그림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깨달음을 내게 선사해주었다. '멍 때리기'는 꼬리를 무는 생각들과 긴장을 바람과 함께 날려버리고 더 빛나는 존재가 되도록 하는 우리 몸 스스로의 노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왜 '멍 때리고' 있느냐고, 빨리 정신 차리라고 서로에게 핀잔만 주고 있다.


생각의 진공상태를 통해 내 안에 더 빛나는 것들을 채워 넣고 싶다면 오늘도 잠깐 '멍 때리는' 순간을 기쁘게 맞이해보시라.


글 : 칼럼니스트 권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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