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칼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터파크 북DB Oct 20. 2016

[한라산] 고통의 산물 '눈꽃' 그야말로 일품이네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사람은 하늘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은 세상의 작은 존재일 뿐이기에 그렇다. 노산 이은상은 한라산을 오르며, 한라산으로 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읊었다.


"이 섬에 들어와서부터는 어디나 한라산이니 가다가 서 보아도 한라산이요, 한 바퀴 돌아보아도 또 거기가 한라산이요, 힘껏 벗어나려고 숨어보려고 굴속으로 들어가 보아도 한라산인데…."


한라산은 이은상이 그랬듯이 제주도에 삶을 틀고 있는 존재라면 한라산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굳이 한라산으로 가려는 이유는 무언가. 이은상이 물음표를 던지며 얻은 해답은 한라산은 하늘이었다. 한라(漢拏), 즉 은하수(雲漢)를 잡아당긴다(拏)는 뜻대로 한라산은 하늘 가까이 있는 산이다. 이은상은 하늘의 그림자에 불과한 한 인간이 되어 한라산에 올랐고, 우리 역시 하늘을 마주하려고 한라산에 오른다. 그렇다면 한라산은 '하늘산'인 셈이다.


제주사람은 그러나 하늘산인 한라산에 무뎌져 있다. 한라산은 멀리서도, 보고 싶지 않더라도 눈에 들어온다. 너무 눈에 익었다. 뭍사람들은 기를 쓰고서 오르려는데 제주사람들은 별 반응이 없다. 한라산은 히말라야를 정복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요한 곳임에도 말이다. 사실 히말라야 등정을 준비하는 이들은 한라산에서 훈련하며 설산을 정복할 도전을 꿈꾼다.


한라산은 하늘이라 했으니 한번쯤 하늘을 가까이에 품어보자. 한라산이 누이 같고, 어머니 같다고 관심 밖으로 내몰지는 말자. 한라산이 애인이라면 그렇지는 않겠지.
하늘 같은 한라산에 오르면 우리는 더이상 하늘에 가리운 그림자가 되지 않는다. 하늘과 같은 산. 손을 내밀어 산을 잡고, 하늘을 잡고 싶다면 한라산을 찾자. 선인들은 한라산에 오르려 3박4일을 넘는 시간을 공들였다지만, 지금 한라산은 애인 곁에 다가가듯 쉽게 만날 수 있지 않은가.


특히 한라산의 매력은 겨울에 있다. 산에 있는 사람들은 대설주의보를 폭설주의보라 부른다. 산에서 맞는 눈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장대함과 위엄이 도사려 있기에 그럴 것이다. 대설주의보가 해제된 뒤 한라산을 오르는 이는 없다. 산에 오르는 이는 노루 외에는 없다. 아무도 밟아보지 않은 눈길을 걷는 기분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럼에도 러셀(등산할 때 앞서가는 사람이 눈을 밟아 다져가면서 나아가는 일)을 해야 한다. 바로 개척자의 몫이다.



한라산에선 하늘을 느낀다 그의 이름이 하늘이기에


러셀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일은 아니다. 대설주의보가 내려지면 도로는 통제되고, 눈이 무릎 이상 쌓이면 산행도 불허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러셀의 기회는 오지 않더라도 겨울 한라산은 누구에게나 눈을 보여준다. 일품은 뭐니뭐니해도 눈꽃이다.


한라산의 눈꽃은 고통의 산물이다. 제주 특유의 바람과 맞물려 만들어진 작품이다. 산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눈과 안개를 쉽게 접하게 된다. 바람에 흩뿌린 눈이 나뭇가지에 달라붙고 엉겨붙어 꽃을 피운다. 그게 바로 눈꽃이다. 바람 없는 곳에서 나무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은 나뭇가지를 힘겹게 만들지만 바람 잦은 곳에서 앙상한 뼈대만 남긴 나뭇가지를 덮은 눈은 가장 아름다운 눈꽃을 탄생시킨다.


겨울바람은 한라산의 남북으로도 서로 다른 광경을 보여준다. 1100도로를 기준으로 한다면 다소 따뜻한 남쪽보다는 북쪽의 눈꽃이 아름답다. 북서계절풍은 북쪽의 눈을 날리고, 그 눈은 가지에 하나둘 붙어 눈꽃이 된다. 정신없이 불어대는 바람에 눈발이 나무에 꽂히듯, 아니 박히면서 만들어지는 게 눈꽃이다.


한라산의 눈꽃은 뭍지방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제주만의 것이기도 하다. 뭍에서 그런 눈꽃을 만나려면 지리산의 세석평전쯤은 가야 한다.


어느 코스로 갈까. 한라산은 코스마다 특색이 있다. 한라산 정상까지 갈 것인지, 그렇지 않을지를 선택해야 한다. 정상까지 간다면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를 택한다. 성판악 코스는 한라산 동쪽 주능선으로 다소 밋밋하지만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관음사 코스는 한라산의 능선과 계곡 등 깊은 맛을 느끼며 등산할 수 있다.

정상을 굳이 가지 않는다면 어리목으로 올라 영실로 내려오는 코스를 권하고 싶다. 어리목은 한라산의 서북 방면이어서 겨울철 계절풍을 곧바로 받는다. 따라서 오를 때는 바람을 등지며 갈 수 있지만 내려올 때는 바람을 맞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목 코스를 이용해 오른 뒤 서남 방면의 영실 코스로 내려오면 바람도 피하고 겨울 산행의 여러 느낌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한라산은 겨울이 좋다. 요즘은 한라산을 오르는 이들이 너무 많아 탈이긴 하지만. 한라산이 덜 아프게, 오르는 이들을 통제하는 방법은 없을까.



※ 본 연재는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김형훈/ 나무발전소/ 2016년)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사진 : 제주관광공사, 김형훈 제공

글 : 칼럼니스트 김형훈

매거진의 이전글 자존심 상하지만 실용적인 진실...당신은 똑똑하지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