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사회과학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은 사회과학이 인과적인 설명에 매달릴수록 현 체제를 유지하는 도구로 전락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사회를 ‘있는 그대로’만 분석하는 사회과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좁히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사회과학은 현 체제를 정당화하고, 그 기능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수단이 됩니다. 현 체제의 근본을 묻는 질문은 사라지고, 변화의 가능성도 봉쇄됩니다. 바우만은 사회과학이 ‘과학적인 예측’을 하려는 야심과 충분히 ‘과학적’이라는 주장을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한 나라의 부와 힘을 키우는 데 있다”고 말한 이래, ‘정통’ 경제학은 오랫동안 ‘인간에게 무엇이 좋은가?’보다 ‘경제 성장을 위해 무엇이 좋은가?’에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인간도 행복해질 것이라 가정했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순은 외면되었습니다.
하지만 부는 인간다움 삶을 위한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지나치게 많은 부를 소유해 낭비하고 있는데도 또 어떤 이는 생존조차 위태롭다면, 그 사회가 아무리 잘 살아도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통계학자 나심 탈레브(1960~ )는 사회과학이 오히려 우리의 상상력을 제약한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회과학 연구가 정규분포를 전제로 추론하는데, 이는 큰 편차나 예외적인 사건을 무시하게 만들어, 마치 우리가 불확실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고 비판했습니다. 탈레브는 이러한 사회과학 연구를 ‘엄청난 지적 사기’(Great Intellectual Fraud)라 불렀습니다.
일반적으로 종 모양의 정규분포에 기반한 ‘빈도주의’ 통계는 표본이 많을수록 오차는 줄고, 예측이 정확해진다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같은 극단적인 사건은 애초에 자료로 존재하지 않기에 어떤 표본으로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주식시장처럼 방대한 자료가 쌓여도 예측은 쉽지 않습니다. 정보가 지나치게 많아, 무엇이 의미 있는 신호인지 분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를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여름철 익사율과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동시에 는다고 해서, 아이스크림이 익사의 원인일 수는 없습니다. 병원에서의 사망자가 우체국보다 훨씬 많다고 해서, 우체국이 더 안전한 치료 장소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오류가 담긴 사회과학 연구 결과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예측은 불확실성이 내재합니다. 그럼에도 사회과학은 결정론에 기대어, 빈도주의 통계로 미래를 설명하려 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많은 통계학자는 이 접근이 현실을 왜곡하기에, 더 이상 학교에서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런던 통계학회와 영국 통계청은 통계의 남용을 우려하며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통계학은 사회과학과 같은 목표를 추구하지만, 가능한 한 결과의 원인이나 이유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통계학은 단지 숫자를 수집해 배열하고, 비교하는 데 그친다.” “통계학은 원인 파악과는 무관하다. 통계는 그저 가장 딱딱한 읽을거리일 뿐이다.”
2006년 세계은행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마이클 스펜스(1943~)를 위원장으로,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1924~2023)를 비롯한 세계 석학 21명과 실무자 11명, 학계 전문가 300명을 모아 ‘성장과 발전 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목표는 많은 국가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과제, 곧 경제 성장의 일반 원리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위원회는 2년간 워크숍 12차례와 자문회의 13차례를 열고, 연구비 400만 달러를 투입했습니다. 하지만 최종 보고서에서 경제 성장의 일반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세계 최고 전문가들의 최종 답은 “우리는 모른다”였습니다. 관료와 정치인이 “경제 발전을 위해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말을 의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정밀한 경제학 모델도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 행동은 매우 복잡하고 역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모델 설계 과정에서 무엇을 포함하고 배제할지, 어떤 순서로 연결하고 가중치를 둘지는 사람의 편견과 전제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 선택 하나하나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어쩌면 모델은 전문가의 지식이 얼마나 불확실한지 비전문가가 눈치채지 못하게 감추는 장치일지 모릅니다.
집단과 개인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양상은 여전히 모델로 구현하기 어렵습니다. 사회는 문화적인 규범이나 역사적인 맥락, 제도적인 장치 같은 수많은 요인에 영향받기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법칙은 거의 없습니다. 사회학은 인간과 사회의 복잡성과 유동성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보편적인 법칙을 찾는 ‘법칙의 과학’이 될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고 성찰하는 학문이 되어야 합니다.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은 과학이 아닐 뿐 아니라 과학이 되려고 해선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