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있어줘

상상에라도

by 김케빈

내게는 사실, 쓰고 싶은 소설과

잘 써지는 소설이 있어


잘 써지는 소설은 뭐냐면,

사정없이 사회의 부조리라던가,

어리석음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사정없이, 매정하게 까대는 게

잘 써지는 글이고 소설이야


아니면 잔뜩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라거나


이런 글을 쓰고서 본인의 스타일이 살아난다라던가,

그런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렇게 무언가를 증오하기 위해, 미워하기 위해

글을 쓸 때는 해소는 잠시 되더라도,

다시 그런 글들을 돌아보고 싶지가 않아


잘 쓰는 글이 될지언정, 솔직한 글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아.


사실 쓰고 싶은 책이라면, 소심하고, 사랑을 많이 원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척, 여유로워 보이는 척 하는

그런 주인공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아이처럼 기대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주인공이 하도 내 아픈 부분을 닮아서 그런 것도 있고,


외롭고 고독한 내 마음을 달래줄 가상의 인물은 만들 수 있더라도

스스로 미안하달까, 그런 생각이 들어

그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을 만나서 무슨 죄일까. 하면서


겉으로는 믿지 못하겠다.

능력이 되지 않는다.

나와 생각하는 게 같지 않아.


하지만 속마음은 '제발 내 곁을 떠나가지 말아줘.'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제발 내 옆에 있어줘.'

'날 잡아줘. 날 버리지 마.'

'가지마.'


겉으로는 강해보일지언정,

속마음이 이래서,


어떻게 살아갈까.

저런 걸,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 사람을 상처 안입힐 자신 같은 거,

하나도 없는데.


차라리 내가 상처를 더 입고서

말도 못하면서 살아갈 거 같은데


그 사람을 사랑할테니까.

제발 다치지 말아줘.

힘든 건 내가 앞에서서 감당할테니.

너는 그냥 옆에만 있어줘.

그거면 돼.



나와 같은 걸 바라는 사람일수록,

강하게 바라는 사람들을


나는 밀어냈다.

가장 끔찍하게 보이는 이들이 그런 이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할 사람은


차라리 소설을 써서 상상하는 게

훨씬 가망성 있을 거 같아서


나는 잘 쓰는 소설을 쓰다가도,

문득문득, 좋아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서

힘겨워도 뒤를 돌아보고


웃다가,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을 것 같아서

소리없이, 침대에 누워서


이세상에 있을지 없을지 모를

내 옆에 있어줄 사람을 상상하면서


이불을 꼭 끌어안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외롭다, 연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