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에라도
내게는 사실, 쓰고 싶은 소설과
잘 써지는 소설이 있어
잘 써지는 소설은 뭐냐면,
사정없이 사회의 부조리라던가,
어리석음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사정없이, 매정하게 까대는 게
잘 써지는 글이고 소설이야
아니면 잔뜩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라거나
이런 글을 쓰고서 본인의 스타일이 살아난다라던가,
그런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렇게 무언가를 증오하기 위해, 미워하기 위해
글을 쓸 때는 해소는 잠시 되더라도,
다시 그런 글들을 돌아보고 싶지가 않아
잘 쓰는 글이 될지언정, 솔직한 글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아.
사실 쓰고 싶은 책이라면, 소심하고, 사랑을 많이 원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척, 여유로워 보이는 척 하는
그런 주인공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아이처럼 기대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주인공이 하도 내 아픈 부분을 닮아서 그런 것도 있고,
외롭고 고독한 내 마음을 달래줄 가상의 인물은 만들 수 있더라도
스스로 미안하달까, 그런 생각이 들어
그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을 만나서 무슨 죄일까. 하면서
겉으로는 믿지 못하겠다.
능력이 되지 않는다.
나와 생각하는 게 같지 않아.
하지만 속마음은 '제발 내 곁을 떠나가지 말아줘.'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제발 내 옆에 있어줘.'
'날 잡아줘. 날 버리지 마.'
'가지마.'
겉으로는 강해보일지언정,
속마음이 이래서,
어떻게 살아갈까.
저런 걸,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 사람을 상처 안입힐 자신 같은 거,
하나도 없는데.
차라리 내가 상처를 더 입고서
말도 못하면서 살아갈 거 같은데
그 사람을 사랑할테니까.
제발 다치지 말아줘.
힘든 건 내가 앞에서서 감당할테니.
너는 그냥 옆에만 있어줘.
그거면 돼.
나와 같은 걸 바라는 사람일수록,
강하게 바라는 사람들을
나는 밀어냈다.
가장 끔찍하게 보이는 이들이 그런 이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할 사람은
차라리 소설을 써서 상상하는 게
훨씬 가망성 있을 거 같아서
나는 잘 쓰는 소설을 쓰다가도,
문득문득, 좋아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서
힘겨워도 뒤를 돌아보고
웃다가,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을 것 같아서
소리없이, 침대에 누워서
이세상에 있을지 없을지 모를
내 옆에 있어줄 사람을 상상하면서
이불을 꼭 끌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