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양 Feb 11. 2018

#8. 츤데레 남자를 가지는 방법

사랑의 장애물 #8.
 그는 왜 나에게 땍땍거리는 걸까.




 나는 새침데기, 일명 츤데레의 특징을 가진 남자와 결혼했다.

 그와 결혼을 다짐하게 된 수많은 계기 중 제일 앞부분은 그러했다.

 (나는 단계적으로 결혼에 대한 계기가 필요했다. 그게 나에게로선 믿음의 원천이었다.)



 한 번은 내가 직장을 잃었던 적이 있었다. 

 큰 실수로 인해 해고를 당했는데, 집에 있는 엄마 아빠에게 말씀을 드리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어렵게 취직한 곳이었고 그곳에 다 쏟아부을 생각이었는데, 거부할 수 없는 해고였다 하더라도 너무나도 허무했다. 무엇보다 다시 백수가 되어 취직해야 할 생각에 막막하고, 그런 사실 자체를 알려드린다는 게 고통이었다.

 그중에 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 집으로 와."


 그 당시에 그의 얼굴은 정말 변화 하나 없이 무덤덤했다. 덧붙이자면, "싫으면 말고"라며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속마음을 한 층 더 숨기는 사람이었다. 

"그럼 우리 집으로 와."라는 말을 해석하자면 그러했다.

"그럼 우리 집으로 와, 싫으면 말고, 근데 웬만하면 그냥 와. 그게 나도 마음이 편해. 쓸데없는 짓 안 할 테니까... 이건 약속 못하겠다."

 어쩌면 4차원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그를 알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서로 가진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흔희들 말하는 츤데레, 일본에서 넘어온 말이지만, 솔직히 새침데기라는 말보다 뭔가 좀 더 와 닿았다. 츤데레나 새침데기나 그때는 잘 모르는 단어였지만, 나는 그를 통해서 그 단어의 뜻을 알게 되었다.




 그를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은 취직하기 전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그는 사업을 배우기 위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완전히 까칠남이었다.

 툭하면 화를 내기도 하고 삐치기도 했다. 얼마나 다루기 힘든지, 내가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조절해야 할 사람도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입장에선 그럴 수가 없었다.


"저쪽 거, 빨리 해 놔야 하는 거 알지?"


 그는 잔뜩 설거지가 남은 것을 가리키며 말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담당 일이었기 때문에, 변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몸이 지치면 쉽게 움직일 수 없었고, 그 이전에 할 것은 많았다.


"알아요, 할 테니까 뭐라 좀 하지 마요. 좀"

"..."


 그는 나의 말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다지 호감을 두지 않았기 때문인 건지 말끝마다 짜증을 표현했던 것 같았다. 오히려 내가 더 신경적이고 까칠한 건 아닌지 하면서.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았고,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쉬지 못한 채 계속 쌓였을 설거지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이미 물기까지 제거해 정리가 되어 있었다.


"사모님, 사모님이 설거지하셨어요? 죄송해요 제가 하려던 건데 미뤄버려서."


 내가 제일 싫어했던 것은 성실하게 일을 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받는 것이었다. 그건 어딜 가나 똑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사모님은 말씀하셨다.


"그거 아까 자상이가 해놓고 갔는데." 

"네? 자상이요?"

"몰라, 여기 다른 알바 애들이 자상하다고 그렇게 부르던데."


 그 사람이 나의 일을 해두고 퇴근을 해 버렸다고 한다. 

 그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틈만 나면 나를 괴롭히던가, 도를 넘은 장난을 치던가, 신경을 건들기도 했다. 그리고 뭐 하나 잘못하면 나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를 자상하고 착하다고 하는데,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장난인 건지, 내 표정에서 뭔가를 느낀 건지, 갑자기 싹 굳어버리는 얼굴을 하곤 했다. 


 내가 그의 마음에 눈치를 챈 건, 카페 내의 CCTV가 고장 나 수리하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사모님과 같이 확인하던 도중이었다. 그는 언제나 나에게 까칠했고 뒤에서는 나를 바라보고, 내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걸 알다 보니, 그 사람의 앞에 서는 게 왠지 꺼려지기도 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고, 눈치를 챘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는 게 왠지 불편했다. 

 제일 화가 나는 건,

 나 말고 다른 여자에게는 츤데레의 까칠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한없이 자상하게 대한다는 것이었다. 

 깨끗하게 웃을 수 있고, 짜증내지 않는 얼굴을 하고, 심지어 부드럽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자상이'라고 불렀던 거였다.

 그때는, 그 사람이 정말 나를 좋아하는 게 정말 맞을까. 하면서 괜스레 신경이 쓰였다.




 그녀에게 짜증을 내는 건, 나를 속상하게 만들어서였고.

 그녀에게 장난을 치는 건, 그렇게 해서라도 스킨십을 해 보고 싶었다.

 그녀를 괴롭힌 건, 그런 방식을 써서라도 연결고리를 만들어 보고 싶었고,

 그녀에게 화를 내는 건, 솔직하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애정표현 중 하나였다.



 사실 그저, 나는.

 그 애한테 항상 잘해주고 싶다. 하지만 솔직하게 대놓고 그러진 못했고 더 나아가선 정확하게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랐다. 확실한 건, 내가 뭔가 쑥스러워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뭔가 변명을 대자면, 뭔가 해주고 싶은데, 그때마다 나에게는 내세워야 할 이유가 필요했고, 그래야 그녀를 위했다고 하는 준비를 했다. 하지만 굳이 누군가가 그 준비자세를 풀게 만드는 사람은 없었고, 가만 보면 나 혼자 늘 끙끙대고 있었다.

 그냥 표현하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항상 생각만 앞서다 보니 늘 원하는 말이 나오지 않고 땍땍 거리는 것 같기만 했다. 결국엔 다 해주고 싶으면서. 


 나의 기준에, 내가 생각한 츤데레는, 까칠함과 자상함을 동시에 가진 게 아니라, 그저 쑥스러움이 많아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츤데레라는 건, 그런 사랑의 바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알아줬다는 건, 더없는 행운이자 행복이었다.

  



 그 사람과 동거를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한 가지 각오를 했다. 남녀가 한 집을 쓴다는 건 야릇한 일이 많을 거라고, 스스로 소녀인 마냥 부끄러운 척했다. 하지만 성관계 자체는 무서워 한 편이었다.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건 좋았지만, 성관계를 두면 아픔이 좀 더 앞섰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그 사람은 나에게 성관계를 강요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아파하는 것을 알고 그러는 걸까 하면서, 성관계가 없으면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기에, 괜히 내가 성관계를 하고 싶은 것 마냥 불안하기도 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술을 마시게 하면서 떠 보았다.

 취중진담을 노린 것도 있고, 쑥스러움이 많아 솔직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사람의 목을 두 팔로 둘러쌓며 안기듯이 다가갔다. 자연스럽게 그 사람도 나의 허리 쪽에 손을 얹었다.

"오늘따라 더 섹시한 것 같네."

 라고 오글거리는 대사를 하며 그의 쇄골에 손을 가져다 쓰다듬었다.

 나도 전혀 술을 마시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 말을 술 없이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무덤덤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를 안아 업어 들었다.

 오늘은 마음먹은 대로 뜨거운 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나를 침대에 혼자 두었다.

"자, 취했어."

 나는 멍하니 천장을 보며 한 순간에 술기운을 깨트렸다. 사실 그 사람을 생각해서 시도했던 거라 괜히 무안해지기도 했다.

 다음 날, 알고 보니 그날 밤 성관계를 했다면 제법 큰일이 날 수 있었다. 

 나는 생리통이 그다지 심하지 않은 편이라서 자각이 없는 편이었는데, 그 사람은 나 대신에 생리 주기를 파악하고 있는 편이었고 늘 그 기간이면 예민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성관계를 아파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뭐? 난 그런 기억 없는데? 내가 왜 네 생리 주기를 알아야 해?"

 하지만 그는 그런 말을 했다.

 멀뚱히 스마트 폰의 일정 기록을 다시 확인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런 그 남자의 쑥스러움이 너무 귀엽다.


 나는 그런 점에 기다림에 이기지 못해 먼저 고백했다. 그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나의 연인이 되어달라고 얼굴을 마주 보면서 말했지만, 그는 끝까지 나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왜 그러냐고 그러니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결국 네가 그런 말을 하게 만든 게 너무 부끄러워서."

 그리고 얼굴을 파묻었다. 

 그런 걸 좋아했기에, 먼저 고백했었다.




 츤데레라고 불리는 남자는 그런 쑥스러움이 많은 남자일 뿐이다. 다양하게 까칠하거나 다정하거나 여러 가지를 가진 게 아니라 전부 쑥스러움이 많기 때문에 나타나는 성격이었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날을 기념으로 하고 있는지 등등 그 대상에 대해서 알아가기만 하지, 아는 척을 잘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한쪽 면에서 자신의 그런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기도 한다.

 쑥스러워서, 솔직하지 못하기에, 자신도 답답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알아줬으면 하길 바라는 거다.


 쑥스러움은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사랑 앞에서 한 없이 녹아들게 만들고 어쩔 줄도 모르게 만든다.

 순간순간 공격하는 것 마냥 찌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전부 자신의 사랑 표현법일 뿐이다. 솔직하지 못하니 그 솔직함을 표현하자니 쑥스러우니까 무언가로 포장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되려 솔직함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다. 고백 같은 것.

 

 그렇게 피할 줄도 모르고 견뎌낼 줄 밖에 모르는 츤데레의 남자는, 저돌적으로 다가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가 쑥스러워하는 건 그 사람도 자신을 좋아하는 것. 다만 이럴 때야 말로 답답할 정도로 쑥스러움이 많기 때문에 쉽게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마냥 자신의 표현을 하지 않는 게 아닌,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에서 다가오는 그 사람은, 콩깍지를 씌운 것 마냥, 흐뭇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남자를 선호하게 되는 제일 큰 이유는, 단순함과 거리가 있는 츤데레 만의 귀여움이 있다. 자기 혼자 밀당하는 것 같은 엉뚱한 귀여움.






매거진의 이전글 #5. 내 남자에게 꼬리 치는 여자가 나타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