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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Feb 13. 2018

#9. 이별과 외로움, 그 연애의 끝.

 이별을 겪은 이후, 그것이 좋든 나쁘든 가슴 속안에 뭔가 박힌게 빠지지 않아 답답해 했다. 그런 감정들은 나만 느끼는 걸까, 그 사람도 느끼지 않을까 하면서, 혼자 괴롭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외로워지는 것 같기도 했고 괜히 우울해지는 것 같기도 했고 화가나기도 하며, 그저 울고 싶기도 했다. 나는 그런 감정을 외면 할 수 없었다. 외면이 해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빗물은 땅을 계속 내리치고 수천 수억번을 내려쳐 구멍을 만들고 빗물이 고이게 한다. 그리고 그 물은 고여 썩어간다. 이별의 아픔은 그런 구멍을 만드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고인물을 퍼날라 버려야 한다, 그 썩은 물은 무엇이든 썩게 만드니까.



사랑의 장애물 #9.
 그 사람을 떠나 보냈다.
 나는 과연,
 그 사람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혼자 있을 때 마다 그런 느낌이 든다. 괜히 멍하게 뭔가를 하곤 있는데, 뭘 하는지 모르겠고, 유유적적하게 천천히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경우가 잦았다. 괜히 애늙은이기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의 내 마음이 어떤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해서, 글로 표현하면 어떨까 싶었지만, 온통 알 수없는 나만의 감성적인 이야기 뿐이었지 다른 사람이 보아도, 내가 다시 보아도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수 없는 글로 가득했다. 그건 나를 위한 것도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 이별은 그런 마음이었다. 괜히 나를 싱숭생숭하게 만들고 정신차리지 못하는 것 처럼 만들었다. 괜히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기도 한 게, 나는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내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건가 싶었다. '이별'이라는 녀석이 내 옆에서 계속 알짱 거리는 게, 무슨 밀당을 하는 것 같았다.


"이건 무슨, 이별이랑 연애하나?"


 괜히 헛웃음이 나곤했다.


 둘과의 시간을 가지다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될 여유가 많아졌다.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고 싶었다.

 그 사람을 위해서 했던 것들 중 늘 조급함은 존재했고, 항상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항상 예쁘게 차려입고 싶었고, 늘 화장에 신경 쓰면서 그의 자랑거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되짚어 생각해 보니 나는,

"나의 연애는 나를 위함이 아닌 그 사람을 위한 거였던 게 아닐까."

 그런 식으로 나를 위로해 보려고 했고, 스스로의 여유가 소중하도록 느끼게 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가 나를 떠나버렸던 것처럼, 이별은 또한 나를 떠나버렸다. 이별도 그 사람도 한순간에 멋대로 떠나버렸다. 그걸 느낄 수 있었던 건 두가지였다.

 하나는 더 이상 그 사람과의 추억에 감흥이 생기지 않았고, 또 하나는 더 이상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즐겁지 않았다는 거였다. 나는 이별을 보내고 외로움을 만나 익숙해지려 하고 있었다.



 조금 두려웠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기 때문에,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게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을 땐 다시 우울해졌다. 마치 누군가와 이별을 한 것 처럼 말이다.

 그 사람과 이별을 하고 이별과 새로운 연애를 했더니, 그 이별과도 이별을 했다. 나는 이제 외로움과 연애를 해야 할 위기를 앞에 두고 있었다.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게 제일 무서웠다.

 거짓말 처럼, 드라마 처럼 누군가와 인연이 생기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런 일을 바랐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나는 외로움과 1년의 연애를 했다.


 그 1년은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만들었다. 다시는 사랑이 언제 다가올지도 모를 것 같았고, 그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나 스스로를 비관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누가 나 같은 걸 좋아하겠어."

 그리고 그 자신에 익숙해져 가고 다시는 꺼내져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때 쯤, 기적이 일어났다.


 1년 동안의 외로움과의 연애를 깨 버린 건, 한 사람의 고백이었다. 그 사람은 그저 나와 오랜 기간 동안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였을 뿐이었다. 솔직히 그 사람에 대한 어떤 특별한 감정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지자, 나는 마구 흔들렸다. 내 몸속의 장기들은 내 뜻과 상관없이 마구 난장판을 치듯이 뜀박질을 했고, 머릿속에서는 괜히 그 사람을 거부할 이유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내가 외로움에 익숙해지다 보니 연애를 하면 안된다 라는 철벽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그런 나를 보고 다시 고백을 했다. 나는 그 사람의 재차 고백에 온 몸의 두근거림이 정지했다.

 

"예전부터, 연인이 있었을때 부터 좋아했어요. 하지만, 혼자 바라보는 게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 이 말을 하는 게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그는 나보다 더 오랜 외로움과 연애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동정을 느끼는 게 아니었다. 안쓰러움에 그를 받아들인 게 아니다.

 내가 내 스스로가 사랑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익숙해져 가는 것 처럼, 그 사람도 내가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만든 외로움에 지고 있던 나처럼, 그 시간을 싸우고 그 사람은 이겨냈다는 것을 느꼈다. 고백을 할려던 게 너무 오래 걸렸다는 말이 그런 것을 뜻했다.


 나의 두근 거림은 나도 먼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행복감이었고, 순간 두근거림이 멈추었던 건 나에게 다가오려고 하기 까지 그 사람의 외로운 싸움이 얼마나 고됬을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서 내가 사랑을 받을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 강하게 와 닿았고 간절해졌다.




 외로움과의 연애는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 사람과의 연애에서 이별하고, 이별과 연애했다. 그리고 이별과 이별하며 외로움과 연애를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도 모르는 만큼 굉장히 지쳐 있었기에, 내가 누군가로 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긴 한 걸까 하는 생각을 가슴 속에 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 사람이 더 소중해졌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웃으면서 들어주는 사람을 마주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했던 것인지, 처음 느끼는 것 마냥 행복했다. 하지만 다시 이 사람과 똑같이 이전의 절차를 밟을까봐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이 두려움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드는지, 이 사람과의 사랑이 더 간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두근, 두근'

 심장의 소리를 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을 것 처럼.



 이별 없이 끝까지 사랑할 순 없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해왔다. 하지만 언제나, 누군가에게나 만남이 있었으면 어떤 형태로든 이별은 찾아오는 것 같았다. 세상에는 절대라는 말이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언제나 예외는 존재 했고 그 예외가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언젠가 옆에 있는 사람이 없어질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두려움을 알기에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는 것 또한 나쁘지 않지만, 일부러 두려움을 사서 나를 몰아 넣는 게 반드시 행복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어떤 마음으로 내 옆에 있어 주는 사람에게 계속 다가가야 할까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에 어떤게 좋았나요?"


 그러면 그 사람은 나의 장점이라며 웃으며 이것저것 말해준다. 나는 그 사람의 말로 인해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는지 행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말해준다.

 내가 왜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 이 사람이 끝사랑이 아니더라도 끝까지 서로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솔직한 사랑을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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