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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Feb 17. 2018

#10. 돈이 없으니, 연애도 가오도 잃더라.

사랑의 장애물 #10.
데이트하는데 돈은 항상 필요했고,
계속 필요했다.



 한국에서 유명한 영화, 베테랑에선 유명한 명대사를 날렸다.

"너 돈 먹었지?"

"같은 식구라고 보자 보자 하니까."

"확 씨. 죽을라고.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수갑 차고 다니면서 가오 떨어질 일 하지 말자."


 흔히 남자들이 자존심을 내세우는 말 '가오'. 비록 일본말이지만, 남자들이 어깨를 드세울 때 자주 이용하는 단어다.

 어느 나라든, 남자가 신체적으로 여자보다 강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여자라고 해서 남자에게 신체적으로 마냥 뒤지는 경우가 있는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남성이 더 강한 근력을 바탕으로 힘을 드세운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옛날에는 남성이 가부장적이거나 지배적으로 여성을 대한 적이 많았지만, 그런 경우도 서서히 줄고 있다. 마찬가지로 마냥 또 변하는 것 같지 않기도 하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처럼, 남자들도 여자들에게 강한 모습, 든든하고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남자의 넓은 어깨가 멋지고 믿음직스러워하고 좋아하는 것처럼, 비록 태평양만큼 넓은 어깨를 가지지 않더라도, 자신의 여자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면 남자의 어깨가 넓게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남자는 '가오'를 잃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재벌 2세 3세가 아니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장학금에 목을 메야할 정도로 생계는 아슬아슬했고, 가끔 용돈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 사정때문에 여자 친구에게 데이트 비용을 다 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의 사정이나 여자 친구의 사정이나 서로 달랐던 것도 아니다. 그래도 계산대 앞에서 비굴해지는 모습을 보이는 건 싫었고, 5:5로 비용을 나누는 것도 싫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모든 걸 내가 사게 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밥을 사면, 그녀가 영화를 보여주기도 하는 둥 번갈아가면서 비등비등하게 비용을 내는 편이었고, 그건 평범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여자 친구와 단 둘이 식사를 한 게 아니라, 동기들을 포함하여 같이 시간을 즐긴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는데, 여자 친구는 중간쯤에서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호소했고, 나는 취기가 살짝 오른 그녀를 데리고 먼저 자리를 떴다. 시간은 막 막차가 떠난 시간이었기에 택시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택시를 잡았던 찰나, 나는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집까지 보내주려면 15000원 정도 나올 것 같은데.'


 하지만 내 지갑에는 16000원이 있었고, 또 술에 취한 그녀를 혼자 보내기도 불안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집은 나와 정 반대방향인데다가 꽤나 거리가 있었다.


"왜 그래요? 안 탈거예요?"


 택시 기사님은 나를 재촉하진 않았지만, 나는 바로 탈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내가 그리 돈을 많이 쓰고 쓸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게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다지 그렇게 굽히고 싶지 않았다.

 바로 '가오' 때문이었다.

 나는 잘 눈을 뜨지 못하는 그녀를 집에다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내릴 쯤에는 혼자 어느 정도 걸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나는 택시를 세워 두고 잠시 택시에서 내렸다.

 그때 택시 요금은 막 15000원이 되던 시점이었다.

"택시비 많이 나왔지? 잠깐만 내가..."

 그녀는 자신의 지갑을 꺼내려고 했고, 나는 빨리 초인종을 눌러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했다.

"나 어제 아르바이트비 받았잖아. 그래서 여유 있어. 괜찮아."

"아니 아르바이트비 얼마나 된다고, 아껴야지."

"괜찮다니까. 그럼 다음에 네가 커피를 사. 그럼 됐지?"

 나는 그녀를 그렇게 집으로 보냈고, 집안으로 들어가 안 보일 때쯤 빨리 택시에 탔다. 요금은 기사님이 강제로 올린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허무하게 16100원이 되어 있었다.

 나는 기사님에게 출발해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하다면서 속으로 말했다. 우선은 그녀의 집에서 택시가 안 보일 정도로 멀어져야 했다. 그리고 나는 16300원이 되었을 때 택시를 세워달라고 하면서 말했다.

"저기, 기사님. 정말 죄송한데, 제가 16000원 밖에 없거든요. 300원...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정말 기사님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했었다.

 다행히 기사님은 16000원으로 깎아주시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처절하게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는 서서히 다시 출발했고, 나는 그 모습과 시간을 확인하면서 집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빵 빵!"

 앞에선 택시 클락션이 울렸다. 그 택시는 내가 탔던 택시였고, 내가 바라보자 다시 클락션을 울려댔다.

"빵빵빵!"

 나보고 오라는 소리인 것 같았다.

 사람이 택시를 잡는 게 아니라, 택시가 사람을 잡았다.

 나는 살짝 빠른 걸음으로 그 택시를 향했다. 그리고 그 옆에 다가가자, 기사님은 창문을 내리면서 얼굴을 내밀며 말씀하셨다.


"학생. 집에 갈 돈은 있어?"

"네... 아..."

 그러면서 나의 얼굴을 뻔히 보시더니 1000원짜리 한 장을 내밀어 주셨다.

"아까 여자친구네 내렸을 때로 요금 해줄게. 지금 지하철 타면 막차 탈 수 있을 거야."

 나는 또다시 고민했다.

 이미 세울 가오는 무너졌고, 지금 가오를 무너뜨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하면서. 나는 또 가오를 무너뜨렸다.


"저, 정말 한 푼도 없어서 그러는데... 300원만 더 주실 수 있으실까요...?"


 감사하게도 기사님은 1300원을 주셨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막차를 타고, 눈물조차 흘릴 수 없을 만큼 처참한 모습에 헛웃음만 났다.

 그리고 생각했다.

 택시 기사님은 왜 나에게 그런 배려를 했을지.

 그건 나 말고 다른 비슷한 사람의 남자들이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면서.




 그놈의 돈 몇 푼이 뭔지, 나는 그날 밤을 이불만 차대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놈의 가오가 뭔지, 그게 얼마나 잘나 보인다고, 나를 이렇게나 처절하게 만드는가 하면서, 여자 친구와 헤어져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그때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라는 유행어도 없었고, 후에 점점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낮아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이 말이 뭔가 지금 다시 생각해 봤다. 베테랑에서 황정민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범죄자를 체포해야 하는 경찰이기 때문에, 당당해야 할 경찰이란 자신들의 직업에(가오) 돈 때문에 흠집을 내지 말라는 뜻으로 말한 걸까?

 그러면 남자는 어디에 흠집을 내지 말라고 가오 떨어질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걸까?

 그저 여자 앞에서 멋진 남자로 보이기 위해서?

 뭐든지 다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남자로 보이기 위해서?

 언제든지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


 어릴 땐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이를 조금 먹고 나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남자가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만큼 수많은 생각을 한다. 마찬가지로 여자 또한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수많은 생각을 한다.

 서로 사랑하기에 많은 생각을 하고 고민하는 건 똑같은데, 그 생각하는 만큼 서로의 마음을 모를까? 어쩌면 알 수도 있는데 모른 척했진 않았을까?

 내가 그때 여자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가오를 세웠던 일을, 정말 그녀는 몰랐을까? 만약에 그걸 알고 있었다면, 여자 친구는 더 나를 비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돈이 없으니, 연애도 가오도 다 잃을 것 같았다.

 근데 잘 생각해 보면 이랬다.

 돈은 원래 없었고, 가오도 원래 없었다. 근데 왜 굳이 연애를 잃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까?


 뭐든지 다 해주는 게 믿음직한 게 아니라, 부끄럽더라도 솔직하게 말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게 믿음직한 게 아닐까 하고, 베테랑의 대사를 듣고 다시 그날을 떠올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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