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장애물 #12.
관심에 이은 장난,
처음 느낀 감정은 어쩔 줄 모르게 만들었다.
흔히, 초등학생 때나 유치원 때에 장난을 자주 치는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을 대상으로 장난을 자주치곤 한다.
공책을 가져다가 낙서를 하기도 하고, 고무줄놀이를 하는데 고무줄을 끊어버리던가, 그저 화장실을 간다는 이유로 놀리기도 했다.
여자건 남자건 구별 없이 모두에게 장난을 치는 아이도 분명 많지만, 호기심이 많은 어린아이들은 전혀 관심 없는 사람에게 장난을 칠 일은 별로 없다.
그리고 나름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흔히 그런 말을 한다.
"남자애가 여자애를 좋아하니까 심술을 부린다."라고.
하지만 분명 여자아이도 남자아이가 좋아서 심술을 부리는 경우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 좋아하는 감정을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에게, 학교 칠판에 "철수와 영희가 좋아한대요~"라고 적어놓거나 놀리기만 해도 괜히 흥분하기도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땐 정말 왜 그런 거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화를 냈던 건지, 웃기는 추억이 되어 있었다.
괜히 짝을 괴롭히기도 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가 피해자가 된 마냥 씩씩거리기도 했다.
한국의 유명한 애니메이션에서 <검정고무신>은 5~60년대를 배경으로 그려냈다. 제목 그대로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그런 시대. 그 내용 중에 인터넷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퍼지고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에피소드의 주인공, 당시 초등학생이 아닌 국민학생이라고 불리던 시절의 10살짜리 '기철'이라는 남자아이는 짝인 '희선'과의 이야기다.
남자아이 '기철'이는 옆의 짝꿍인 "희선'에게 괜히 심술을 부리기도 하고 꼬집기도 한다. 책상에 선을 그어서 '자신의 쪽으로 넘어오는 것은 자신의 것'이라는 억지 룰을 만들면서 '희선'을 괴롭히기도 했다. 그러다가 울리게 만들면 미안해지고 속으론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희선이는 아파서 학교를 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1주일 동안 집에서 쉬어야만 했다. '기철'은 '희선'이 없는 빈자리에 쓸쓸해했는데, 자신이 괴롭혔던 거에 반성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희선'이 돌아오면 다정하게 지낼 줄 알았다. 하지만, '희선'이 돌아오자마자 '기철'은 다시 괴롭히기 시작하고 아무런 이유 없이 책을 찢어버리기 까지도 하고 독설을 내뱉는다.
"니까짓 거 아파서 죽어버리지 학교엔 왜 왔어? 바보야! 으휴, 등신같이 아프기는!"
하지만 집에 가서는 다시 책을 고치려고 혼자 끙끙대기도 한다.
그리고 그다음 날. '기철'은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희선'에게 화를 낸다.
바로 칠판에 친구들이 서로 좋아한다고 놀리는 낙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철'은 '희선'에게 가방까지 던지며 폭언을 다시 시작한다.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고, 반 친구들은 그런 씩씩거리는 '기철'과 울기만 하는 '희선'을 놀리기 시작한다.
"기철이는~ 희선이를~ 좋아한대요~ 좋아한대요~"
이 아이는 '희선'을 좋아하는 걸까 싫어하는 걸까? 조금 정도가 심한 것 같지만, 이 에피소드의 유명한 장면은 지금 부터였다.
"야! 애들이 너 때문에 놀리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이게 아부지도 없는 게 까불어!"
"우리 아버지는 미국가 있어 곧 돌아오실 거라고."
"바보야 미국이 아니라 하늘나라겠지, 너희 아버지는 돌아가셨어, 그것도 모르냐?"
'기철'은 중학생이 되어서 그때의 상처를 만든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지금 봐도 그 말은 너무 심한 말이고, 직접 들었으면 대신 혼을 낼 것 같은 그런 질 나쁜 대사였다.
4년이 지나 14살 봄이 되어 졸업식으로 장면이 바뀌었다.
두 사람은 따로 만나게 되는데, 희선은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 왔던 기철에게 이별의 한 쪽지를 건네준다. 하지만 단 둘이 있는 장면을 들켜버리고 부끄러운 나머지, 어쩔 줄 몰라했던 '기철'은 쪽지를 찢어버리게 되는데, '희선'이 울면서 뛰쳐나가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쪽지를 맞춰본 '기철'은 멍하니 그 바닥을 바라본다.
'중학교에 가서도 지금처럼 씩씩하게 잘 지내고, 친구로 지내자. 널 미워하지 않았어.'
라는 그동안의 '기철'의 괴롭힘을 용서하는 쪽지였다. (애니메이션이 아닌 원작 만화에선) 그 이후 '기철'은 '희선'의 속마음을 깨닫고, 그 이후 가족끼리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는데 기철이는 희선이 생각에 자장면을 꾸역꾸역 먹다 체하게 된다. 결국 화장실에서 '희선'에게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막 대한 것을 후회하며 먹은 것들을 모두 토하는 것으로 끝난다.
어릴 적에 초등학생 4학년인가 5학년쯤이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한 학년마다 두 개의 반이 최대이고 한 개뿐인 반도 있을 정도로 1학년에서 6학년까지 300명이 되지 않는 작은 규모의 학교였다. 그렇기에 6년 동안 같은 학교의 초등학생 친구들은 전부 서로 아는 사이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빼빼로데이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믿기지 않는다기 보다는, 의아한 기분이었다. 타인이 나를 좋아한다는 건 정확하게 어떤 건지 표시를 받아도 잘 납득하지 못했다.
그 사실로 인해 학교에서 나와 그 아이는 놀림감이 되기도 했고, 꽤나 부끄러웠다. 역시 어릴 적부터 사랑을 주던 부모님과 달리 타인으로부터 받은 호감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와서 그게 사랑을 표했다고 하기엔 뭔가 부끄럽기도 하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에게 '피도 안 마른 것들'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것처럼 10살짜리 꼬마 녀석들이 사랑을 한다는 게 뭔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작은 학교인 만큼 동네도 작았기 때문에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한다는 소문은 부모님에게도 전해졌고, 심지어 부모님들끼리 조차도 장난 삼아서 결혼시켜야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기철'이 처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건 똑같았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부끄러움으로 인한 괴롭힘 보다는 모르는 척을 했었던 것 같았다. 부끄러우니까 화를 낸 게 아니라 부끄러워서 회피를 했다.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해 준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그 아이는 나를 1년 넘어서도 좋아해 주었지만, 나는 그 아이를 외면하다 못해 말도 없이 갑작스럽게 이사를 하면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그때,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진 게 너무나도 미웠다고, 고등학생이 되어서 나에게 말해주었다.
사랑, 지금도 어려운 그 감정을 타인과 공감한다는 게, 그 어린 녀석들에게 쉬울 리가 없다. 지금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건 분명 호기심으로 하는 것이고, 단순한 호감으로 끝으로 하는 게 아닌 경우도 있다.
20살이 넘어서 하는 그런 장난은 어떨까?
초등학생 때처럼 마냥 부끄럽고 낯설고 횡설수설할까?
아니 어쩌면, 오랜 기간 동안 연애의 감정이 없었던 사람에게는 그게 호감 인지도 모르고 그러려니 하는 경우도 있고 되려 짜증을 내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장난이 이성에게 보내는 호감이라고 바로 알아차린다면, 장난을 칠 수 있을까?
가끔은, 어렸을 때 그런 모습이 생각나서 그 사람을 떠올리곤 하는데 SNS라도 찾아보고 싶기도 했다.
"잘 지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