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양 Feb 23. 2018

'비빔밥'에는 그 모든 것이 있었다.

 제사가 있는 날이면, 작은 어머니는 늘 제사용 튀김을 만들어 오셨다. 그리고 모든 나물이나 탕국, 수육까지 대부분 작은 어머니가 신경을 써 주시고 있었다. 그리고 제사가 끝나면 작은 어머니는 나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비빔밥을 좋아하는 남자가, 딸을 낳는다고 하더라. 꼭 나물 많이 넣고 비벼 먹어. 알겠지?"

 그게 미신일 거라 생각했지만, 마냥 안 믿곤 하지 않았다.

 작은 어머니가 내가 미래에 딸을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딸이 나올 때까지 자식을 낳고 싶은 마음이지만, 어찌 나이를 먹을수록 딸이든 아들이든 건강한 녀석으로 잘 나오기만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비빔밥에는 정말 그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을까.

 미신은, 참으로 어떻게 사람 입에서 그렇네 나올 수 있는지. 재밌다.

 알아보니, 야채를 좋아하면 딸을 가지고 고기를 좋아하면 아들을 가진다는 옛말이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야채는 물론 고기도 잔뜩 들어간 비빔밥을 좋아하는데... 딸과 아들을 쌍둥이로 가질 수 있다면 정말 판타스틱할 것 같다.



 얼마 전에 브런치 무비 패스로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보고 왔다. (사실, 2018년 2월 20일 이후로 당분간 리틀 포레스트에 대한 글이 엄청 쏟아지기 때문에 언급 자체가 싫었다. 영화 키워드 목록에 보면 온통 리틀 포레스트에 대한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영화는 다른 걸 다 떠나서 먹방이라고 할 수준으로 먹거리가 엄청 나온다. 그중에서 식용 꽃을 넣어 비빔밥을 해 먹는 게 기억이 났다. 비빔밥엔 정말 색다른 걸 넣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 장면이 비빔밥을 먹는 장면이다. 그릇위에 하얀 꽃이 있다.


 비빔밥은 정말 무엇을 넣어도 맛있다.

 따뜻한 밥에, 수가지의 나물을 넣고 계란 프라이도 하나 있으면 좋지만, 제사하고 남은 삶은 달걀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제사상에 올렸던 탕국을 조금 넣어주고,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으면 순식간에 비빔밥이 된다. 개인적으로 탕국의 두부나 새우, 무 등 건더기를 재료 삼아 넣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나물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다져 볶아내서 추가로 넣던가 고추장이나 소스와 함께 고기를 볶아 비벼 먹으면 육식, 채식, 곡식 안 먹는 게 없을뿐더러, 이 만큼 환상적으로 조합이 나올 수가 없다. 심지어 강원도 쪽에서는 육회 같은 날것을 넣어 비벼 먹는 경우도 있었다.

 거기다가 반찬도 따로 필요 없다.

 수저를 숟가락이나 젓가락 하나만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앞서 모든 재료를 다 넣은 것도 모자라 편의성도 갖추어져 있다.

 맛과 건강과 편의성.

 이 정도면 로봇이 합체를 하는 수준이다. 

 실제로, 고추장이나 소스의 비율을 줄이면 다이어트 식단으로도 적합하다는 건강식이다.


 더군다나 최근에 방송되고 있는 윤식당2에서는 스페인에 작은 마을에서 비빔밥을 선보였다.

 강한 맛을 자랑하는 고추장뿐만 아니라 그들의 입맛을 위해 조절하여 따로 소스를 만든 것으로 보였다. 그 비빔밥을 먹은 사람들은 비빔밥을 내놓은 윤여정 씨가 한국의 고든 램지가 아니냐고 하는 둥, 칭찬이 일색이었다.



 비빔밥은 어릴 적에 부모님에게 그렇게 알았다.

"비빔밥은 옛날에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이것저것 넣고 비벼먹다 보니 생긴 전통음식이야."

 그럴 것 같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유래가 있었다. 어딘가에선 어떤 사또에게 음식을 내어오라는 명령에 귀찮아서 이것저것 넣고 내놓았는데, 성의가 없어 화를 내려했지만 맛이 있어서 전통적으로 즐기게 됐다는 말도 있었다. 

 또는 모내기나 추수를 할 때 이웃끼리 서로 일을 도와주는 품앗이라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때는 시간과 노동력을 절약하기 위해 음식 재료를 한 번에 가지고 나가 전부 넣어 비벼서 나눠 먹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 수 있는 양푼이에 밥을 비벼서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는 그런 거 아닐까? 


 하지만 어떤 나라는 비빔밥을 까내리기에 열중인 데도 있었다. 여러 가지 그냥 막 넣은 게 빈곤함을 상징하고 볼품이 없다면서.


 그건 화 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랬든 어쨌든, 그랬다고 한들, 그렇기에 우리나라만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까. 윤식당에 나온 외국인들도(저 사람들 기준에는 윤식당 사람들이 외국인이겠지만.) 비빔밥에 칭찬한 것을 보면 그 자리를 떠나는 윤식당 직원들이 그리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비빔밥을 먹고 싶을 땐 그럴 때였다.

 힘들게 밖에서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밥을 먹어야 할 사람은 많고, 따로 상을 차리기엔 귀찮고 힘들었다. 그럴 때 우리 가족은 말했다.

"냉장고에 있는 거, 다 넣어서 비벼 먹어 버리자!"

 그러곤 뭐가 좋은 것 마냥 다 못 먹어버릴 정도로 양푼이에 마구 넣어버려서, 먹고 나면 일어나지 못해 바로 누워버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비빔밥이 좋은 이유는 그런 거였다. 가족끼리 한 그릇을 두고 머리를 맞닿으면서 숟가락으로 퍼먹는 것.

 나는 그런 시간이 좋았다. 혼자 밥을 먹거나, 편의점에서 대충 도시락으로 때 울 땐 더욱 그런 때가 떠올리곤 했다.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에 그때의 그런 시간이 더 떠오르는 건, 혼자인 나와는 달리, 함께 어우러져 있는 비빔밥의 재료처럼, 무언가가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남자친구와 디저트를 먹으면 안 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