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책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에 담겨져 있지 않는 글임을 미리 알립니다.
문득 로맨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저 주인공처럼 아무런 겁 없이 첫사랑에게 계속 다가갔다면, 나도 첫사랑과 행복한 기억이 남았을까?'
그 영화의 주인공도 첫사랑과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만족하는 엔딩이었다.
그 과정에는 항상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할 첫 번째 용기가 필요했고, 어떤 결과로 받아들일 두 번째 용기가 필요했다.
두 사람이 이어지지 않더라도 서로가 만족을 한다는 건, 그 부분을 충족하고 끝끝내 응어리를 풀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나는 과연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과연 만족을 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도 후회하는 게 있었다.
그게 첫사랑과 끝까지 함께했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때는 왜 그런 용기를 내지 못했었던 걸까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지금 그 사람이 어떤 사람과 만나고 있는지, 혹시 결혼을 했지도 모르고 아이까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혼자일 수도 있고, 직장에 충실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볼 뿐, 알고 싶다 라는 마음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의 첫사랑이었고, 또한 그 사람도 내가 첫사랑이었던 만큼 확실히 매듭을 짓지 못했던 그 이야기는, 매끄럽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작은 미련이 남아 있었다.
시작은 그녀가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그리고 그 나이는 정말 우스울 정도인 12살 때였다.
과연 12살짜리 꼬마 녀석들이 무슨 연애감정이냐 사랑이냐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라도 정확하게 짚어 줄 수 없는 시기이며, 알려준다고 한들 역시 정확하게 인지를 할 수 없는 시기다. 그저 좋으면 좋아하는 것이고, 싫으면 싫은 것이다. 그것에는 그다지 깊지 않은 이유가 있을 뿐이고, 순수하고 순진하게 표현이 되었고 부끄러워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과정의 끝은 19살이 되었을 때 끝이 났다.
꽤나 길기도 했지만, 그리 감명 깊고 사랑스러운 7년은 절대 아니었다.
어리둥절 또는 의심스러움.
누군가가, 가족이 아닌 타인이 나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런 느낌뿐이었다.
그것을 확실하게 느꼈을 때에는 그 아이가 내 가방 안에 몰래 빼빼로와 작은 편지 하나를 몰래 넣었을 때였다,
그 편지에는 늑장을 부리다 보니 이것밖에 준비를 못해줬다고,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더 멋진 걸 준비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비록 빼빼로 하나였을 뿐이지만, 의심스러웠던 그 마음은 진짜였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고, 무언가 평소와는 다른 반응을 보여야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혼자 쭈뼛쭈뼛하기만 하였고, 그 관계는 그리 진행되는 건 거의 없었다.
나는 그저 그 아이에게 마음만 받았고, 2년 동안 밸런타인데이나 빼빼로데이 같은 기념일에 작은 선물만 받았을 뿐, 아무런 표현을 하지 못했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그런 어떤 말을 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부모님들은 우리가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친해졌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 뭐가 웃기는지 하하호호 수다를 떨기도 했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또래 친구가 갑자기 나를 좋아한다고 하니 어색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안녕.”
“안녕....”
나의 어색한 인사는 그 아이 또한 어색하게 만들었다.
그 후에 같은 중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그 학교에는 두 개의 학반만 있던 게 아닌(이전에는 반이 두 개나 하나뿐인 작은 규모의 학교였다) 열개가 넘는 학교였던 만큼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기도 어려워졌다.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경우도 없었고, 다른 친구들도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지나 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 부모님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최근에 친구랑 다투거나 해야 할 거 못한 거 있니?”라고.
우리 가족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전에 친구들과 약속한 것이나, 싸운 친구가 있으면 미리 해결하고 화해하는 게 좋을 거라는 말이었다.
그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아니, 없어.”
“그래? 그럼 다행이네.”
그리고 열흘 정도 지나서 나는 그 아이한테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른 지역의 중학교로 전학을 가버렸다.
그때는 비가 참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학교 안에 같이 들어가서 전학 수속을 진행하고 오겠냐는 아빠의 물음에, 나는 그냥 차 안에서 기다리겠다고 답을 했다. 아마 나를 아는 누군가와 마주하기 싫어했었던 것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만 계속 전했고, 아무런 회신도 없이 묵묵히 기다렸던 그 아이는.
갑작스럽게 사라진 나를 보고 충격도 충격이지만, 배신감을 크게 느꼈다고 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는 그 한마디 말도 못 해주냐면서.
그리고 '버디○○'라는 PC 메신저에서, 유행이 '싸○월드'라는 미니홈피로 넘어가고 있는 시기였다.
나는 두 번의 전학 끝에 원래 사는 지역으로 돌아왔고,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스럽게 만나 근처의 옆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PC 메신저 아이디를 교환했다.
학교에서는 몰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집에 도착하면 컴퓨터를 켜서 메신저를 바로 키곤 했다.
나를 좋아해 주었던 사람을 만났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그게 얼마나 소중한 마음인지 3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조금은 더 알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염치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와 계속 연락하기를 원했고, 이전보다는 내가 더 그녀에게 적극적인 입장이 되기도 했다.
문자를 보내면 곧바로 답이 오기를 바라기도 했고, 답장이 오지 않는 것을 보면 괜히 섭섭해하기도 하며 다시 문자를 보내면서 답장을 보내달리는 신호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녀는 내가 두 번째로 문자를 많이 주고받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로 많이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신경이 쓰였다.
거짓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신경 쓰이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녀에게 말려들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입장이 완전히 바뀌듯 나는 그녀를 찾았고, 해가 바뀌게 되는 날이 조금 지나서 그녀는 나에게 그런 문자를 보냈다.
"너 그거 알아? 우리 생일 하루밖에 차이 안나는 거?"
알고는 있었다.
우리 둘 다 빠른 년생이기 때문에 학교도 일찍 들어갔고, 같은 1월에 1일밖에 차이 나지 않는 생일이었다. 내가 하루 늦은 편이었다.
우리의 어중간한 사이는 다시 시작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썸'같은 거라고 표현할 수 있었지만, 그것 보다도 더 미묘했다.
방학중에도 학교를 가야 했었고, 시내에 나가서 선물을 사고, 생일날에 선물을 교환하곤 했다. 나는 손목시계를 받은 적이 있었고, 반대로 내가 스킨케어 세트를 선물하기도 했다.
여자에게 선물을 하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서 그런 제안을 해보기도 했다.
"우리 영화 보러 갈래?"
나는 그런 문자를 보내 보았다.
[뭐? 나랑?]
의문형의 답변만 돌아왔다.
"그래."
나는 입으로 말하면서 문자를 보냈다.
[둘이서?]
그리고 또 의문형이 돌아왔다.
뭔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같이 영화를 보기도 했고, 게임 센터에 가기도 했고, 떡볶이를 먹기도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건 진짜로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그녀도 나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생각하게 만들기 시작하였고,
계속 생각만 하게 만들었다.
다른 학교이기에 매번 수업시간마다 책상 밑에서 화면을 보지도 않은 채 버튼을 누르면서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계속 주고받기도 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메신저로 이 말 저 말을 나누어 받기도 했으며, 어떤 경우에는 일부러 같은 학원을 다니려고 학원을 알아보려는 척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썸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던 도중의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는 확실한 결과를 가지게 되었다.
그 날은 이제, 수능도 끝이 났고 남은 건 고등학교 졸업뿐인 시기였다.
이번 해에도 어김없이 선물을 주려고 유명한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샀다.
하지만 그녀는 매해처럼 나를 만나러 와주지 않았다.
일부러 케이크를 주기 위해서 2시간 동안 기다리게 만들었고, 그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때, 그렇게 된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
나는 정말 허무하고, 허튼짓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복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서 마냥 화만 내지도 않고,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때 나를 만나러 와 주지 않은 이유는 아주 간결했다.
“너무 춥다. 이불속에서 늑장을 계속 부리다 보니...”
그런 식으로 외출을 거부하겠다는 표시를 내었다.
꽤나, 허탈했다.
그녀는 늑장이 제일 큰 단점이었다.
어떤 일에도 핑계를 대면 꼭 ‘늑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만큼 게으르기도 했고, 자기 기분만 챙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 부분에는 나도 찔리는 게 있어서 따로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옛날의 일을 복수당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로 했다.
애초에 그녀도 나를 아직까지 좋아한다면, 그런 늑장을 부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강했다.
나는 그 이후로 그녀를 어떤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연락을 끊었다.
그녀는 국립 대학교라는 타이틀을 가지기 위해서 다른 지방의 대학교를 갔고, 그 학교 생활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락 한 번 오지도 않았다.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도 했다.
어쩌면 그녀는, 나도 모르는, 내가 모르는 무언가의 일이 있었던가, 싫었던 점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의 무관심한 행동으로 인해 주었던 상처가, 이렇게 대갚음당한 거라면, 그게 맞다면 미워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의 일은 당연히 나 또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랬었다면, 그때의 일을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지 못한 게 너무 답답하기도 했고, 깔끔하게 거르지 못한 부스러기 마냥 어느 한쪽에 쌓여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언가로 표현하기 어려운 첫사랑의 추억을, 적어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답답하고 낭만도 없고, 흐지부지한 첫사랑으로 남게 되어 버려 있었다.
그래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적어도, 그런 마지막이 있기 전에.
내가 정말로 좋아한다는 말을,
제대로 된 타이밍에 했더라면, 무언가 달라져 있었을지,
나만의 색깔도 없는 첫사랑은 그렇게 아쉬움만 남아있었다.
사랑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첫사랑은, 나에겐 허무함을 남기기도 했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서 형성되는 감정인만큼, 어느 한쪽만의 마음만으로는 절대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첫사랑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기에 난이도가 어렵고, 어려운 만큼 기억에도 많이 남으며, 다음 사랑을 하는데에 기준을 삼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은 강렬하다고 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긴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그 차이뿐이다.
그렇기에 첫사랑을 기억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좀 더 섬세해질 수 있었다.
그저 첫사랑도 평범한 사랑 중 하나였다.
아쉬움을 남기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