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된 일이다.
내가 중학생 때에는 잦은 전학으로 인해서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먼저 다가와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 때문에 적응도 잘하고 여태껏 친한 친구로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 모든 친구들이 남은 건 아니었다. 싸워서 절교를 한 친구도 있었고, 친했음에도 직장 때문에 몇 년을 못 보는 경우도 있었고,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 대학교에서 모든 친구들과 연락을 끊은 친구가 있었다.
중학생 때, 집으로 돌아오니 할머니가 그런 말씀을 했다.
"저번에, 그 누구냐. 암튼 네 친구가 네 방에 있더라?"
"내 방에? 언제?"
"너 없었을 때였는데, 네 방 쪽에 청소하려고 가려는데 창문 넘어서 들어오고 있더라."
"엥?"
나는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친구는 나와 함께 같은 학원도 다니고 있었고 같은 반이기도 했다. 할머니 말대로라면 내가 집에서 나와 있던 동안에 그 친구가 우리 집 대문을 넘어서 창문을 통해서 내 방으로 숨어 들어왔다는 말이 되었다.
"네가 불렀던 거 아니야?"
"그런 적 없는데?"
"그래서 말 걸었어?"
"왜 왔냐고 물으니까 바로 창문 넘어서 가더라."
친구가 아니라면 그저 도둑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이걸 믿어야 하는 건지 할머니가 뭔가 잘못 봤다고 해야 할지 어느 쪽에 구분을 하고 있어야 할지 몰랐기에 그냥 그 친구에게 물었다.
"야. 너 어제 우리 집에 왔었어?"
"어? 아닌데?"
"우리 할머니가 네가 내 방에 왔다던데?
애초에 내가 이렇게 물어본다고 한들, 그렇다고 말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좀 의심스럽기도 하긴 했었다. 이 녀석이 원치 않게 삼촌이랑 살고 있었는데 그 삼촌이 이 친구를 때렸는지 맞고 학교에 오기도 했었고, 친하면서 그 어떤 친구도 집에 데려오기를 싫어하기도 했고 늘 다른 친구들 집에 가려고만 하는 게 이상하게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저 할머니가 착각을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로선 적응하는데 큰 도움을 줬던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고 1학년이 되었을 때쯤. 그 녀석은 갑자기 군대에 가버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 복학했을 때에는 학교를 잘 다니나 싶었더니. 갑자기 모든 친구들과의 연락을 끊었고 그 어떤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학교도 자퇴를 했고 다른 사람을 통해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땐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금마. 학교 도서관에서 후배 노트북 훔치다가 CCTV에 찍혀서 잡혀갔다던데."
"주운 것도 아니고 멀쩡히 있는 걸, 잠시 한눈판 사이에 가져간 거니까 완전히 절도지."
"뭐 후배 걸 잠시 쓰려고 했다고 그랬다고 하긴 하던데. 말이 안 되지 지 가방에 넣고 집으로 갔으니까."
그건 말소 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 학교의 학과에 다니는 사람에게서 들은 만큼 확실한 정보이기도 했다.
나는 문득, 그 녀석이 예전에 우리 집 담장을 넘어서 몰래 들어왔다고 했던 할머니 말이 떠오르곤 했다.
실수...라고 말할 순 없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걸 보면 마냥 실수 같은 거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연락도 먼저 끊었고 더 이상 연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도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더 지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예전에 할머니에게 대접을 받았던 친구들이 조문을 하러 왔다.
나는 그 친구들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했다.
"할머니한테 얼마나 미안하던지. 대학교에서 그런 짓을 하는 것을 보면, 중학교 때 우리 집에 몰래 숨어 들어왔던 것도 진짜일 가능성이 큰 거였을 텐데, 왜 할머니를 믿지 못했을까 싶어."
실제로 그랬다.
조문을 오는 친구들의 대부분은 내가 전학 왔을 때 친해졌던 친구들이었기에 서로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 녀석들을 보면 다른 친구들도 떠올리면서 그 녀석도 떠올리기도 하고, 동시에 할머니에게 미안한 기억이 떠오르면 그때의 일도 겹쳐 떠올리기도 했다.
"뭐?"
마침 둘이서 온 친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왜?"
"와 그 XX. 인성 진짜 썩었네."
"왜 먼데?"
"야, 금마 머리에 상처 있는 거 알지?"
"어, 알지."
그 녀석의 정수리의 옆 쪽에는 500원짜리 만한 상처가 있어서 머리가 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 상처를 버튼인 마냥 누르면서 장난을 치곤 했다.
"어디에서 떨어져서 그렇게 된 걸로 아는데."
"그게 어디서 떨어졌는지 알아?"
"어딘데?"
"2층짜리 건물에서."
"용케 멀쩡했네."
"근데 그 건물이 유진이네 집이야."
그 녀석의 바로 옆집이었다. 역시 같은 학교에 같은 학원 같은 친구였다.
"같이 놀다가 떨어진 거야? 나참."
"아니 놀다가 떨어진 게 아니라. 그때 유진이가 자기 형이랑 만화책방 갔었는데 그 사이에 금마가 몰래 유진이네 방 창문으로 넘어 오려다가 떨어진 거야."
나는 말문이 막혔다.
예전부터 한두 번이 아니었던 거였다.
그때는 어떤 말을 했을지, 애초에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잘 넘어간 모양이었는데 그런 짓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하나의 '범죄'를 저질렀고.
"와, 네가 할머니 얘기하면서 그 얘기를 들을 줄 몰랐네. 나도 소름 돋았어."
"걔는 대체 왜 그렇게 사냐."
"모르지."
나는 그렇게 완전히 그 친구를 떨쳐버리기로 했다.
스포츠를 보면 그런 해설을 들은 적이 있었다.
운이 좋은 골.
운이 좋은 홈런.
운이 좋은 결과.
딱 보면 "운이 좋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묘한 일을 바라볼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계속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결국엔 그런 말을 한다.
행운이 계속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건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실력(품성)이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실수는 한두 번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계속 발생한다는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그의 품성이라는 것이다.
남의 집 담장을 넘는다는 게 애초에 단순한 실수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어쩌면 그 녀석은 다른 사람들의 영역에 함부로 침투한 적이 그것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정말 소중했던 친구였었는데, 이제는 미워해야 하는 감정이 드는 게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