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서로 함께이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 때문에? 아니면 그저 나이를 먹으면 혼자가 되는 게 싫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혼에 대한 마음조차 재각각이다. 분명 한 명의 생각으로 만들 수 있는 결과가 아니면서도, 그렇기에 결혼하고서 이별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싫어서, 그 사람과 더 이상 함께 하고 싶지 않아서, 꼴도 보기 싫어서 그 사람과 이별을 하는 거라면, 그나마 나을지 모르겠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부부관계나 부모 자식 관계나 친구 관계나, 나에겐 너무나도 무서운 건 죽음으로 인한 이별, 사별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큰 고통이니까.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무엇을 해도 야무지게 하지 못하는 아빠와 아직 너무나도 어린 아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엄마라는 한 사람이 존재했었다. 그 사람은 기억에만 존재할 뿐 어디에도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없다. 사별이란, 그런 끔찍한 고통이다. 함께 하고 싶어서 결혼하고, 사랑하는 아이도 낳았는데, 그 아이도 커 가는 모습을 다 보지도 못하고,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게 되었다. 분명 죽어서 우리들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게 있다면, 그 사람 또한 고통스러울 것이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에 슬퍼한다는 건, 그 슬픔만큼 애정도 가득했다는 거겠지. 그래서 우리는 이별에 눈물을 흘리고, 숨을 쉬기 어려울 것 같은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고, 어느 날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그저 행복만을 안겨다 주는 일은 없을까?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고 하지만, 그 이별은 행복한 만큼 너무 괴롭게 만드는데, 분명 신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런 행복을 나누는 게 질투해서 그런 게 아닐지, 너무 미울 때가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에, 우리는 그저 그 사람이 언젠가 죽을 것이다, 언젠가 이별을 하고 말 것이다,라고 미리 예정에 두지 않는다. 사랑을 하면 그저 그 사랑에 충실하고 감정에 이끌린다.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싶고, 함께 있고 싶고, 놓아주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처럼.
모든 사람의 사랑은 그렇게 아무런 겁도 없이 그저 사랑하고 싶다는 감정에 충실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남편과 아들 앞에 1년 전에 사망한 아내이자 엄마인 한 여성이 다시 나타난다. 죽은 줄로 만 알았던 아내가, 설령 그 모습이 귀신이든 유령이든 다시 사랑하고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보여준다. 다시 그녀가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의사에게서 자신이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할지라도, 그녀의 손을 꽉 쥐어 놓지 않고 싶어 한다.
그런 마음 자체가 사랑이었다. 연인에 대한 사랑이든, 가족에 대한 사랑이든,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을 욕심부리는 것. 그렇게 그 사람을 가지고 싶다고 표현하고, 허락을 구하며, 함께 한다. 우리가 원하는 사랑은 늘 행복하기만 바란다. 이미, 행복만이 전부인 게 아닌 걸 알고서도.
오랜 기간 동안 사랑하고 버텨온 부부들에게 묻는다.
"지금도 연인을 사랑하세요?"
그러면 그들은 말한다.
"지금까지 버텨 온 게, 버텨내고 함께하고 있는 게 사랑이다."
사랑엔 이별이라는 큰 아픔 말고도 작고 깊게 찔러오는 아픔들 또한 많다. 그것들을 수년 수십 년을 버티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게, 그 자체가 사랑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어떤 때에 사랑을 하고 있다고 실감을 할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주지 못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를 할 때?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특별한 존재가 태어날 때?
사랑은 익숙해지는 감정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할수록, 그 사람에 대해서 익숙해지고, 편해진다. 처음에는 두근거리는 마음도, 손을 잡으려고 시도하는 아찔함도, 처음 키스하며 느끼는 그 숨결도, 익숙해지는 것만큼 특별하게 느껴지지 못한다. 그저, 익숙함에 그때만큼의 사랑을.
익숙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도 모르게 다가온다. 예전만큼의 감정도 나오지 않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그저 인생의 동반자라고 칭하며 앞의 생을 함께 하기도 한다. 익숙함은 위험하다기보다는 사람을 바꾸게 만든다. 그리고 언제 모르게 서로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찌 보면 당연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함께해서 행복했는데 죽음으로 떠난 사람. 그리고 다 찾아온 사랑하는 그 사람. 익숙함이라곤 전혀 상관없는 사랑. 남자가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아내라도, 그 아내가 귀신이라고 해도, 그녀가 다시 귀신처럼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녀를 사랑한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두 사람의 이별을 사랑스럽게 만드는 영화다. 남자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온 것이고, 여자의 입장에서는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미리 볼 수 있는 입장이었다. 남자로선 짧은 시간이라도 그녀와 함께해서 행복했고 앞으로 더 힘을 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여자의 입장에서는 비록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뛰어넘을 행복과 사랑이라는 것을 느껴버려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말이 있었다.
있을 때 잘하라고, 낭중에 떠나고 후회하지 말라고.
그건 분명, 원하는 이별에서 비롯된 말이 아닐 것이다. 원래는 노화로 인해 부모님과 이별하게 되었을 때, 효도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로 자주 쓰였다. 부모에 대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연인에 대한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로. 하지만 사람은 잔인하다고 해야 할지, 원치 않는 이별을 했음에도 슬퍼하고 괴로워하다가. 일상에 익숙해져 그 고통을 무마한다. 그건 다행인 일인 걸까? 사랑한 사람으로 인해 생긴 고통을 잊는다는 건, 그 사람을 잊겠다는 게 아닐까? 그 사람이 있었기에 행복했고, 사람과의 이별이 있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었을 텐데.
"고마워요, 당신 곁에 있어서 늘 마음이 따뜻했어요."
다시 만난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역시 생을 마감하고 떠난 사람은, 다시 완전히 돌아 올 순 없다고 좌절할까?
아니면, 아내가 사라지기 전에 부탁한 말 때문에 억지로라도 버텨내며 살아갈까?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서 생기는 익숙함은 사랑을 잊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로를 생각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실존하고 있지 않지만, 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없다는 것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생기던 고통이 익숙함으로 사라진다. 그저 그 사람을 잊혀지게 된다는 것이 아닌, 고통스러웠던 만큼 그때도 지금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떠올리며,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커지고 강해진다.
화면 속 그들 또한, 그런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행복하길 사람들의 뒷모습이 애잔하기만 하다. 그들 같은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면서도 그들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를 보고 그렇게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화면 속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을 하고 있다는 것. 얼마나 슬플 것인지를 느낄 수 있다는 거였다.
영화이자, 소설 원작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판타지 요소가 섞여 있는 로맨스 영화다. 죽은 아내가 돌아온 것은 과거의 어린 아내가 미래로 시간을 뛰어넘은 것이니. 그리고 시간을 뛰어넘어도, 다시 돌아가서도 아내는 죽을 운명을 알면서도 남편을 사랑한다. 과거로 다시 돌아와 다시 그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 "지금, 만나러 갑니다."
한번 사랑을 하면 얼마만큼이나 사랑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려주는 그런 아름다운 영화다. 남편은 아들과 함께 아내를 그리워하는 만큼 계속 사랑할 거고, 과거이자 본인의 세상으로 돌아간 아내는 미래에 자신의 운명을 알고서도 맹렬히 남편과 아들을 사랑할 모습을 연상케 해준다.
서로 살아가는 세상이 달라도 서로를 사랑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별해서도 더 사랑한다.
* 이 글은 영화의 이야기를 주제로 쓴 글 입니다.
* 눈의 피로가 오지 않도록 밝기 조절을 주의하시길.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려요.